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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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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산에서 피어오른 반남박씨의 글솜씨

군자산에서 피어오른 반남박씨의 글솜씨


박세채-박지원-박완서

서울동인풍수아카데미 카페에서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박군자산을 주산으로 하여 박동량(1569-1635)의 묘 (시흥시 군자동 산 22-2) 그리고
장남 박미와 선조의 딸 정안옹주의 합장묘가 아래에 있다.

일반적으로 해양성 지역의 특성은 능동적이고 다혈질적이며 도전적인 성정을 지니고 있다. 전반적으로 삶을 실리와 의리로 나누어 볼 때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므로 현실을 타개하는 능력과 창의성이 탁월하고,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임기응변에 강하고 난국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개방성, 다양성, 참신성을 바탕으로 진취적 혁신적 기상을 지니기도 한다.


네이버 항공뷰 사진. 군자산의 중출맥에 자리한 박동량의 무덤을 가운데 두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겹겹이 감싸 안고 있다. 해가 지는 서쪽은 서해바다이다. 박동량(1569-1635)의 묘 (시흥시 군자동 산 22-2). 장남 박미와 선조의 딸 정안옹주의 합장묘가 아래에 있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시흥의 군자산은 서해와 맞닿아 있는 한북정맥의 막내이다. 시흥의 군자산(君子山, 199m)은 높지 않지만, 평지에 솟은 산이라서 우뚝하게 보인다.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던 곳으로 백제의 토기도 발견되었다.  

시흥의 군자산 자락에 박동량과 그의 아들 박미 그리고 선조의 딸 정안옹주가 묻혀 있다. 반남박씨 중에 박동량을 주목하는 것은 그의 손자 박세체, 7세손 박지원, 13세손 박완서가 모두 문장력이 빼어난 학자이거나 조선과 대한민국의 대표소설가이기 때문이다. 군자산에서 반남박씨의 뛰어난 실리정신과 이용후생정신에 따른 그들의 성정을 추적해본다.


나주시 반남면의 벌명당 반남박씨 시조(박응주) 묘와 뒤로 보이는 자미산. 박응주(반남박씨의 시조) 묘의 주산은 자미산(45m)이다. 군자산과 자미산은 천리나 떨어져 있지만, 둘 다 백제의 영역이었고, 산성이 있었으며, 서해안의 해양성 지형인 것까지 공통점이다. 서해를 배경으로 평지에 우뚝 솟아 굳건한 모습은 바로 반남박씨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반남박씨의 해양성 지역의 성정은 오랜 세월동안 후손들의 정신을 통하여 전달되어 왔다. 나주시 반남면(시조묘), 인천시 대곡동(박조년묘), 경기도 개풍군(박상충,박지원묘), 경기도 시흥시(박동량묘) 등등 열거된 지역에는 반남박씨의 묘역인데 대부분 서해안에서 가까운 구릉으로 이루어진 해양성 지역에 산재한다. 서로 다른 지방이지만 지리적으로 비슷한 기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반남박씨의 후손들이 고향을 떠났어도, 가문의 기운을 간직하고자 본능적으로 비슷한 지형을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반남박씨는 중시조인 5대 박상충(1332-1375)에 와서야 과거를 통하여 고려의 중앙정계에 진출한다. 그는 개성을 제2의 고향으로 만드는데 박세채, 박지원을 비롯한 후손들의 묘와 세거지가 개풍군과 장단군, 평산군에 산재하고 있음이 그 증거이다. 그는 고려의 명문가한산인 이곡(1298-1351)의 사위이자 목은 이색의 매부가 된다. 그는 목은 이색(1328-1396)의 문인으로 정몽주(1337-1392)와 정도전(1342-1398), 이숭인, 김구용 등과 교유하며 친명책과 척불숭유의 선봉이 되었다. 그러나 친원파에 의해 숙청당하여 장형을 받은 뒤 귀양 가던 중 사망하고 그의 죽음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듯 가문의 융성함에는 밑거름이 되는 분이 계신다.

박상충의 아들 박은은 이방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방석의 변(1차왕자의 난)과 박포의 난(2차왕자의 난)을 평정하여 좌면공신으로 정치적 기틀을 굳건히 한다. 이로써 반남박씨의 후손들 중에서 인성왕후(인종비), 의인왕후(선조비), 수빈박씨(순조생모)가 배출되고, 조선중기 이후에는 4명의 부마가 배출되어 명실 공히 조선 사대부가에서도 명문가로 우뚝 선다.

반남박씨의 전성기는 5응17동으로 불리는 박소(11대조)의 다섯 아들과 17명의 손자 때이다. 이 중에서도 박소의 넷째 아들인 박응복(대사헌)의 아들 박동량(형조판서)의 후손에서 빼어난 문장가가 배출된다. 박세채. 박지원. 박완서.


현석은 자기가 살던 마포의 지명에서 따온 그의 호. 그의 자택은 마포구 현석동에 있었으며, 옆에 소동루를 짓고 살았다. 지금은 그 자리가 밤섬공원으로 변해있다.

박세채의 대표적 저술로는 <범학전편><시경요의><춘추보편>>남계독서기><대학보유변><심경요해><학법총설><양명학변><남계수필록><심학지결><신수자경편><육례의집><삼례의><사례변절><가례요해><가례외편><남계예설><남계시무만언봉사><남계연중강계><남계기문><동유사우록><주자대전습유> 등이 있다.


현석 박세체(1631-1695)는 동방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된 분으로 박동량의 차남 홍문관교리 박의(朴猗)의 아들이며, 모친은 영의정 신흠(申欽)의 딸이다. 벼슬이 높은 사람보다도 학문이 출중한 사람이 더욱 가문을 빛낸 것으로 인정한다. 이는 학문을 중시한 조선의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세계적으로도 학문을 제일로 친다. 동방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가문을 빛내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문묘배향인물 1명은 영의정 9명을 배출하는 것보다 더 중시했다. 정권의 끄나풀보다는 대쪽 같은 학문을 더 존경했던 것이다.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예학의 거두라야 가능하다. 현석 선생은 예학에 관한 많은 저술을 통하여 ‘예학의 대가’로서 학문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의 탕평론과 예학론은 17세기 성리학을 근거로 예학을 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지원의 저서로는 ≪열하일기≫·≪과농소초 課農小抄≫·≪한민명전의 限民名田議≫·≪안설 按說≫·≪연암집≫ 등을 남겼다. 작품으로는 <허생전>·<민옹전 閔翁傳>·<광문자전 廣文者傳>·<양반전>·<김신선전 金神仙傳>·<역학대도전 易學大盜傳>·<봉산학자전 鳳山學者傳>이 있다. 북학파와 개화파를 연결시켜 박지원의 이용후생사상에 불을 지핀 인물은 그의 손자 박규수(1807-1877)로써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 소각 사건으로 유명하다. 그는 청나라를 두 차례나 방문하여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로써 김옥균, 박영효, 김윤식, 유길준 등이 그의 문하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실리추구가 지나친 결과 태극기를 들고 일본에 간 박영효(박동량의 12세손)과 같은 친일파가 나왔으니 반박문중의 아픔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최고의 소설가이자 북학파의 거두이며, 추사 김정희, 단원 김홍도와 함께 문장가로써 박지원은 조선시대 문예 3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연암은 박미의 6세손이다. 박동량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 호종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장남(박미)는 정안옹주와 결혼하여 선조의 부마가 되었다.

연암은 정조 때의 권력자인 홍국영과의 불화를 피하여 과거도 치지 못하고 황해도 금천군 연암협에 은거하여 오랜 기간 야인으로 지내면서 글을 쓴다. 그 후 영조의 부마 박명원(팔촌간)의 개인적인 수행원으로 건륭제칠순축하사절단으로 열하를 다녀온 뒤 국제정세에 눈을 뜨고 청나라에 대한 시각을 달리한다. 열하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따뜻한 강이란 뜻이다. 열하는 지금 승덕(承德 Chengde)이라고 하며 북경의 더위를 피하여 여름동안 청나라 황제가 피서를 가는 곳이었다. 그는 <열하일기>에서 청나라가 오랑캐 국이라고 척결할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번창한 문물과 문명을 수용하여 낙후한 조선을 실용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중화주의라는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방식을 떠나 조선이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였다. 명(明)에 대한 의리와 결부해 청(淸)나라를 배격하는 풍조가 만연하던 시기이지만 그의 주장은 당시의 위정자나 지식인들에게 강한 자극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북학사상(北學思想)은 나중에 개화파를 이끄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박완서를 기리기 위해 구리시 인창도서관에 설치된 박완서 자료실.
박완서의 육성과 사진과 영상,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박완서(1931-2011)는 개풍군 박적골 출신으로 1970년에 등단한 한국여성문학의 대표작가.

그는 자기의 작품에서 일제시대와 동족상잔을 거치면서 단군이래 가장 어려운 질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우리 부모님의 세대들을 대변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집요함과 공포를 이해할 겨를도 없이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과, 그리고 운명처럼 지낸 서울이라는 공간을 씨실로, 일제와 전쟁의 시간을 날실로 하여 혹독한 시련과 사상적 혼란 속에서 겪은 시리도록 아픈 경험을 미묘하게 승화시키고 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자전적 소설로 그의 체험에서 우리의 모순된 모습을 고백성사 하듯이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박완서의 소설은 처녀작<나목>을 비롯하여 <세모><부처님 근처><카메라와 워커><살아있는 날의 시작><그 가을의 사흘 동안><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꿈꾸는 인큐베이터><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나><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창 밖은 봄><배반의 여름><도둑맞은 가난><엄마의 말뚝><꽃을 찾아서><저문 날의 삽화><나의 아름다운 이웃><한 말씀만 하소서><너무도 쓸쓸한 당신>,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혼자 부르는 합창><살아있는 날의 소망><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어른노릇 사람노릇><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있다.


박완서의 자택. 박완서는 “아치골의 자택이 어릴 때 살았던 개풍군 박적골과 너무나 흡사하여 마치 구리시 토박이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좋아하는 땅의 형국이 조상들의 성향과 너무나 닮았다.

박세채는 마포구 현석동에 자택과 소동루를 짓고 살았고, 박지원은 반송방 야동(아현동)에서 태어났다. 둘 다 목성(삼각형) 모양의 안산의 기운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각형 봉우리는 문필봉이라 하여 문장가나 학자의 기운이 피어나는 곳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라는 조선 최고의 걸작을 남겼고, 박완서는 대한민국 대표적 소설가의 입지를 굳혔다. 해양성 지역의 창의적이고도 능동적인 성향이 반남박씨의 가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문장을 드높인 것이다.

이렇듯 가문의 기운이 매우 뚜렷할 경우 좋고 나쁨을 떠나 때론 후손들이 자기도 모르게 걸어가는 운명과도 같이 작용한다. 가문의 기운이 한 방향으로 모이는 것은 계곡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는 것과 같다. 가문에서 출중한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오랫동안 기운이 쌓이고 쌓여 응집된 결과이기도 하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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