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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bhunc1 
Subject  
   고맙습니다.
박찬우님!
바쁘신데도 시간내어 저의 부탁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슴니다.
늦게나마 이제 인사 드리는 것은
오늘 모처럼 님의 답변을 열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요즘 <읍선생이야기>라는 가제로 글을 쓰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되어 책이 선을 보이게 되면
그 때 한권 보내드리기로 하고
우선 초고가 끝난 것을 보내드리니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종복(朴宗福): ? ~ ?

  ◯. 본관(本貫): 반남(潘南)
  ◯. 자(字): 사수(士受)
  ◯. 호(號): -
  ◯. 시호(諡號): -
  ◯. 부친(父親): ?
  ◯. 관(官): 현감(縣監)

  조선시대 사람으로, 학자(學者)로서 대사헌(大司憲)에 추증(追贈)된 박윤원(朴胤源)의 족질(族姪)이다.

  1789년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시작으로 해서 건원릉봉사(健元陵奉事)로 있다가,1791년 10월에 인제현감에 제수되었다. 종복(宗福)이 인제로 나갈 때 박윤원(朴胤源)은 이런 시를 지어 보냈다.

인제현감으로 나가는 조카 종복(宗福)에게 글을 지어주어 보내며/送族姪士受宗福出宰麟蹄縣追成贐章却寄

풍류가 참으로 속되지 않으니/風流眞不俗
설악(雪嶽)도 의당 천하지 않으리/雪嶽未應輕
유석(乳石)은 백성의 장래를 알려주고/石乳民將告
붉은 모래밭은 고을을 이루었네/丹砂縣可成
꽃다운 나이 지나 환갑(還甲)을 맞았어도/花籌臨甲歲
댓잎같이 곧바르게 관치(官治)를 널리 펴서/竹葉泛官觥
우리 삼연(三淵)선생이 부끄럽게도/我愧三淵叟
명구(名區)를 일생동안 책임지게나./名區負一生  

  그가 인제현감에 제수되던 해는 벌써 나이가 환갑을 맞았으나. 젊은 사람 못지않게 정사를 잘 살펴 주민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따라서 그가 1794년 6월에 금성현령(金城縣令)으로 이배(移配)되자 그를 기리기 위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는데, 1996년까지 전해오다 국도확포장 공사 시에 훼손되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박종영(朴宗永): 1804~1875

  ◯. 본관(本貫): 반남(潘南)
  ◯. 자(字): 미여(美汝)
  ◯. 호(號): 송오(松塢)  
  ◯. 부친(父親): 준원(準源)
  ◯. 관(官):  군수(郡守)

  이조(李朝) 후기의 학자. 금석(錦石) 박준원(朴準源)의 제 5자이다.

  여동생이 정조(正祖)의 후궁(後宮)으로 입궁(入宮)하여 순조(純祖)를 낳아 부친이 형조판서(刑曹判書), 금위대장(禁衛大將) 등을 역임하는 화려한 문벌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그는 순조(純祖)의 외삼촌(外三寸)이면서도 조용히 지내면서 학문에 열중했다.

  한 때 그는 음직(蔭職)으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을 지내다가 60이 다되는 1863년 6월에 인제현감으로 부임 하였다. 부임 후 그는 선정(善政)에 힘썼으며, 인제와 관련한 여러 편의 시문(詩文)과 제문(祭文)을 남겼는데, 소개한 몇 편의 작품을 살펴보면

  옛 관(關)을 보수할 때 큰 들보 감을 끌어내려 떼 매어 흘려보낸 뒤의 기쁨/舊關營建時大樑曳運結筏流下後識欣

깊은 산에서 벌채한 백 척 송이/斫取深山百尺松
강으로 작은 용이 헤엄치듯 떠내려 오네/浮來江面宛游龍
구름에 닿을 듯이 품위 있는 집의 대들보로 하였으니/連雲鳳闕爲樑具
십년의 창성(昌盛)함을 볼 수 있어 행복하네./千載昌時幸爾逢

가을비가 폭주하여 양 강이 범람하며 읍부(邑部)가 침수되는 환을 당하고 물에 빠진 뒤 객사(客舍)에서 탄식함/秋雨浹句暴霪兩江汎濫邑部被墊溺之患水退後寓歎

물동이로 쏟아 붓듯 삼일 밤낮 비가 내려/通三晝夜雨翻盆
고을의 이백 여 채 집들이 무너지고 쓸려갔네/二百漂頹共邑村
물가의 푸른 산도 절반은 떠나가고/半截靑山移浦面
관문(官門)에는 붉은 흙물이 들어왔네/幾堆赤浪入官門
객사(客舍)의 사람들은 서로 도와 목숨 걸고 도망치고/提携客舍民逃命
공당(公堂)의 관리들은 윗도리를 벗은 채 넋을 잃었네/袒裼公庭吏褫魂
예전부터 전해 오길 이런 환난 없었다 하니/傳道古來無此患
떳떳하지 못한 사군(使君)이라 말하기도 부끄럽네./使君不職愧斯言

호랑이를 경계하여 탄식함/歎虎警

예전에 들은 대로 큰 농사일보다 다른 정사(政事)많다더니/聞昔弘農里政多
호랑이가모르는 새 깊은 물을 건너간 자취를 남겼으니/虎能遠跡渡深河
어찌하랴. 힘없고 졸열한 인제 태수/ 如何疲劣麟蹄倅
들짐승이 종횡으로 마을을 지나감을/野獸縱橫邑里過

동각(東閣)에 앉아/東閣閒坐

학문이란 고금(古今)에 이루기 어렵듯이/學古學今都不成
많은 백성 다스리는 일 또한 어렵구나/難乎爲政衆蚩氓
끝없이 쌓인 산은 무슨 뜻이기에/無窮蓄積山何意
이와 같이 물소리도 분등(奔騰)하는가/有似奔騰水自聲
해 뜨면 풍속대로 밭에 나가는/日出田間方世俗
하늘로만 트인 산골이라 인정이 적네/天開峽裡少人情
누가 이를 파 헤쳐 영통하게도 구멍을 내랴/誰能鑿出靈通竅
수령마다 굳게굳게 이름 내 세우네./各使牢牢認姓名

인제 부임 후 술회 1/麟蹄赴任後述懷 1

행군 시에 태수의 영예(榮譽) 말 하지 않았지만/五馬休言太守榮
내가 올 때 감회가 끝없이 이네/我來秪覺感懷生
늙어서 봉록(俸祿)을 꾀함이 가련하나/老霑薄廩憐身計
날마다 가득 쌓인 세정(世情)을 덜어 내네/日慣高峯減世情
낮에는 관노(官奴)인양 나무 그늘 밑에서 졸고/官隸晝眠依樹影
밤이면 공당(公堂)에 앉아 물소리와 함께하며/公堂夜坐有江聲
정녕 물외(物外)의 생각을 떨쳐버리니/定然物外差强意
설악의 살기 좋은 곳 관리가 되었네./雪嶽好占仙吏名

인제 부임 후 술회 2/麟蹄赴任後述懷 2

항아리 같이 둥그런 고을에 들어서니/彎環如入費公壺
도읍(都邑)은 그 가운데 있네/不意中間有邑都
두메의 풍속대로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峽俗徒然知飮食
둘이 땅을 갈면서 이상하게도 노래하며 일을 하네/耦耕怪底作歌呼
내달리는 강가의 흩어진 돌들은 물소리에 울리고/江懸亂石皆爲響
가까운 산에는 소나무 몇 그루 뿐/山逼交松可數株
시비가릴 재주는 부족해도 탐내지 않고/非是疎才能剸理
민심이 순후하니 집집마다 걱정 없네./民淳十室定無虞

합강정을 중수한 후의 술회/合江亭重新後述懷

합강정의 미려함에 성은(聖恩)을 느끼며/合江休休感君恩
십년 만에 다시 정자에서 술을 드네/十載紅亭更把樽
보이는 건 비바람에 쓰러진 푸른 솔과/閱來風雨蒼松臥
파도에 다 씻긴 흰 돌뿐이라/洗盡波濤白石存
차라리 벼슬도 버리고 가까운 못 고을斗米寧辭彭澤縣
작은 배 타고서 무릉촌(無陵村) 찾아갈까/扁舟欲訪無陵村
무슨 일로 앞에 분들 이 땅에 살았는지/底事前賢棲此地
이제야 밝은 달이 심혼(心魂)을 비추누나./至今明月照心魂

두메 마을 풍경/峽裡卽景

높고 메마른 산전(山田) 아래/嶢崅山田下
백성들은 금수(禽獸)와 섞이어 사네/居民雜獸禽
기이한 바위는 백 척에 이르고/巖奇尋百尺
늙은 소나무는 천량 가치네/松老價千金
승경(勝景)임을 알고서야 누가 버려두며/汗漫誰知勝
변명도 하지 않고 등한히 하랴/等閑却說深
얽히어 돌아간 돌길을 가노라면/磴路縈廻去
내 하나에 건널목이 수 없이 있네./一溪幾渡潯

농사일을 탄식함/歎耕者

두메 사람 일을 해도 밥 먹기도 힘이 들고/峽民食力窘生涯
날마다 산전(山田)에 불 놓느라 집에 오지 못하네 /日燒山田未下家
추수를 한다 해도 많은 나락 얻기란 힘이 드느니/秋後絶無多得粟
수납(輸納)할 관(官)도 역시 맥 빠진 채 슬픔을 감내할 밖에./輸官幾盡亦堪嗟

그의 치적(治積)이라든가, 현민(縣民)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당시의 실정 등이 잘 나타나 있어, 향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그가 쓴 제문(祭文) <복룡산(伏龍山)기우제문> <용연(龍淵)기우제문> <지리실(地理室)기우제문>에도 그의 백성을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으며, 특히 <대량(大樑)운반 시 설악(雪岳)산신에게 드리는 제문>에는 경복궁(景福宮) 복원을 위한 목재 채취 및 운반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인제에서 생산되는 황장목(黃腸木)이 궁궐의 재목으로 이용되었다고 구술로 전해오던 것을 입증하는 좋은 근거 자료가 되며, <합강정중수상량문(合江亭重修上樑文)>같은 자료도 향토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로 전해오고 있다.

  그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실로 많은 치적을 남기고 1866년 12월 20일자로 경기도 양근(楊根)군수로 이배(移配)하였다. 현민(縣民)들이 그를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善政碑)를 세웠는데, 지금의 합강정 부근 비석거리에 1990년까지 전해왔으나, 도로확포장 공사 시에 훼손 되여 지금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문집(文集)으로는 송오유고(松塢遺稿)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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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3 270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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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호장공이란...??

fin
2001/08/04 1755 0
52
   홈페이지 잘보고가요 ^^;

fgost
2012/01/02 2202 0
51
   돌림자를 알고싶어요

Erin Park
2003/04/17 1490 0
50
   정말 감사드립니다. ^^ [1]

do9004
2008/05/01 1498 0
49
   항렬과 돌림자에 관해 알고 싶어요..

COOL
2001/10/13 1509 0
48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동참 하겠습니다.

chpark
2004/12/17 1491 0
47
     [re] 밀양박씨

chan jo
2004/03/02 1497 0
46
   수동마을 [1]

bij4004
2006/05/02 1466 0
45
   홈페이지 정리에 대한 부당성글 잘읽어보았습니다

bij4004
2006/01/11 1523 0
44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bhunc1
2009/12/20 1494 0

   고맙습니다.

bhunc1
2009/12/19 1445 0
42
   박씨 표기에 관하여 [2]

bac jin
2010/02/15 1510 0
41
    가입 인사 드립니당~ ^(__)^ 꾸벅

25대손
2001/08/06 1861 0
40
   서 짜 돌림이 많네용~ ^^;

25대손
2001/08/14 1527 0
39
     [re] 통 고 ... [1]

24세
2006/07/17 147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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