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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潘南)이시다. 자는 열지(說之)이며,호는 남곽(南郭).봉촌(鳳村)이시다. 반남박씨에서는 남곽공으로 불리워지는 어른이며 5응17동의 한분이시다. 1585년(선조 18) 진사가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전적(典籍) ·정언(正言)을 지내셨다. 1601년 이조정랑을 역임하고 그 해 가을에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으로 의주(義州)에 다녀오셨다. 1603년 검상(檢詳) ·사인(舍人)을 거쳐 황주목사(黃州牧使) 때는 부역을 공평히 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어사의 천거로 품계가 올랐다. 이어서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형조참의가 되셨다 1608년(광해군 1) 충주목사 ·대사성(大司成)에 이어 다시 예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정인홍(鄭仁弘) 등이 이황(李滉)의 문묘(文廟) 배향을 부당하다고 상소하자 격분한 유생들이 정인홍의 유적(儒籍)을 없애버렸다. 이에 광해군이 크게 노하여 유생들을 투옥시킬 때 이를 말리다 실패하자 조정에 있기를 꺼려하여 나주목사로 나가셨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이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키자 아우 동량(東亮)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중풍으로 석방되셨다. 문집으로 《봉촌집(鳳村集)》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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