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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re] 문순공 세채선생님 생애
> 동방 18현 문순공 박세채 선조님에 대한 자료를 획득하고자 합니다 제는 삼척 문화원에서 고전한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강의에  동방18현에 대한 발표를 하는데 문순공에 대한참고할 자료를 보내 주시기 바람니다
>보낼곳; 삼척시오십천로408(읍중동)  삼척문화원 고전한문반 박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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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이순형(李順炯) 교수의 저서 『한국의 명문 종가』(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년)는 책의 제목 그대로 소위 “명문”으로 알려진 가문들의 종가와 관련된 사회적 특성을 다루고 있다. (참고: 여기서 이(李) 교수가 “한국의 명문”이라고 지칭한 가문은 주로 “조선시대의 명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즉 자유민주주의 평등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명문”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소위 “명문 종가”의 혼맥(婚脈)을 살피기 위해 문묘배향(文廟配享)된 종가의 혼맥을 매우 상세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유학자 중에서 문묘에 배향된 인물은 모두 18인인데, 그 중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은 신라시대 인물이고, 안유(安裕)와 정몽주(鄭夢周)는 고려시대 유학자들이다. 나머지 14인은 모두 조선시대 인물들인데,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이상 東廡),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성혼(成渾), 조헌(趙憲),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이상 西廡)가 바로 그들이다. 
 
문묘배향 인물들의 선정 기준에 대한 의문과는 별도로, 조선시대에는 문묘배향 자체를 유학자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기 때문에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 배출된 가문은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名門)”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이들의 성관(姓貫)을 보면, 은진송씨 2인, 광산김씨 2인, 그리고 서흥김씨, 한양조씨, 진보이씨, 하동정씨, 여주이씨, 울산김씨, 덕수이씨, 창녕성씨, 배(백)천조씨, 반남박씨가 각 1인이다. 즉 12개의 성관에서 문묘배향 인물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의 성관수가 1,000여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조선시대에 문묘배향 인물을 배출한 성관은 1%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는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 우리나라의 성관수는 정확한 수가 아님. 이 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성관 소개에 나오는 성관수를 합한 것으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

그런데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와 관련된 이(李) 교수의 조사에는 다소간의 실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교수의 저서 58-59 쪽에 제시되어 있는 ‘문묘배향된 유학자’ 명단 마지막에 올라있는 박세채의 출신지가 ‘경북 영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의문이다. 현석 박세채(1631-1695)는 숭정(崇禎) 신미년(辛未年), 즉 인조(仁祖) 9년(서기 1631년) 6월 24일 한성(漢城: 서울) 창동(倉洞: 마포구 현석동)에서 교리(校理) 박의(朴漪)와 평산신씨(平山申氏: 상촌 신흠의 따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년도 1632년이 아니라 1631년이다). 그의 부친 박의, 조부 박동량(朴東亮), 증조부 박응복(朴應福) 모두 ‘경북 영주’와는 무관한 인물들이다.  

다음으로, 같은 책 239-242 쪽에 보면 박세채의 종가 계보에 대해 아주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1世 호장공(戶長公)(朴應珠)부터 15世 박세채에 이르는 계보, 이어서 박세채의 11대 종손 26世 박찬혁(朴贊赫)에 이르는 계보를 도표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박세채에서부터 종손 박찬혁에 이르기까지의 승사(承嗣), 즉 입양(入養) 관계까지도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복잡한 입양 관계의 기술이 경우에 따라 다소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혼란, 또는 오해를 야기할 개연성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해당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참고: 글자의 색과 밑줄은 나중에 보탠 것임).
  
“..... 세채는 평산 신씨 소생이다. 15세 세채(世采)는 진사 후 유일로 좌상을 지냈고 문순공 시호를 받고 문묘에 배향되었다. 황해도 장연(長淵) 봉양서원(鳳陽書院)을 비롯해 7개 서원에 모셔져 있다. 배위는 음직으로 부윤(府尹)을 지낸 원주(原州) 원씨 두추(斗樞)의 딸이다. 16세 태은(泰殷)은 좌수운판관(左水運判官)을 지냈고 증직으로 이조참의를 받았다. 교리를 지냈고 부제학을 증직받은 함안(咸安) 조씨 근(根)의 딸을 배위로 맞았다. 태은이 무자하여 태여(泰輿)의 아들 필신을 양자로 들였다. 삼촌 숙질 양자이다. 17세 필신(弼莘)은 강화부(江華府) 경력(經歷)을 지내고 배위는 임천(林川) 조씨(趙氏) 정윤(正倫)의 딸이다. 18세 사협(師協)은 해평(海平) 윤씨 필(泌)의 딸을 맞았다. 19세 순원(純源)은 주부(主簿)를 지냈고 전주(全州) 이씨 국보(國寶)의 딸을 맞았다. 순원이 무자하여 용원(龍源)의 아들, 즉 당질 종기(宗箕)를 입양하였다. 20세 종기(宗箕)는 군수를 지낸 인동(仁同) 장씨 지겸(志謙)의 딸을 배위로 맞았다. 21세 대수(垈壽)는 여주(驪州) 이씨 형조(瑩祚)의 딸을 맞았다. 대수는 무후하여 남수(南壽)의 아들 제형을 양자로 들였다. 이들은 세채의 아들 태은과 태회(泰晦)로부터 내려온 사이로, 대수는 세채로부터 6대이니 대수와 제형은 13촌 숙질 사이이다. 22세 제형(齊衡)은 오종질 대수에게 양자로 들어왔으며 전주(全州) 이씨 완(浣)의 딸을 맞았다. 제형이 무자하여 멀리 팽수(彭壽)의 손자 도양을 들였는데, 무려 29촌 사이이다. 그러나 팽수가 제형의 동생 제한(齊翰)을 양자로 들였으니 제한의 아들 도양은 제형의 조카 3촌 사이이다.

23세 도양(度陽)은 감역(監役)을 지냈고 배위로 풍양(豊壤) 조씨 인화(寅和)의 딸을 맞았다. 도양도 무후하여 기양(沂陽)의 아들 승준을 양자로 들였다. 무려 25촌 사이의 조카이다. 24세 승준(勝駿)은 전주 이씨 경목(景穆)의 딸을 배위로 맞았으나 무후하여 동생 승봉(勝鳳)의 아들 용서(龍緖)를 양자로 들였다. 말하자면 3촌 숙질 사이의 양자가 되어 대를 이었다. 25세 용서(龍緖)는 주사를 지낸 경주(慶州) 이씨 상위(相渭)의 딸을 배위로 맞았다. 26세 찬혁(贊赫)은 용서의 아들로 전주 이씨 건의(建義)의 딸을 배위로 맞았다. .....” (이순형 2000: 240-241쪽 인용. 262-263 쪽에도 같은 내용이 있음).
  
위의 기술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위의 기록에 의하면, 현석공(玄石公)의 종가에서 무려 6회에 걸쳐 입양이 일어났기 때문에 26세 찬혁(현석공의 11대 종손)의 실제 혈통(血統) 계보(系譜)가 어떻게 되는지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런데 위 책의 저자는 박세채의 가계 분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반남박씨(潘南朴氏) 박세채(朴世采)의 가계는 『나주박씨세보(羅州朴氏世譜)』를 가지고 분석했으며 이 족보는 인조 20년(1642년)에 선조의 부마인 박미(朴渳[瀰])가 만든 것이다. 각 종가별 조선시대의 가계는 위 청보를 통해서, 현대 종손의 가계는 일제시대 이후 발간한 족보를 보았으며, 족보에 밝혀진 사실을 종가와 종친회를 방문해서 면접을 통해 확인했다.” (같은 책 183쪽 인용. 485쪽 참조).
  
위의 인용에서 언급한 인조 20년의 족보는 바로 임오보(壬午譜)를 가리키는 것으로 금양위(錦陽尉) 박미(朴瀰)가 서문을 쓴 반남박씨 최초의 족보로 대표적인 청보(淸譜) 중의 하나이다(참고: 박미가 임오보를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임오보에는 아직 박세채의 이름이 올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세채 이후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은 임오보 이후의 족보(세보)에 의존해야 하는데, 위의 인용에서 밝히고 있듯이 일제시대 이후에 발간된 족보를 참고하고 종가와 종친회를 방문해서 확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나)는 위 책의 저자가 기술한 현석공 종손에 대한 내용은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참고: 필자(나)는 위 책의 저자가 현석공의 종가와 종친회(또는 대종중)를 직접 방문하여 면접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한 오해는 바로 위 책의 종손 가계 기술에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간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위 책에서는 24세 승준(勝駿)과 승봉(勝鳳)이 마치 친형제(親兄弟)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반남박씨세보』(을유보, 갑자보, 무술보, 경신보)에 따르면, 승준과 승봉은 전혀 다른 혈통(血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승준의 실제 혈통은 이른바 “서흥파(瑞興派)”로 알려진 계파에 속하며, 승봉의 실제 혈통은 12세 응천(應川)-13세 동준(東俊)-14세 형(炯)-15세 세훈(世塤)-16세 태후(泰厚)로 이어지는 계열이다. 서흥파의 파조(派祖)는 박보(朴寶)인데, 경신보(1980년)의 세파도(世派圖)에 따르면 박보는 5세 박상진(朴尙眞)의 증손(曾孫)인 박자성(朴自成)의 아들로 연접되어 있다. 따라서 서흥파의 혈통을 받은 승준과 박응천-박동준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승봉은 촌수(寸數) 계산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멀고 먼 사이이다. (참고: 경신보 세파도를 기준하여 굳이 계촌(計寸)해 본다면 승준과 승봉은 40촌이 되지만 계촌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된다).  

현석공은 4명의 아들을 두었으므로 그리 적은 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맏아들 태은(泰殷)과 셋째 아들 태정(泰正)이 후사가 없어 각각 양자를 들임으로써 복잡한 입양관계가 시작되었다. 종손의 입양 과정에 관련된 계파는 현석공의 후손들은 물론 혈통상으로 아주 먼 계파와도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서흥파와 감정공(監正公) 응천파(應川派) 뿐만 아니라 7세 세양공 박강파(朴薑派) 등과도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현석공 종가에서 촌수가 가까운 곳에서 양자를 들이지 않고 왜 그토록 먼 곳에서 양자를 들이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아마 지리적(地理的)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 소위 ‘대(代)를 잇는다.’는 승사(承嗣)를 목적으로 하는 입후(立後: 입양) 제도는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먼 훗날 그 후손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실제로 유전자를 물려 준 혈통상의 조상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게 된 것은, 입양 대상자를 선택할 때 적용되어야 할 승사 서열(承嗣 序列)에 대한 엄격한 원칙이 없이 대부분 당사자들끼리의 합의로만 입양이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입양되는 본인의 의지와도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종묘에 배향된 조선시대 최고의 유학자 중 한 사람인 현석 박세채의 가계에 대한 『한국의 명문 종가』(이순형)의 기술(記述)에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어 독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세보의 기록에 따르면, 승봉(勝鳳)의 본생가(本生家) 계보는 현양(顯陽)-제달(齊達)-구(귀)수(龜壽)-종긍(宗兢)-일원(日源)-사고(師古)-창주(昌冑)-태후(泰厚)-세훈(世塤)-형(炯)-동준(東俊)으로 이어져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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