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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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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반남 박씨 성천공 박함 종가
쿠켄 발행2012년 6월호 www.cookand.co.kr

반남 박씨 성천공 박함 종가


뿌리깊은 종가의 맛을 찾아서




자연이 선물한 제철 음식 먹으니 병원 갈 일 없지요
5월에야 봄나물을 맛볼 수 있다면 도시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갖가지 산나물을 3월 초부터, 어떤 것은 일 년 내내 먹어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해발 280고지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춘당리 반남 박씨 성천공 박함(成川公 朴咸 1445?1500) 선생 종가 댁에서는 5월 초가 돼야 햇나물을 맛볼 수 있다. 두릅은 5월 1일쯤 뾰족하게 새싹을 선보이고 곤드레나물, 돌나물, 잔대 싹, 취나물 등 토종 이름을 가진 산나물들도 이즈음에 난다. 박함의 18대 종손 박인학(朴仁學·67) 씨와 종부 손계순(孫桂順·58) 씨는 지금까지 한번도 병원 신세를 져본 일이 없다고 한다. 저녁 9시가 되면 잠이 들고 해가 길어지는 초여름에는 새벽 2시에 일어나 농사를 짓는 부지런함과 자연이 선물한 제철 음식의 힘이다.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부의 표정은 밝고 순하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구릿빛 피부에 군살 없이 단단한 모습이 헬스장에서 다듬은 몸매와는 또 다른 건강미다. 상록수 같은 진정한 농부를 만나고 왔다.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게 건강의 비결




곤드레나물밥에 시원한 돌나물 물김치를 곁들였다. 자연의 섭리대로 건강하게 사는 종손 부부와 손자 성찬 군.

‘덩실한 고택도 없이 궁벽한 산간마을에 사는 촌로의 종가에서 무엇 볼 게 있겠냐. 세상에 소개되었다가 조상님이나 문중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폐가 될 수 있으니 사양하겠다’는 종손을 설득한 사람은 며느리이자 차종부인 강은진(姜銀珍·36) 씨다. 강은진 씨는 잡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 취재의 목적을 이해해 줬다.

은진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겨울 예안 이씨 종가에서 설 풍경을 촬영할 때였다. 스태프로 참여한 그이의 어른들 대하는 공경스러운 태도와 종가의 기물들이 쓰이는 용도를 척척 아는 것 등을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강원도에 있는 반남 박씨 성천공 박함의 19대 차종부였다. 그에게 시댁에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산나물이 나는 5월이 좋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취재다. 6월호에 봄나물 소개가 신선함은 떨어질지 몰라도 자연을 어긴 음식을 먹고 사는 우리네 삶을 종가를 통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요즘은 교통이 많이 좋아져 강원도 횡성은 서울 강남에서 2시간 거리이다. 5월 2일, 서울은 초여름 날씨였지만 횡성에 들어서니 봄기운이 천지에 감도는 듯 포근한 날씨였고 산과 들에는 연둣빛의 새싹들이 그제야 뾰족뾰족 햇살을 받고 돋아나는 이른 봄이었다. 싱그러운 바람도 봄날의 그것이었다.

종가는 대나무 숲 울창한 산 둔덕에 들과 앞산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황토로 지은 아담한 2층 양옥이다. 외양도 실내도 모두 생활하기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 보기 드문 물레방아와 조촐하게 앉힌 정자며 연못 가운데 석가산까지 갖추어 놓아 종손의 안목을 짐작케 했다. 실내에는 족보 뭉치가 올려져 있는 선반과 제사를 모시는 제기며 전통 복식인 두루마기와 갓을 쓰고 근엄한 표정으로 찍은 종손 박인학 씨의 증조와 조부, 선친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어 5대 봉제사를 모시며 500년 종손으로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종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려운 세월을 딛고 일어선 의리 있는 형제들




“이 마을에서 18대로 오롯이 살아온 건 아닙니다. 저희 가문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곳은 강화도였고 그곳에 선산이 있습니다. 지금도 친척들이 많이 살고 계십니다. 고조 때 또 한 번 이동이 있었는데 세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문경새재를 넘어 예천에 자리 잡고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6대조와 5대조는 벼슬에 올라 홍패와 백패 교지를 받아 대대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백패만 남아 있습니다. 횡성에서 살게 된 것은 농사를 짓고 살던 선친께서 그것만으로는 살림이 어려워 목수 일을 배워 일을 하시다가 이곳(횡성)에서 학교를 짓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고로 몸져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종손은 13살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맡게 되었다. 누님 세 분과 남동생, 5대 봉제사를 책임지는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상급 학교 진학이 어려워 종손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웃에 살고 있다는 누님 박춘자(72) 할머니 내외가 놀러 왔다가 한 말씀 거들었다. “우리 5형제는 남다른 우애가 있습니다. 살림은 어려워도 크고 작은 일에 의견 충돌 한번 없었습니다. 종손이 모든 일을 솔선수범하였고, 힘든 일도 짜증 한번 내는 일이 없어 형제들이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울산에 사는 작은동생네가 제사 때가 되면 큰 생선이며 고기 등 장을 모두 봐가지고 참석을 합니다. 동생 댁이 매달 종손에게 용돈을 보내는 집안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종손이 여유가 없어서 보내는 게 아니라 동생의 도리로 행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주변에서 우리 형제를 두고 우애가 남다르다고 부러워들 하지요.”

그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을 이겨내면서도 형제가 똘똘 뭉쳐 집안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모두 종손 덕이라며, 이날도 칠순이 넘은 노인이 부엌에서 차종부 일을 거들고 있었다. 나라에서 으뜸가는 부자들도 형제간에 서로 재물을 많이 갖겠다고 다투는 뉴스를 보면 오히려 유산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부모님 덕에 우리 형제가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웃었다.

부모의 노력과 고생을 빛나게 한 차종손




강원도 산골이라 넓은 논밭이 없다. 능선이나 골짝마다 빈 땅을 한 뼘도 놀리지 않고 감자와 옥수수를 심어 양식을 삼다가 아이들 공부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마침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넉넉해 물레방앗간을 차려 집안 살림이 많이 폈다고 한다. 당시에는 농기구가 없던 시절이라 방앗간에서 벼를 찧을 수밖에 없었다. 방앗간 덕에 동생을 공부시키고, 아들딸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특별한 자녀 교육법이나 가훈이 따로 있었느냐는 질문이 무색할 답이 돌아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일을 하면서도 먹고살기가 힘들었는데, 아이들 공부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하는 학원 같은 건 있는 줄도 몰랐지요. 아이들이 부모의 노력과 고생을 눈으로 보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던 외아들 환웅(?熊·38) 씨는 횡성에서 초등학교과 중학교를 마치고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항공대에 진학을 했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을 어쩌지 못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했다.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지금은 박사과정 중이며 대학에 강사로 있다. 아들과 손자 성찬(成燦·6) 군, 며느리는 서울에서 생활을 한다. 딸은 음성으로 시집을 갔고, 집에는 내외만 산다. 제사 때는 물론 집안에 특별한 날만 되면 서울에서 며느리가 달려와 싹싹하게 어른들을 맞고 일도 척척 잘해 이 댁에서는 며느리를 가문의 보물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며느리 은진 씨에게 모두가 피하는 어깨 무거운 종부자리에 시집온 내력이 따로 있는지 물었다.

“대학 때부터 사귀다가 7년 만에 혼인을 했기 때문에 종부의 무게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울토박이이고 친정은 요즘 말하는 전형적인 핵가족이어서 제사 때 친척들이 많이 찾아와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대나무 숲 울창한 산 둔덕에 황토로 지은 아담한 2층 양옥의 종가. 외양도 실내도 생활하기 편리한 신식 집이지만 실내에는 족보 뭉치와 제사를 모시는 제기며 두루마기와 갓 차림의 근엄한 표정의 종손의 증조와 조부, 선친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벼슬길에 오른 조상의 교지도 가보로 보관하고 있는, 500년 종손으로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종가이다.

제사 음식 준비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어른들이 계시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매번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회 같은 음식으로 전형화돼 있어서 정성스럽게만 준비하면 된다. “실은 어머니와 고모님이 하시지 제가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앞치마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기만 하다가 친척들 오시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반가이 인사하다 보면 음식 장만이 끝나 있어요. 꼭 전통을 지킨다는 명제보다 제사가 아니면 일가친척들이 모일 일이 없기 때문에 제사 모시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삿날은 우리 집안의 축제날이거든요. 무엇보다 아들은 아기 때부터 시골 생활을 체험하면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자라서인지 사회성이 좋아 교육적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은진 씨는 천생 하늘이 내린 종부였다.

쌀 한 톨 생산되는 데 1년이 걸려



며느리 은진 씨가 존경하는 분으로 시아버지를 꼽듯이 종손은 친화력이 있어 뵈는 편안한 인상과 건강한 모습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산을 베개 삼고, 들을 이불 삼아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상록수 같은 종손에게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비결을 물으니 스스로의 노동으로 지은 쌀과 제철에 나는 산나물, 들나물을 맛있게 먹는 것 외에는 영양제나 보약 같은 건 먹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종부 손계순 씨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두 분 다 병원 신세를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 편히 지내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부부의 표정은 밝고 순했다.

“농사는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씨를 뿌려두면 때에 맞추어 하늘에서 비가 내려줘야 하고 뿌리를 내리면 싹이 나는지 관찰해야 하며 줄기와 잎이 생기면 비좁지 않도록 중간 중간 솎아 주어야 건강하게 자랍니다. 자식 키우듯 정성을 기울여야 열매를 맺습니다. 자연의 도움 없이 정성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농사입니다.” 요즘 귀농 인구가 늘고 있는데, 그들에게 진정한 농부로서 한 말씀 부탁드렸다.

“무턱대고 공기가 좋고 한적함이 좋아 귀농을 꿈꾸는 분들은 생각을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 중에 농사짓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자동차 한 대를 만들다 실패하면 다시 만드는 데 하루가 걸린다면, 쌀 한 톨 생산하려면 1년이 걸립니다. 한 번 실수를 하면 만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년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그 경험을 토대로 견뎌낼 수 있지만 잘 모른 체 달려들면 성공보다 실패율이 높아요."

예전에 4대가 한 울타리 안에 살았던 이유도, 연세 많은 어른들의 경험에서 쌓은 지혜를 물어 배우면서 농사일을 해야 했다. 농사짓는 방법을 적어둔 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삶




“우리는 지금 자연의 순리를 어기며 사는 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어요. 한겨울에 노란 참외가 나오고 정월에 딸기가 수확됩니다. 뜨거운 태양빛에 익어야 달고 시원한 수박은 여름에 갈증을 해소하는 과실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찬 음식이 들어가면 오장육부가 오그라드는 겨울에 수박을 먹으니 우리 몸이 성할 수가 있겠습니까? 암환자가 늘고 이름 모를 병들이 생겨나는 것도 모두 문명이 만들어 내는 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손과 종부는 지금도 해가 긴 여름에는 새벽 2시에 일어나 들로 나가 농사일을 한다.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고 청정한 벼를 키우기 위해서다. 가문을 이어갈 아들과 손자가 먹을 양식을 짓기 위해서니 몸으로 행할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에서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할아버지의 삶이 땅을 기대고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초상이 아니겠어요.”

곤드레나물밥으로 차린 제철 밥상



이날 점심상에는 햇나물이 주인공으로 밥상에 올라와 소박한 듯했지만 푸짐했다. 곤드레나물밥과 돌나물 물김치는 국 대신 밥과 궁합이 잘 맞았다. 두릅은 세 가지로 변주되어 상에 올랐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과 데친 두릅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무친 나물, 기름에 지져 고소한 전이다. 전은 데친 두릅에 밑간을 한 다음 역시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가루로 반죽을 하여 맛이 특별했다. 산나물 뜯으러 산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산더덕은 껍질만 벗겨 아무 양념 없이 그냥 먹었는데 쓴맛이 하나도 없고 상큼한 향기와 씹는 맛이 아주 부드러웠다. 자연의 향기가 온전히 몸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이날 먼 길을 온 취재진을 위해 종손이 일부러 장에 나가 횡성 한우 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부위를 구해와 즉석에서 굽고 잔대 싹, 돌미나리, 취, 삽주 싹 등 나물에 집에서 담근 된장을 바특하게 끓인 강된장을 곁들여 쌈으로 먹었다. 임금님의 12첩 반상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즐겼다.

시중에서 먹던 곤드레나물밥과는 차원이 다른, 여린 나물이 지닌 순한 맛과 향은 감동이었다. 쌀을 30분 정도 불렸다 솥에 안쳐놓고 손질한 곤드레나물을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꼭 짜서 다진 파·마늘, 집간장 등 갖은 양념을 하여 무친다. 밥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양념한 곤드레나물을 넣어 뜸을 들인다. 밥이 다 된 뒤에 나물을 넣어야 색이 그대로 살아있어 입맛을 돋운다고 했다. 홋잎나물, 쑥, 참나물 등으로도 밥을 지어 먹는데, 먹다보면 문득 이렇게 찾아온 봄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때마다 제철 재료로 저장음식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종부의 일이다.

“시어머니께서 초봄에 나는 어린 풀은 어느 것이나 뜯어 먹어도 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초차(百草茶)라 이르기도 했다지요.”

두릅과 취나물, 산뽕나무, 가죽나무와 씀바귀, 쑥부쟁이, 참취, 메밀, 홋잎, 냉이 등 수십 가지 나물을 맛볼 수 있는 게 바로 봄철이다. 그러다 햇빛이 강해져서 독이 올라 잎이 다소 뻣뻣해지면 장아찌를 담근다. 여름에는 마늘종과 마늘, 콩잎, 팥잎 등이 장아찌의 재료가 된다. 재료들을 손질하여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진간장, 식초, 청주, 설탕을 동량으로 섞어 끓인 다음 한 김 날린 뒤 뜨거운 상태로 재료가 충분히 잠길 정도로 붓는다. 어느 정도 익으면 장물을 따라 다시 한 번 끓여 부어두면 시간이 맛있는 장아찌를 만들어 준다. 고비와 고사리는 제상에 올리기 위해 뜯어 말려둔다.

축 읽지 않고 형제가 제례 음식 준비



“저희 집은 제사에 축을 읽지 않습니다. 아버님 말씀이 조용한 밤중에 조상을 모시는데 축 소리를 듣고 혼이 놀라서 그냥 갈 수 있기 때문에 축은 생략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종부가 옥색 제례복을 입고 두 번째 잔을 올리고 형제가 제각각 제물을 한두 가지 준비해 오는 것은 제사를 모시는 모든 댁들의 본보기가 될 듯했다. 또한 정월대보름날 오곡밥과 나물을 준비에 조상을 섬기는 세시제(歲時祭)도 이 댁의 특징이었다.

종부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5대로 지내던 제사를 3대로 줄여 주셨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1년에 기제사만 여섯 번이다. 제물은 돌아가신 분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린다. 시어머니 제례 때는 기주 떡을 올린다. 울산에 사는 종부의 동서는 생선이나 과일 등을 준비해 오고, 과천에 사는 큰시누님은 떡을 준비해 온다. 원주 사는 시누님은 돼지고기와 고임새를 준비해 와 종가에서는 탕과 나물, 두부를 만들어 간단한 전만 붙이면 된다. 추석에는 송편과 증편을 올리고 설에는 만두를 넣은 떡국과 절편, 인절미를 만든다. 설, 추석 차례상에도 기제사와 똑같은 제물이 오른다.

신주로부터 첫째 줄에는 밥과 국, 술잔과 간장을, 두 번째 줄에는 쇠고기를 양념해 구운 육적과 두부를 두툼하게 썰어 소적으로 올린다. 어적은 도미와 민어, 조기를 준비하고 그 옆으로 네모진 편에 웃기떡으로 찹쌀 부꾸미를 올린다. 세 번째 탕 줄에는 한 가지 탕과 전이 오른다. 네 번째 포 줄에는 대구포를 올리고, 나물은 뿌리나물 도라지, 줄기나물 고비, 잎나물 시금치를 담는다. 나박김치와 식혜도 있다. 다섯 번째 과줄에는 밤, 대추, 곶감, 약과, 유과 등이 오른다. 모시는 분은 돌아가신 한 분만 모신다. 종가의 법도를 엄격하게 지키시던 아버님이 남기신 제례 규범이다.

힘든 세월 가고 건강한 삶 누리는 노부부




두릅으로 세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데친 두릅에 밑간을 한 다음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가루로 반죽하여 전을 부치고, 데친 두릅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무친 나물, 데쳐서 초고추장을 곁들이는 두릅강회. 잔대 싹, 돌미나리, 취, 삽주 싹 등 대지의 맛과 향을 가득 머금은 봄나물에 집된장을 바특하게 끓인 강된장을 곁들여 쌈으로 즐겼다. 열심히 땀 흘려 농사짓고 제철에 나는 산나물, 들나물 먹으며 욕심 버리고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 이 댁 어른들의 건강 비결이다.

종가에 시집와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춘천이 고향인데 스무 살에 아홉 살이나 연상인 종손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님 모시며 살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고된 일을 하며 살았는데 물레방앗간 일을 보시다가 사고로 한쪽 팔을 다친 어머니가 풍까지 겹쳐 거동이 어렵게 되었어요. 시어머니 대소변을 4년 동안 받아 냈는데 시아버님도 말년에 4개월 동안 거동을 못 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찌 감당했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손위 시누이들이 고생한다며 다독여 주었고 어진 남편이 있었기에 그 어려운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시아버님 돌아가셨을 때는 3000명 가까운 문상객을 대접하는 일도 힘든 일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장례식장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집에서 상을 치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참기 어려웠던 고생도 다 옛일이 되어버린 노부부는 제철 음식 즐기면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대나무 숲 울창한 산 둔덕에 황토로 지은 아담한 2층 양옥의 종가. 외양도 실내도 생활하기 편리한 신식 집이지만 실내에는 족보 뭉치와 제사를 모시는 제기며 두루마기와 갓 차림의 근엄한 표정의 종손의 증조와 조부, 선친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벼슬길에 오른 조상의 교지도 가보로 보관하고 있는, 500년 종손으로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종가이다.

두릅으로 세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데친 두릅에 밑간을 한 다음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가루로 반죽하여 전을 부치고, 데친 두릅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무친 나물, 데쳐서 초고추장을 곁들이는 두릅강회. 잔대 싹, 돌미나리, 취, 삽주 싹 등 대지의 맛과 향을 가득 머금은 봄나물에 집된장을 바특하게 끓인 강된장을 곁들여 쌈으로 즐겼다. 열심히 땀 흘려 농사짓고 제철에 나는 산나물, 들나물 먹으며 욕심 버리고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 이 댁 어른들의 건강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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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연자 한배달우리차 문화원장
에디터이은숙
사진박태신
발행2012년 6월호
쿠켄 표지
제공 쿠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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