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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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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예조참판 박시수(朴蓍壽)의 조선왕조실록


조선조 순조(純祖)때인 1810년에 부안의 현감(縣監)오늘날의 군수으로 부임하여 1813년까지 근무했던 박시수(朴蓍壽)라는 분이 쓴 글씨다. 이분은 후에 참판(參判)에까지 오른 분인데 박시수(朴蓍壽) 1767 ~ 1834 에 대한 조선왕조 실록및 문과방목의 기록을  간추려 본다.

정조(正祖)8년(1784년), 정시(庭試) 을과1(乙科1)  
생년(生年)  1767년, 정해 자(字)   성용(聖用) 본관(本貫)   반남(潘南) 거주지(居住地)   경(京) 이다.

정조 10년( 1786) 한림의 권점(圈點)을 행하였는데 이때 5점을 맞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등이었다

정조 12년( 1788) 승문원 회권시 김유기의 선발과 관련하여 논쟁한 김회빈•김재일 등을 처벌하니, 상이 전교하기를
“범갑과 처호가 과연 괴원에 예속했었다면 그 손자가 배척당하는 것은 박절하다고 하겠으나, 이 말이 경의 입에서 나왔으니 또한 불순한 형적(形迹)의 혐의가 있다. 오늘 경의 말에 따라 삭직하였다가 내일 다시 영상의 말로 인해 서용(敍用)한다면 어찌 전도(顚倒)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이어 물러가 동료 재상과 상의해서 아뢰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전교하기를,
“어제 경연에서 좌상이 아뢴 바는 그 뜻이 비록 소란을 억제하는 데 있는 것이었으나, 마침 영상이 등연(登筵)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處分)하지 않았다. 단자를 올린 것과 원리에 분부한 것이 전례가 있고 없고는 고사하고라도 어찌 감히 소란을 일으켜 임금에게까지 알려지게 한단 말이냐. 회권하는 일이 지중한 데 순조롭게 끝나지 못하게 한 것은 또한 일의 체면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어찌 이런 회권이 있을 수 있느냐. 박시수(朴蓍壽)는 겨우 동자(童子)를 면한 나이로 이 분쟁의 일에 앞장서 참여하여 기쁜 마음으로 죄과(罪科)를 범한 듯하다. 저가 집에 비록 부형이 없지만, 그 외당(外黨)이 잘 교계(敎戒)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마땅히 신칙하고 면려하여 분쟁을 종식하고 소란을 금지하는 뜻을 보여야 한다.
하고, 회빈•재일은 한 등급을 낮추고 시수는 삭직의 형전(刑典)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시수는 고 봉조하(奉朝賀) 서명응(徐命膺)의 외손이다

정조 17년( 1793) 화기를 맞고 천명을 잇는 방도로 죄명을 벗겨주고 벼슬길을 터주았는데 이 때에 경사가 겹치고 조정과 민간이 조용하고 편안하였다. 그러자 상이 화기를 맞아들이고 하늘의 명을 이어가는 방도는 막힌 자들을 소통시키고 침체한 자들을 진작시키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조와 병조에 신칙하여 죄명을 벗겨주는 정사를 크게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참하(參下)로는 박시수(朴蓍壽)•등을 혹은 전조에 명하여 검토해서 의망하게 하고, 혹은 어필(御筆)로 망단(望單)에 보태 써넣기도 하고 혹은 전망(前望)에 넣기도 하여 비점을 내려서 차례로 서용하니, 수십 년 동안 침체되어 있다가 비로소 벼슬길에 오른 사람도 더러더러 있었다.

정조 18년( 1794박시수(朴蓍壽)를 사헌부 지평으로, 순조 9년(1809) 홍문록(弘文錄)을 행하였는데,3점(點)을 얻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 등이었고, 순조 12년(1812) 도당록을 4점(點)을 받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등 이다.또한 순조 13년( 1813) 전라도 암행 어사 홍대호(洪大浩)의 서계에, 부안 현감(扶安縣監) 박시수(朴蓍壽),등의 실상을 논하였으므로, 모두 경중에 따라 감죄하게 하였다.

순조 16년(1816) 삼도감(三都監)의 별단(別單)을 판하(判下)하였는데 이때  섭상례(攝相禮) 박시수(朴蓍壽)•등은 모두 품계를 올려 주고, 순조 22년( 1822) 함경도 암행 어사 조인영(趙寅永)이 서계를 올려, 영흥 전 부사(永興前府使) 박시수(朴蓍壽), 등의 논하니, 모두 경중에 따라 처벌하게 하였다. 순조 25년(1825)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순조 31년( 1831)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부(父)   박상한(朴相漢) 조부(祖父)   박만원(朴萬源) 증조부(曾祖父)   박사수(朴師洙) 외조부(外祖父)   서명응(徐命膺) 처부(妻父)   조시위(趙時偉) <국조 문과 방목>

휘(諱) 시수 어른은 윗글 박찬민님의 말씀데로 남일공 응남(應男)의 9대 종손으로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영사재(永思齋) 현판과 영사재 아래에 있는 참봉공 휘 동민(東民)의 신도비를 쓰신 분입니다.

<경신보 2권 1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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