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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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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박엽(朴燁)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2008jsl님의 블로그에서 갖어온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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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엽(朴燁)-병자호란

  인물평가 (조선) 2015.03.29. 17:31


병자호란- 박엽(朴燁)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아래 글은 광해군의 사촌 동서로 평안도관찰사로 있던 박엽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조반정 후 바로 사형을 시켰는데 그 이유는 병사들이나 백성들을 마구 죽이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하였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친척이고 병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혹시 모를 변란을 방지하고자 사형을 시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아래 글을 보면 인조반정 후 이분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병자호란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개인적으로는 욕먹을 행위를 한 것이 많았다고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손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 어우야담(유몽인 지음)에 있는 이야기

박엽은 젊었을 적 나의 조카 유철과 벗이었다. 유철이 여러 소년배들과 더불어 우리 집 뜰 안에 모여 있었는데 문득 뜨거운 한 줄기의 물이 밖에서 지붕을 지나 날아 들어와 의관(衣冠)에 뿌려졌다.

소년들이 놀라 이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 틀림없이 박숙야가 왔을 것이다.” 문득 나가보니 박엽이 행랑채 밖 노상에 서서 지붕 위로 오줌을 뿌리고 있었다. 박엽의 집은 목천(충청도 천안)에 있었는데 목천과 서울의 거리는 247리였다.

소매 속에 밥 한 그릇을 넣고 느지막이 소매를 휘두르며 떠나면 미처 날이 저물지 않아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의 걸음걸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길가의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다만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군과 읍을 다스리는데 있어서는 대단히 위엄이 있어 관사(官事)를 곧 바로 갖추었으므로 이르는 곳마다 유능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2. 대동기문(강효석 편찬)에 있는 이야기

박엽은 반남 박씨로 자(字)는 숙야(叔夜)이며 야천 박소의 증손이었다. 박엽이 나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빼어났으며 하는 말마다 사람들을 놀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박응천이 한번은 밤에 등불을 들이라 하고는 박엽에게 시를 지어보라 한 적이 있었는데 즉시 “ 등불이 방을 드니 밤이 바깥으로 나가네” 라는 시구(詩句)를 지었다.

또 한번은 이웃 아이들을 따라 최유원 공의 집에서 놀았는데 마침 그가 외출하였기에 벽에다가 “ 주인은 산위의 산이요. 손님은 입안의 입이로다” 라고 큰 글씨로 써 놓았다. 최공이 돌아와 누구 짓이냐고 묻자 아이들은 모두 겁이 나서 감히 대답을 못하였는데 박엽이 자신이 했노라고 나섰다.

최공이 시를 보고 내심 감탄하고 있던 차에 물음에 사실대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커가면서 자기 기운만 믿고 남의 이목에 아랑곳없이 사람을 업신여기니 여러 젊은이들이 그 기세에 누리어 감히 대들지를 못했다.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자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드려 소생시킨 일도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길짐승이나 날짐승처럼 숨어버렸는데 박엽도 조모를 업고 피란길에 올랐다가 여러번 위급한 상황을 겪고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명나라 군사들이 장기간 국경에 머물면서 박엽이 중국말에 능숙하고 글을 잘 짓는 것을 보고는 늘 시를 주고받으며 혀를 차며 칭찬하였다. 정유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자 명령을 엄격히 하여 아래 사람들의 기강을 바로 잡으니 멀고 가까운 지방의 사람들이 모두 그 위엄에 복종하였다.

명나라 사람들이 그가 지방을 잘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 박엽이 이곳에 오래 있기만 하면 조선에서는 서쪽의 오랑캐를 걱정할 까닭이 없으리라.” 고 말했다 한다.

당시 광해군이 정치를 문란하게 하고 대비를 유폐시키기 까지 하자 박엽이 분통을 터드렸다. 심지어 “ 이이첨이 하는 짓을 보니 끝내는 왕위까지 빼앗을 거다. 내가 도저히 좌시하지 못하겠다.” 고 하며 자객을 모아 암살하려 했다.

이이첨이 명나라 사신을 맞는 접반사로 평안도에 오자 박엽이 그 숙소로 찾아 갔는데 마침 어떤 어미가 불효한 아들을 고발하였다. 박엽이 뜰에다 그 아들을 끌어다 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 어미와 아들은 하늘의 본성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면 이는 국법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천지가 있는 이래로 어미도 모르면서 수령 자리를 차지한 놈은 오지 이이첨 하나인데 하늘 아래 어찌 두 놈의 이이첨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법에 따라 처형해 버리니 좌우에서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이이첨도 고개를 숙이고 눈만 휘둥그레 뜰 뿐 끝내 성을 내지 못하였다.

임술년에 건주의 여진족이 우리 땅을 빼앗고자 하여 압록강 북쪽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박엽도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자 오랑캐들이 박엽인 줄 알아차리고 다만 사냥하러 왔을 뿐이라고 변명하며 군대를 이끌고 철수해 버렸다.

그는 적을 여탐하는 일에 귀신같아서 오랑캐들의 동정과 허실을 낱낱이 모르는 것이 없이 늘 손바닥에 놓고 보는 듯하였다. 때로는 오랑캐 두목의 붉은 투구를 훔쳐와 금으로 장식하여 돌려주는 일도 있었으니 적들은 그를 귀신이라 여길 정도 였으며 박엽이 죽을 때 까지는 다시 제 욕심을 채우지 못했다.

계해년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내부의 혼란도 점차 안정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히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훈신(勳臣)들은 “ 박엽의 부인이 폐위된 왕과 인척관계라 박엽이 그에 대한 사사로운 정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며 불안해하였으며 또 박엽의 위세와 명성이 너무 큰 것을 우려했다.

결국 “ 박엽이 법을 집행함이 잔혹하고 평안도 일대를 위세로 제압하니 지금 처치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올 후환이 두렵다.” 라고 의논을 모아 사람을 함부로 죽였다는 죄를 씌워 처형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도원수 한준겸이 평안도 중화군에 군영을 차려두고 있었는데 조정에서 그에게 완전 무장한 군사를 동원해 박엽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한준겸은 “ 숙야가 어찌 무장한 기병들을 기다렸다가 죽을 사람인가?” 하였다.

박엽은 그 변고를 듣고도 조금도 동요함이 없다가 원수가 보낸 전령을 보고야 그제야 뜰 아래로 내려와 어명을 받았으나 그 때까지도 인조반정이 일어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의금부도사에게 “ 죄명이나 듣고 죽고자 하오” 하고 청하자 도사가 반정이 일어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박엽은 “ 여러 공신들이 어찌 나를 이런 참혹한 지경으로 몰아넣는고?” 하며 탄식하였다.

처형당할 즈음에 사람을 아내에게 보내어 “ 내가 죄 없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부인이 왕과 인척인 때문일 따름이오.” 라고 알렸다. 또 자기가 관리했던 군량의 출납부를 도원수의 군영에 보내었으니 이는 자신이 죽고 난 뒤 함부로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우려한 까닭이었다. 일을 처리한 뒤 목에다 밧줄을 매어 잡아당기라고 재촉하여 마침내 죽게 되었다.

김신국이 대신 평안도관찰사로 임명되자 백성들에게 박엽에 대한 사사로운 원수를 갚을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자 원한을 품었던 집안에서 떼를 지어 들고 일어나 난동을 부렸는데 하지 않는 짓이 없었다.

한준겸이 군량 출납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 숙야처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도 끝내 재앙을 면치 못했구나.” 하고는 난동을 일으킨 우두머리를 목 베었다. 조정에서도 이 사정을 알고 김신국에게 죄를 내리고 박엽을 고향에 묻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 전에 박엽이 승평부원군 김류를 찾아보고는 붉은 담요와 기름먹인 바가지를 많이 주었는데 김류가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했다. 반정을 일으키던 날에 붉은 담요를 잘라 군사들의 신표로 삼고 기름먹인 바가지로 사졸들이 목마를 것에 대비하였다. 이는 박엽이 이미 반정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증좌이니 기이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화를 입기 전날 감영 아래에 있는 법수교에서 놀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

한 도 평안도 감사가 되어 천년 된 법수교 아래서 노네
마땅히 알지니 달 뜬 오늘 밤 이제는 길이 슬픈 밤 될 줄을

앞일을 예언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장동자라는 이가 저자거리에 숨어 살았는데 박엽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 이는 이이첨 같은 도적이 초래한 일이로다.” 라고 여러날을 두고 비분강개했다고 한다.

박엽은 장수로서의 지략이 있어 천문과 지리, 병법과 점복술에 모두 능통하였다. 여러 고을을 다스림에 있어 위엄과 명령이 추상같았으며 공무를 바로바로 처리하였다.

광해군의 동서로 평안도관찰사로 십년이나 있으니 위엄이 온 도에 떨쳤고 북쪽 오랑캐도 또한 그를 두려워하여 감히 국경을 넘어오지 못했다.

한번은 비장을 불러 술과 안주를 주면서 “ 네가 이걸 가지고 중화현 구현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건장한 사내 둘을 반드시 만날테니 내말이라 하고 이렇게 전하라. 너희들이 우리나라를 왕래하는 것을 사람들이 감쪽같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여행길이 심히 고단할 터라 너희들을 생각해 술과 안주를 보내니 한번 취하도록 마시고 속히 돌아가는 게 좋을 게다.”

비장이 즉시 가 기다렸더니 과연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박엽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돌아보고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며 “ 장군은 신인(神人)이오. 우리가 어찌 감히 다시 오겠소?” 하고는 술을 들이켜고 사라졌다. 이들은 용골대와 마부대로 우리나라에 몰래 잠입하여 나라의 허실을 정탐하던 길이었는데 박엽만 홀로 그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한번은 총애하는 기생에게 “ 오늘밤에 네가 나를 따라가서 좋은 구경거리 하나를 보겠느냐?”하니 기생이 쾌히 응낙하였다. 밤이 되자 박엽이 검은 노새를 타더니 앞에다 기생을 태우고 주단으로 자기 몸에다 기생의 허리를 묶었다. 눈을 뜨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채찍을 휘둘러 쏜살같이 달리니 두 귀에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한 곳에 이르러 눈을 떠서 보라 하는데 서리가 덮인 광막한 큰 들판에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군영은 하늘에까지 잇달아 있었고 등불이 휘황하게 빛났다. 기생에게 장막 속에 숨어 있으라 하고 박엽이 의자위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잠시 후 징소리가 나면서 몇리에 걸쳐 철기(鐵騎)가 성난 파도처럼 길게 줄을 지어 몰려왔다.

대열을 벌이어 진형을 갖추고는 두 패로 갈리어 용력(勇力)을 과시하였다. 가운데 있는 한 장수는 팔척이나 되는 키에 머리엔 푸른 깃을 꽂은 붉은 투구를 쓰고 몸엔 용 무늬 갑옷과 검은 상의를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별 무늬가 새겨진 보검을 잡고 있었다.

그 자가 장막을 헤치고 들어오더니 웃으면서 “ 네가 과연 왔구나. 오늘밤에 먼저 검술을 시험하여 자웅을 가리는 게 좋겠다.” 고 하자 박엽이 “좋다” 고 응수하였다. 칼을 집고 의자에서 내려와 들판위에 마주보고 서서는 둘 다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얼마 뒤 두 사람은 한줄기 흰 무지개로 변하여 구름 덮인 하늘로 솟구쳐 들어갔는데 단지 공중에서 서로 칼 부딪는 소리만이 들려왔으며 가끔 붉은 번갯불이 번쩍였다.

마침내 그 장수가 땅에 떨어져 고꾸라지자 박엽이 공중에서 날아 내려와 오랑캐 장수의 가슴통에 걸터앉더니 “ 어떤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는 “ 장군의 신이한 용력을 만 명이라도 당해내지 못할 것을 오늘 더욱 잘 알게 되었소이다.” 어찌 다시 장군과 우열을 다투겠소.“ 라고 대답했다.

박엽이 웃으며 일어나더니 같이 장막 안에 들어가 술잔을 들어 권하고선 각자 몇잔을 취하도록 마시고 나더니 그 장수는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그러나 일리를 못가서 갑자기 대포 소리가 한방 울리자 포연과 화염이 하늘에 까지 뻗쳤다.

저들 한 부대의 떼지어 있던 병사와 말들이 운무(雲霧)속으로 말리어 들어가고 땅위에 있던 자들도 역시 모조리 풍비박산이 되어버렸다. 아까의 장수가 다시 혼자 말을 달려오더니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십사고 애걸하자 박엽은 웃으며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는 기생을 불러 같이 노새를 타고 올 때처럼 돌아왔는데 그 때가지도 하늘은 아직 밝지 않았다. 박엽이 싸운 자는 오랑캐 장수인 누루하치였으며 싸운 곳은 그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었다.

계해년 3월 인조가 반정한 뒤 박엽이 등불 아래 홀로 앉아 칼을 어루만지며 탄식하고 있는데 창 밖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박엽이 물었다. “ 누구냐” “ 아무개 올씨다.” “무슨 일로 왔는고?” “ 공은 장차 어떤 계책을 세우시렵니까?” “ 나에겐 정해둔 계책이 없으니 어디 자네에게 물어보세” “ 상책과 중책, 그리고 하책이 있으니 그 중에서 택하십시오.”

“ 무엇이 상책인고?” “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를 방어하고 북으로 금나라와 내통하십시오. 그러면 임진강 서쪽은 조선 왕조의 국토에서 떨어져 나올 것이며 앞으로 위타처럼 황제를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 중책은 어떤 것인가?“

“ 빨리 병사 3만명을 동원하여 제가 그들을 거느리고 서울로 진격하게 하신다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습니다.” “ 하책은 어떠한가?” “ 공은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은 신하이니 순순히 나라의 명을 받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박엽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 나는 하책을 따르겠노라” 그러자 그는 “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종적을 감추겠습니다.” 하고는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용골대였다고도 한다.

박엽이 조정으로부터 사형의 명을 받을 적에 온 조정에서 모두 그가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 하고 겁을 내어 명을 집행하러 가려는 자가 없었다. 구인후가 예전에 그의 막하에 있어보아 박엽의 사람됨을 익히 알기에 자청하여 평안도로 내려갔다. 박엽이 원수를 진 집안이 많아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칼을 들고 쳐들어오자 구인후가 그들을 막고서 시신을 관에 넣고 염을 하여 이송하였다.

상여가 중화군에 이르자 마침 구인후가 어영대장으로 임명되어 먼저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틈에 원수진 집안에서 쫓아와 관을 빠개고 시체를 들어내어 마디마디 잘라버리고 가버렸으니 이는 곧 천인 때문이었다.

박엽이 젊을 적에 운수를 점쳐보았더니 천인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온 일이 있었다. 천인은 바로 구인후의 어릴 적 이름인데도 박엽이 그 사실을 모르고 애꿎은 사람을 무수히 죽여 천명을 채우고자 했으니 어찌 그리 어리석었던가?

박엽이 죽음의 명을 받았을 때 힘센 자로 하여금 목에다 줄을 매어 잡아당기게 하고서 목숨이 끊어졌으며 그 즉시 큰 길에서 다시 처형했다. 이 때 창기(娼妓)들이 와서 구경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 너희들은 모두 감사가 사랑한 기생들인데 죽는 것을 보고도 곡(哭)도 하지 않고 태연히 서서 구경만 하니 어인일인가?” 그러자 기생들은 “ 새로 오는 사또에게 수청 들러 가오.” 하고 서로 즐겁게 웃으며 가버렸다.

- 이원명의 동야휘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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