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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년 명문가, 서계 박세당식 위기관리

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⑨
서계 박세당식 위기관리

[한경비즈니스 2006-11-20 ]

아서 밀러가 1949년에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에선 위기에 몰린 아버지의 극단적인 선택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 윌리 로만은 전원생활을 좋아했지만 성공하겠다는 야망에 불타 세일즈맨이 된다. 한때 잘나가던 그는 두 아들에게도 그의 성공신화를 불어넣으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점차 지쳐갔고 회사는 ‘용도폐기’된 그를 해고해버린다. 로만은 급기야 아버지로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험금을 남겨주기로 하고 교통사고로 자살을 위장한다. 하지만 로만과 같은 극단적 위기관리는 살아남은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교훈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한 개인이나 가문이 그가 몸담았던 조직 속에서 위기에 처하거나 위기의 징후를 암시받았을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지난호에서 살펴본 다산 정약용의 경우 그가 충성을 다했던 조직의 반대파로부터 탄핵을 당해 급기야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유배 중에도 서신교육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공격경영을 선택한다. 다산에게서 보듯이 지침을 내리는 ‘가문주식회사의 CEO’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가문의 흥망이 엇갈리게 된다.

반남 박씨 가문을 대표하는 서계 박세당(1629~1703)도 그러한 ‘가문주식회사의 CEO’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계는 다산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었다.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이른바 ‘청와대 386’으로 활약하다 39세 때 탄핵을 받아 대역죄인으로 몰려 유배를 떠난 반면, 서계는 40세에 스스로 벼슬을 내던지고 서울을 떠나 수락산 자락인 석천(石泉)에 은거를 택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핵심인재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게 마련이다. 문과에 장원급제해 화려하게 관직생활을 시작한 서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석천에 은거했지만, 조정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사간과 대사헌, 한성부판윤 등 수없이 고위관직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을 성찰하며 왕실과 지배세력이 금과옥조로 받들던 주자의 견해에 새로운 주석을 달아 <사변록(思辨錄)>이라는 책을 지었다. 그의 경전 해석은 조정과 학계에 큰 반발을 불러와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극단의 공격을 받았다. 은거를 택한 그는 역설적으로 이 책으로 인해 탄핵을 받아 유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서계는 장원급제와 관직, 은거, 관직 회유와 거부, 저술, 유배의 굴곡진 삶을 살며 시대와 불화를 겪었는데, 자녀들 역시 아버지와 닮아 있다. 그의 두 아들인 태유와 태보는 당대의 인재였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했고, 차남 태보는 아버지에 이어 과거에 장원급제를 했다. 그러나 두 형제 모두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태유는 역모죄를 뒤집어쓰기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요절했다. 차남은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 진도로 유배 도중 숨졌다.

두 아들의 죽음을 본 서계는 68세 때 남은 막내아들과 손자 등 자손들에게 ‘계자손문’(戒子孫文)이라는 글을 남겼다. 여기서 서계는 “매사에 조심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되 그것이 진리와 어긋난다면 무리가 따르더라도 맞서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아들을 잃고도 군자로서의 호연지기를 잃지 않고 자녀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후손들은 서계의 이런 처신과 가문경영을 ‘석천 경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서계가 내린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이나 가문이 위기에 처할 경우 비겁하게 시류에 타협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때로 정공법이 개인이나 가문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세상을 밝히는 ‘아름다운 횃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대부분 정공법 대신 시류에 타협해 성공하기도 하지만 존경받는 기업은 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런 기업은 윌리 로만과 같이 이용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인재들을 ‘용도폐기’해 수많은 세일즈맨의 죽음을 부르곤 한다. 반면에 유한양행을 일군 고 유일한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도 정공법으로 가문과 기업을 경영해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횃불’로 세상을 밝히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2006-11-20 ] 에서 퍼온글입니다.



박재완  [2007/01/01]  ::
 제가 처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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