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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 박지원 가르침에 성큼 다가가다
[박상현의 책 세상]
국제신문선임기자 2015-02-13  

연암 박지원 가르침에 성큼 다가가다

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돌베개
이 책의 원제목은 과정록(過庭錄)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이다. 박종채는 연암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말 우의정을 지낸 박규수의 아버지다. 박규수는 평양 감사 재직 때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불을 지르고, 개화파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던 그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가 행여 아버지의 일생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가친을 옆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일과 친인척, 고인의 벗들의 증언, 기록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사실성과 객관성이 높다.

본문과 역주를 꼼꼼하게 대조하면서 읽다 보면 연암 박지원이라는 대문호의 실체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박지원 문학에 대한 입문서이자 18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수령의 행정과 양반사회의 풍류와 풍속들까지 음미하기에 손색이 없다. 1998년 이 책을 한글로 옮긴 서울대 박희병 교수가 박종채의 과정록이 '조선 시대 전기문학의 금자탑'이라고 한 말이 전혀 지나치지 않다.

연암 박지원은 일생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문명을 떨쳤다. 그 드높은 명성만큼 시기와 비방도 함께 따라다녔다. 정조 즉위 후 최고의 실권자 홍국영은 박지원을 못마땅하게 여겨 항상 그에게 타격을 입힐 기회를 엿볼 정도였다. 1793년 정조는 '열하일기'로 잘못된 문체를 퍼뜨린 것을 속죄하라는 하교를 연암에게 내렸다. 정조는 당시의 문풍이 예스럽지 못하고 비속하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잘못이라고 했다. 또 남공철을 통해 내린 하교에서 "열하일기는 내가 이미 읽어보았다. 다시 단정하고 바른 글을 짓되 열하일기와 비슷하고 회자되기가 열하일기와 같이 되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벌을 내릴 것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유득공은 "지금 글상자에는 한 조각 묵은 원고도 없을 터인데 장중한 작품을 쓰려 한들 어찌 20권을 채울 수가 있을까. 천하에 낭패한 사람으로 연암 같은 이가 없다"고 탄식했다. 당시 박지원은 장문의 반성문을 쓰고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문체반정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조는 청나라 서적의 수입을 금지하고 패관류 문학의 영향을 받은 열하일기류의 글에 철퇴를 가했다. 이 사건은 틀에 박힌 고문체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는 문체혁명에 대한 탄압이었다. 개혁군주 정조의 보수적인 또 다른 모습이다.
연암은 글쓰기의 요체를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지극하다." 문체에서의 실사구시이자 자유로운 글쓰기를 강조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생각이다. 아마도 정조가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도 이러한 생각의 새로운 흐름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어느 눈 오는 날, 또는 비 오는 날 벗들과 어울려 거문고를 타면서 풍류를 즐기는 연암을 비롯한 벗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그려져 있다. 안주라고는 만두 한 가지밖에 없지만 며칠을 두고 나누는 현직 정승 유언호와의 담론 모습은 지극한 청빈을 느끼게 한다. 200년 전 연암과 그 벗들의 담백하고 청빈한 삶은 번잡한 생활에 지친 우리에게 한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과 깨달음을 준다.  

세계일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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