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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계 박세채(朴世采)는 이천이 낳은 대유학자


신은천 (新恩川) 53

문묘에 배향된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는 이천이 낳은 대유학자



이천신문 / 2012.01.02

지난호에 치암송질이 읊은 가숙십경(家塾十景)중에 3번째가 南溪驟雨(남계취우)라고 했다. 남계란 어느 개울을 말하는 것일까? 가숙10경이란 백사 내촌리에 있던 여산송씨네 강당 인근 즉 백사, 멀리는 설봉산에 쌓인 눈을 읊은 것을 감안하면 남계(南溪)란 이천에서 찾아야 한다. 동국여지승람 고적(古跡)조에 보면 南川(남천)은 서목(徐穆)의 안내로 고려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건넌 내라고 했다. 그리고 안흥방죽 애련정기문에 보면 “徐穆者(서목자) 導之利涉南川(도지이섭남천) 太祖喜之(태조희지) 賜今號(사금호)” 즉 서목이라는 사람의 안내로 남천을 건너 승리(견훤정복)함을 기쁘게 여겨 이천(利川)이란 고을 이름을 하사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천(山川)조에 복하천은 관아동쪽8리 지점에 있다고 했다. 이는 복하2교 지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복한내를 남천이라고도 했음을 알겠고 남천을 남계라고도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즉 남계가 처음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하겠다. 복하천이 남천 또는 남계라? 남계 남계 되뇌이고 보니 대유학자 남계 박선생이 떠오른다. 남계(南溪)는 박세채(朴世采)의 호(號)다. 박세채는 인조 10년(1632)에 태어나 숙종 21년(1695)까지 산 숙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반남이고 시호는 문순(文純)으로 영조 40년(1764) 문묘(文廟. 대성전)에 배향된 대유학자 이다.

박세채는 진사급제하여 세자익위사세마를 지내고 숙종이 즉위하자 좌천되어 각지를 전전하다가 숙종 6년(1680)에 성균관사업으로 임명 좌의정까지 올랐으나 요직은 모두 사퇴하였고 당쟁의 중재에 힘썼으며 많은 상소로서 수제치평(修齊治平)의 길을 건의하였다. 그가 죽자 숙종은 애도하여 특히 도승지를 보내어 조상하였다. 남계는 심학지결(心學至訣)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일명 호를 현석(玄石)이라고도 했다. 박세채의 호 남계(南溪)는 어디에서 취한 것일까? 필자는 박세채가 이천 인으로 남천 즉 복하천에서 나온 것으로 단정한다. 혹자는 나더러 엉터리 주장을 한다고 한다. 과연 엉터리일까 사실인가 살펴보자.

박세채는 인조 때 영의정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외손자이고 상촌은 신둔 고척리 전의이씨 청강이제신의 사위이다. 즉 박세채의 외할머니 이씨는 청강이제신의 딸이다. 박세채는 마장 작촌리에 영면한 이구준(李구俊)의 신도비문을 지었으니 이구준은 바로 박세채의 외할머니와 남매간이 된다. 박세채의 외가가 이천이다. 그러면 생가는 어디였을까. 고려 때 전국의 많은 성씨들이 외적과 왜구의 발호로 강이 먼 이천지방으로 몰려와 피난을 하면서 가문을 보전해 왔다. 즉 이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세채의 증조부는 설봉서원이 건립되던 해인 명종 19년(1564)에 문과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낸 박응복(朴應福)이고 증조모 선산임씨는 임억령 백령의 아우 구령의 딸이며 신둔 수하리 사람인 해주최씨 고죽 최경창의 부인 선산임씨와는 친형제이다. 고중최경창은 명종 선조대에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추석날 만월(滿月)을 기다리는 시를 읊었는데 시 제목을 南川待月(남천대월)이라 했다. 그리고 박세채의 8촌인 세성(世城)과 6촌인 세상(世相)이 모두 백사 내촌리 송시길(宋時吉)의 사위이다. 그러면 반남박씨의 이천 뿌리가 왜 없어졌을까. 이천 연혁에 보면 영조 5년(1729) 박필상(朴弼祥)이 역적으로 몰리는 바람에 부사고을 이천이 현감고을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박세채의 6촌인 세상의 손자 필현(弼顯)과 세환(世桓)의 손자 필몽(弼夢)이 영조 4년(1728) 이인좌난에 연루되어 역적으로 몰린다.  

또한 을사오적의 1인인 박제순의 조부 종면(宗冕)의 묘소가 신둔 남정리 한성부에 있는데 종면의 5대조가 세성(世城)이다. 말하자면 역적이 여러 명 나다보니 이천에 뿌리감던 반남박씨네가 다른 고장으로 떠나가버린 것이다. 고로 남계박세채의 이천뿌리가 오리무중되어 버렸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신은천 (新恩川) 53
이천신문 / 2012.01.02
http://www.icnews.kr/news/article.html?no=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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