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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혁거세를 중국 황제의 딸 선도산 성모가 낳았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중국 황제의 딸 선도산 성모가 낳았다?  
<35> 선도산 성모설화
2016.02.15



경주 서쪽의 선도산은 왕릉과 왕릉급으로 추정되는 많은 고분이 등성이를 이루고 있어 쉰등마을로 불리고 있지만 정상부위에 마애삼존불과 함께 신라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높이 390m 선도산을 오르면 중턱에서부터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동남쪽으로는 전망이 확 트여 있다.
발 아래로 형산강이 경주시가지의 옆구리를 휘감아 유유히 흐르는 모습은 천년을 거슬러 화려했던 통일신라까지 이어지는 듯한 착각도 하게 한다.

선도산이 많은 문화재를 안고 있지만 찾는 이들의 발길은 소원한 편이다.
신라를 크게 일으켰던 진흥왕의 고분과 특이한 형식의 삼층석탑, 신라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성모설화, 서라벌을 굽어보고 있는 깨어진 마애삼존불과 같은 뛰어난 이야기거리를 간직한 문화유적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탄생 설화로 삼국유사 등에 전하는 성모설화가 깃든 선도산 정상으로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성모설화
경주 선도산 정상부근 암벽을 등뒤로 하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성모사’라는 사당이 있다.
삼국유사에 중국 황제의 딸이 신선도를 익혀 신라에 기거하면서 성모가 되어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박혁거세를 낳은 성모라는 기록이 있다. 1976년에 복원한 사당으로 신라 성모의 정령을 모신 사당이다.

경주 선도산 정상부근 암벽을 등뒤로 하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 ‘성모사’라는 사당이 있다.
삼국유사에 중국 황제의 딸이 신선도를 익혀 신라에 기거하면서 성모가 되어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박혁거세를 낳은 성모라는 기록이 있다. 1976년에 복원한 사당으로 신라 성모의 정령을 모신 사당이다.

신라인들은 선도산은 신라왕경의 서쪽을 지켜주는 신성한 산으로 생각하면서 서악, 서형산으로도 불렀다.
또한 선도산에 성모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신성시 하면서 국가에서 지내는 삼사(三祠) 중에서 소사를 선도산에서 지냈다.

또 선도산의 성모가 진평왕 때 안흥사 불사를 도와준 이적에 대한 내용도 삼국유사에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안흥사의 여승 지혜가 꿈에 선도산의 성모가 불전을 수리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라며 내 자리 밑에서 금 10근을 꺼내 쓰라고 했단다.
여승이 꿈속의 말처럼 신사의 밑을 파보니 황금 160량이 나와 무사히 불전을 수리했다.

선도산 성모는 중국 황제의 딸이었다.
사소라는 이름으로 일찍이 신선술을 배워 신라에 와 머물렀다.
아버지인 황제가 독수리 발에 편지를 매달아 성모에게로 보냈는데 ‘소리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삼으라’고 하여 소리개가 선도산에 앉아 사소는 선도산의 지선이 되었다.
이후 선도산을 서연산(西鳶山)이라고 불렀다.

신모는 오랫동안 선도산에 살면서 나라를 지켰다.
신령스런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나 신라가 세워진 이후 삼사의 하나로 차례를 올렸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또 선도산의 성모가 처음 진한에 와서 아들을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신라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두 성인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부식이 송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그를 접대한 중국의 관료가 김부식에게 우신관의 여신상을 가리키며 ‘이 상은 귀국의 신인데 누구인지 알겠는가’라는 질문에 ‘옛날 중국 황실의 딸이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들을 낳아 해동의 지조가 되었으며 그 여인은 지선이 되어 선도산에 있는데 그녀의 상이다’라고 답했단다.
이러한 내용들이 중국의 역사서와 삼국유사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경주 남산의 유적지 ‘나정’에 전해내려오는 박혁거세 탄생설화와 배치되는 이야기로 혼돈을 가져오게 하는 기록이다.

선도산 정상 가까이 이르면 ‘성모사(聖母祠)’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1976년에 복원된 것으로 각색된 설화가 사대주의 사상에 더해져 전해지고 있다.
사당 뒤편 암벽에는 언제 새겨졌는지 모르는 ‘성모구기(聖母舊基)’라는 글이 음각돼 있다.

삼국유사든 삼국사기이든 역사서로 이해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믿어야할 사실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기록으로 전하는 내용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흔적들과 일치하고 있는 곳에서 희미하게 역사의 퍼즐을 모자이크해볼 뿐이다.

◆선도산 마애삼존불  

▲선도산 정상부근에 높이 7m에 이르는 입체형 마애불이 있다. 머리와 얼굴이 코와 입부분을 남겨두고는 떨어져 나가버렸다. 발 다섯 개를 조각한 암석을 발부분에 붙여둔 이색적인 모습이다.



성모사 사당 바로옆에 거대한 암벽에 입체적으로 새겨진 마애삼존불입상이 있다.
가운데 본존불의 7m에 이르는 큰 키에 우선 압도되기도 하지만 코와 입을 중심으로 양편의 볼과 얼굴이 깨어진 모습은 안타깝게 한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암벽이 청색으로 선도산 정상부근에 자리해 경주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마애삼존불이 그렇게 신라 도읍지를 굽어 살피며 중생들의 어려움을 헤아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청석의 균열이 눈에 보이게 훼손이 진행되고 있다.
수년전 선도산의 산불이 크게 번졌을 때 높은 열 때문에 삼존불의 얼굴과 몸체의 훼손이 빠르게 진행돼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우려가 크다.

본존불의 얼굴과 머리가 코와 입을 남겨두고 떨어져 나가버려 안타까움이 있지만 큰 코와, 꽉 다문 입, 각진 턱선이 박력있게 표현되어 힘이 넘쳐나는 모습이다.
반면 어깨는 둥글게 크지 않게 표현되었고, 장대한 체구에 시무외인, 여원인의 수인이 특이하게 새겨져 왼손은 완전히 꺾여진 모습이다.
암벽의 뿌리, 입상의 발끝부분에 다른 암석으로 다섯 개의 발을 조각해 붙여둔 모습이 이채롭다.

협시보살들은 입체적인 모습으로 조각해 대좌에 따로 세운 특이한 형식이다.
지금은 앞으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협시보살의 뒷부분에 핀을 박아 뒤편 암벽에 고정해두고 있다.
네부분으로 크게 파손돼 계곡에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해 접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5개 조각으로 절단되었다.
현재도 왼쪽팔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본존불이 앞으로 넘어질 듯 튀어나온 모습이고 협시보살은 암벽에 고정돼 꼿꼿이 선 모습이다.

이 마애삼존불은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초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풍만한 느낌이지만 체구가 원통형이고 어깨가 좁게 움츠러든 것 등이 군위 삼존석굴의 본존과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의 본존과 비슷한 모습이다.
  

◆서형산성
신라시대 경주의 동서남북으로 산성을 쌓아 나라를 지키는 보루를 삼았다.
남쪽에는 경주 남산의 남산신성, 동쪽에는 명활산성, 북쪽에 북형산성에 이어 선도산성, 또는 서형산성으로 불리는 산성이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서형산성의 축조시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신라시대 석축산성으로 삼국사기에 신라 진평왕 15년(593년)에 명활성을 개축하고 서형산성도 둘레 2천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어 진평왕 13년에 둘레 2천854보의 남산성을 신축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무렵으로 짐작된다.

서형산성은 산 정상을 포위해 둘레를 쌓은 테뫼식 돌성으로 동북쪽의 자연지세를 이용해 산중턱을 따라 성을 쌓았다.
지금은 대부분 붕괴된 상태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북쪽 중턱부근에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보면 높이가 3m 정도이고 안에서는 2m 정도의 높이다.
산성의 윗부분 넓이가 4m에서 5m의 폭을 보여 상당히 견고하게 쌓았던 성으로 보인다.

선도산 정상에는 돌탑이 3~4개 꽤나 높이 쌓여 돌무덤을 형성하고 있다.
높이 2m, 둘레 6m 정도의 돌탑들이 정상에 오른 이들의 기도도량으로 쓰이기도 한다.

땀 식힐 여유와 함께 실없이 엎드려 닳지않은 돌 하나 주워 얹는 등산객들의 모습에서 오래된 신앙 아닌 신앙을 본다.
꽤나 큰 돌들이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어른이 쉽게 들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를 가진 돌들이 많다.
이 돌들이 모두 서형산성에 쓰였던 석재라는 분석이다.

◆문성왕과 장보고
선도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의 입구에 쉰등을 형성하는 고분군이 있다.
그중 문성왕릉이 그렇게 크지 않은 고분으로 후손들을 맞고 있다.

문성왕은 신라 제46대 왕으로 45대 신무왕의 아들이다.
신무왕은 43대 희강왕의 사촌동생으로 이름은 우징이다.
42대 흥덕왕이 죽자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어 왕의 사촌동생이었던 균정과 재륭이 왕위를 두고 죽고 죽이는 다툼을 벌여 재륭이 43대 희강왕이 되었다.
신라하대 본격적인 왕위다툼이 이어졌던 역사다.
재륭이 희강왕으로 등극하는데 힘을 모았던 ‘명’이 다시 희강왕을 죽이고 스스로 44대 민애왕이 되었다.
희강왕과 민애왕에게 죽임을 당한 균정의 아들 우징이 장보고의 힘을 빌어 민애왕을 죽이고 45대 신무왕으로 등극했다.

문성왕은 아버지가 장보고의 힘을 빌어 왕위에 올랐으므로 장보고를 진해장군에 임명하고 예복을 선사했다.
한편 군사력이 강한 김양에게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병부의 책임을 맡겼다.
장보고와 김양을 서로 견제토록 한 것이다.
장보고와 김양은 신무왕을 도울 때는 서로 힘을 합했다.

하지만 문성왕이 김양의 딸과 결혼하며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장보고가 문성왕을 만나 “아버지를 도와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워 왕실의 안정을 이루었다.
신무왕이 ‘내가 왕위에 오르면 그대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고 약속했다”며 김양을 편애하는 것이 서운하다고 원망했다.

문성왕은 이에 장보고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양의 딸과 결혼한 상태에서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하들이 윤리문제와 신분의 차이를 이유로 들어 반대해 장보고의 딸과 결혼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장보고는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장보고는 거짓 충성맹세를 하고 의탁해온 문성왕의 장수 염장에게 죽임을 당했다.
신라해역 청해진에서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의 전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왕권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진 혈족간의 전쟁과 대신들간의 알력싸움은 국정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백성들의 배고픔을 심각한 수준으로 내몰았다.
또 끊임없이 밀려드는 후백제와 고려, 일본 등의 침략에 결국 나라가 멸망의 길을 걷게 했다.
고분을 찾아 가는 역사기행은 흥망성쇄의 흐름을 읽게 하면서 여러 교훈을 준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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