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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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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림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


계림 어디선가 닭 울음소리 들려오는 듯…신들의 나라 ‘신라’ 되살아나네  
<37> 신라왕족의 탄생설화
2016.02.29


경주 첨성대와 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아름드리 고목이 우거진 숲이 계림이다.
오랜 세월을 고증이라도 하듯 나무등걸이 투박하게 벗겨지며 수술흔적이 완연한 고목들이 즐비하

‘경주 is Korea’ 라는 말이 어느덧 경주의 캐치프레이즈로 활용되고 있다.
경주사람들이 삼국시대 우리나라를 하나로 아울렀던 통일신라의 시대를 빗대어 하는 말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경주는 신라의 터전이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침략을 받으며 가장 약한 나라로 백성들의 고난이 심하기도 했지만 결국 삼국을 통일하며 화려한 전성기를 풍미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경주사람들은 신라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내세우고 있다.

박, 석, 김 3성을 가진 56명의 왕들이 나라를 다스리며 천년의 영화를 누려온 신라. 왕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의 주인공들로 오늘날 경주 박씨와 석씨, 김씨 시조다.

비단 왕들의 조상뿐 아니다.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하기 이전부터 신라의 땅 서라벌을 다스려왔던 사람들은 6부촌의 촌장들로 그들 또한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설화를 가지고 있는 신비한 전설속의 인물들이다.

이씨의 조상이 된 알천 양산촌장 알평, 소벌도리라는 촌장은 돌산의 고허촌을 다스린 정씨의 조상이다.
취산 진지촌 또는 빈지촌, 병지촌으로 불리는 화산에 내려와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된 지백호 촌장, 모량부 손씨의 조상은 이산에 내려온 구례마로 대수촌의 촌장이었다.
명활산에 내려와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된 지타는 금산 가리촌을 다스렸다.
금강산에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된 호진은 명활산 고야촌의 촌장이었다.
이들 6명의 촌장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왕으로 옹립했다.

화려한 신라 천년의 향기를 누려왔던 3성의 왕손 탄생설화를 따라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6부촌장과 신라왕족 시조의 탄생설화

신라는 천년의 긴 세월을 박, 석, 김 유일하게 3성을 가진 56명의 왕들이 건국에서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최초 신라가 부족국가의 형태를 띠면서 국가로 성장하는 초기에 박혁거세가 박씨 성을 가진 이로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해 모두 10명, 4대 석탈해왕을 비롯해 석씨 성이 8명, 13대 미추왕이 최초로 왕위를 차지했던 김씨 성이 모두 38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신라의 왕좌는 세습제에 의해 왕의 아들이 왕권을 이어가는 비교적 순탄한 형태를 띠었지만 아들이 없는 경우 딸에게 왕권을 넘겨주기도 했다.
고구려 백제와 다르게 선덕여왕을 비롯해 3명의 여왕이 탄생했던 것이다.
동생이나 조카 등의 왕족들에게 세습되기도 했지만 통일신라시대 중흥기를 지나 하대로 이어지면서 치열한 왕위다툼으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졌다.

아무리 전쟁을 통해 왕권을 찬탈해 왕위를 이어갔지만 이들은 모두 박, 석, 김의 3성, 왕족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왕은 신성한 탄생설화를 가진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성골, 진골,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왕족만이 왕이 될 수 있었고 귀족은 귀족으로 대접을 받으며 특권을 누렸고, 농사를 짓고 삽과 괭이를 만드는 사람은 그러한 직업군에서 일생을 마무리해야 했던 신분사회로 왕족은 신비한 탄생설화를 배경으로 특별한 권력층으로 기능해 왔다.

◆나정과 알영정



경주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를 따라 서남산에 이르는 입구에서 남강마을로 들어서면 소나무 고목으로 둘러싸인 나대지가 있다. 경주시가 2002년에 조사발굴해 박혁거세가 탄생한 설화가 깃든 우물터와 8각 건물지 등을 확인하고 묻어둔 곳이다. 가운데 불룩한 곳이 건물지와 우물이 있던 곳으로 나정으로 불린다.



경주 오릉 동쪽에 있는 알영정 옆의 연못. 알영은 박혁거세의 부인으로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경주시가지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35번국도를 따라 가다가 서남산으로 접어드는 길, 남간마을로 들어서면 고송이 에워싼 나대지가 나온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설화가 깃든 곳으로 경주시가 2002년부터 2005년까 복원정비계획을 추진하며 발굴을 추진한 곳이다.
당시 우물터와 신궁으로 추정되는 8각 건물지와 함께 많은 유물이 확인됐다.

이곳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비슷한 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69년 3월 6부촌장들 이 알천 언덕에 모여 덕망이 있는 사람을 골라 나라를 세울 것을 의논하던 때였다.
이들이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의 밑 나정에서 이상한 기운이 비치고 백마 한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백마는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자줏빛 알이 있어 깨어보니 용모 단정한 아이가 나와 길렀다.
당시 알이 박과 같아 성을 ‘박’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 한다고 하여 ‘혁거세’라 이름 지었다.
이 아이가 자라 13세 되던 해에 왕으로 추대해 거서간으로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

또 서라벌 사량리에 ‘알영’이라 부르는 우물이 있었다.
어느 날 알영정 근처에 사는 할머니가 신기한 짐승의 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았더니 용이 우물가에서 신음을 내더니 옆구리로 아이를 낳고 날아가 버렸다.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알영정에서 발견한 아이라 이름을 ‘알영’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이의 입술이 새의 부리처럼 뾰죽했다.
어느날 발천에서 할머니가 씻어주었더니 부리가 떨어져 예쁜 계집아이의 모습이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임금 박혁거세가 사실을 확인하고 알영을 아내로 맞이했다.

박혁거세는 61년간 후덕한 정치를 통해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다.
하늘로 올라갔다가 시체가 4부분으로 나뉘어 떨어져 알영부인과 함께 5개의 무덤으로 장사지냈다.
그래서 오릉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박혁거세는 신라의 시조이자 박씨들의 시조가 되었다.

◆용성국 왕후의 알 석탈해

경주 소금강산 남쪽 숲속에 신라 4대왕 석탈해왕릉이 있다.
역사적인 기록 등으로 미루어 석탈해왕릉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석탈해는 신라 4대 임금이다.
석탈해의 아버지는 완하국의 임금인 함달파 혹은 화하국의 임금이라고도 전해진다.
어머니는 적녀국의 공주이다.
박혁거세의 아들 남해가 2대왕에 올랐고, 그의 아들 유리는 누이의 남편 석탈해가 어질고 나라일에 밝아 임금에 오를 것을 권했지만 석탈해가 거절하면서 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가 높으니 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자고 하며 떡을 물어 이빨의 수를 헤아려 유리가 3대왕에 올랐다.
유리왕이 죽자 석탈해는 62세의 나이로 4대 임금으로 왕위에 올랐다.

석탈해의 탄생설화도 난생설화다.
용성국의 용왕이 적녀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 7년만에 왕비가 커다란 알을 낳았다.
용성국을 일본이라고 해석하는 사학자가 있기도 하지만 일본의 동쪽 나라로 다르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용왕은 ‘사람이 알을 낳았다는 것은 나쁜 징조일 것’이라며 상자 속에 넣어 보물과 노비들을 배에 실어 보냈다.
“인연이 있는 곳에 닿으면 나라를 세우고 가문을 이루거라”고 했다.
이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석탈해다.
붉은 용이 나타나 석탈해가 탄 배를 지켜주어 서라벌 가야국 땅에 닿았다.
배가 닿은 가야국에 아진의선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바닷가에 까치들이 몰려와 우는 것을 보고 아진의선 할머니가 이상히 여기고 가보았더니 아이와 보물, 노비들이 있어 마을로 데려와 아이를 키웠다.

이 아이가 신라 4대왕이 되어 23년간 왕으로 있는 동안 마한, 백제 등의 침략을 받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했다.
석탈해는 신라 천년의 왕궁터를 자신의 집터로 빼앗는 잔꾀를 소개하는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석탈해는 신라 4대왕으로 석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를 태웠던 배가 정박한 곳으로 전해지는 양북면 바닷가에 그를 기념하는 유허비가 있다.
또 경주 소금강산 남쪽 소나무 숲속에 그의 왕릉과 그를 추모하고 제사를 모시는 숭신전이 있다.

◆계림 금궤에서 난 김알지


첨성대에서 반월성으로 이어지는 사적지구의 산책로 중간지점에 계림이 고목의 숲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수령 천년을 넘은 듯한 고목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고 초록의 새움이 튼다.
뙤약볕 내리쪼이는 계절이면 계림은 또 경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울창한 숲이 된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철이면 죽은 듯한 고목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보이는 어린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소나기 쏟아지는 여름철이면 사방이 어둑할 정도로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석탈해왕 9년 봄날 이른 새벽 호공이 닭 울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호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닭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어둠살이 짙은 숲 속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곳이 있어 보니 닭 한 마리가 홰를 치며 울고 있었다.
닭이 앉아 있는 가지에 번쩍이는 금빛 상자가 걸려 있었다.
이 소식을 알리자 탈해왕이 직접 숲으로 와 금궤를 내려 열자 상자 안에서 아기가 있었다.

금빛 상자에서 나왔다고 성을 ‘김’이라 하고 지혜롭다고 이름을 ‘알지’라고 불렀다.
훗날 태자인 김알지는 왕위를 이어받지 않고 유리왕의 아들인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김알지는 김씨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7대 후손 미추왕이 신라 13대왕위에 올랐다.

계림에는 충담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찬기파랑가’ 향가비가 고목인양 우뚝 서 있다.
또 계림 곳곳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듯 투박한 등걸과 수술한 자국이 선명한 모습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다.
더러 가지를 잃고 빈 몸으로 서 있기도 하며 계림을 이루는 나무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림으로도 불렸던 계림에서 오랜 시간을 건너온 고목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유쾌한 공부가 될 것 같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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