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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공 사당 오는 6월말 준공 예정
평도공 사당 오는 6월말 준공 예정

사당 건립 공사는 예정 공정 대로 진행 오는 6월말 특별한 일이 없는한 준공될 예정이며 3월22일(토) 상량식을 거행했다.

참고로 평도공에 대해 알아보면
● 평도공 (平度公) - 6世
휘는 은 1370 (공민왕 19년) - 1422(세종 4년) 고려말·조선초의 문신. 자는 앙지(仰之), 호는 조은(釣隱). 시호는 평도(平度)이다. 1388년(우왕 14)문과에 급제하였고 1386년 개성부소윤 (開城府少尹)이 되었다.
고려말의 학자인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상충(尙衷)의 아들이며, 이곡(李穀)의 외손이다. 문음(門蔭)으로 판숭복도감사(判崇福都監事)를 받은 뒤, 1385년(우왕 11)문과에 2위로 급제하여 권지전교시교감(權知典校寺校勘)·후덕부승(厚德府丞)을 거쳐 1391년(공양왕 3)에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 이듬해에 개성부소윤(開城府少尹)이 되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된 뒤에도 지금주사(知錦州事)가 되어 고과(考課)에 정최(政最)의 성적으로 좌보궐(左補闕)에 서용되고, 1394년(태조 3)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있을 때 태조의 다섯째아들 방원(芳遠)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하였다.1397년 사헌시사(司憲侍史)를 거쳐 이듬해에 발생한 무인정사(戊寅靖社), 즉 제1차왕자의 난 때에는 지춘주사(知春州事)로서 방원의 집권을 위하여 지방군사를 동원하였다.
이어 사헌중승(司憲中丞)·판사수감사(判司水監事)를 지내고 1400년(정종 2) 지형조사(知刑曹事)로 있을 때 발생한 제2차왕자의 난에서 역시 방원을 도와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방원이 왕세자가 된 1400년에는 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으로 그를 보필하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오른 뒤 1401년 태종의 즉위 후 중용되어 형조·호조·병조·이조의 4조 전서(典書)를 두루 역임하고, 좌명공신(佐命功臣)3등으로 반남군(潘南君:뒤에 潘城君)으로 봉하여졌다.
그뒤 강원도도관찰출척사(江原道都觀察黜陟使)·한성부윤·승추부제학(承樞府提學)을 역임하고, 1406년(태종 6)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제주도의 동불(銅佛)을 구하러 온 명사(明使)를 예의로 잘 접대하여 칭송을 받았으며, 이듬해에 진향사(進香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참지의정부사 겸 사헌부대사헌에 올랐다.이어 형조판서에 옮겼다가 1409년에는 서북면도순문찰리사 겸 평양부윤으로 평양성 축성을 마쳤다.
1412년에는 관향인 반남이 나주에 속하게 되어 금천군(錦川君)으로 개봉되었으며, 겸판의용순금사사(兼判義勇巡禁司事)가 되어 옥무(獄務)의 신장정수(訊杖定數)를 1차 30인으로 정하여 합리적인 형정제도를 시행하였고, 1414년 이조판서 때에는 고공(考功)행정제도를 개선하였다.
평도공은 성품이 본래 검약하고 집이 매우 가난하였다.어느날 태종이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문 앞에서 꽤 오래 기다렸는데 평도공이 비로소 나와서 맞으며 절을 하였다. 태종은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이 마침 조반을 지어먹고 있었사온데 입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몇 번 씹어 먹어도 내려 가지 않았습니다. 이때 문에 좀 지체 되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나 이다.
라고 하였다. 태종은 크게 감탄하고,청문 밖 고암 북바위에 있는 밭 몇 무(畝)을 주었다. 자손들이 대대로 그 밭을 지켜왔다고 한다. (壽谷集 에서 인용) 그리고 평도공이 홍문관으로 뽑혀 들어가서 경연(經筵)에 있은 지 5년이 되었는데,일을당할 때마다 반듯이 말을 조금도 회피 하지 않아 태종은 그를 꺼렸다.
일찍이 서쪽 변방에 성을 쌓는 일이 이롭지 않다는 점을 논할 때 그 말이 격렬해지자 모두 두려워 하였으나 평도공은 분발하여 말하기를「화와 복은 타고난 운명이다. 신하의 도리로서 마땅히 극진할 것은 충성이다.나의 도리를 다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역시 두려워 할 것이 아니다.」라고 간쟁을 더욱 힘차게 하여 마침내 그 요청을 허락하였다. (海東名臣錄 에서)
◎ 1子 - 규(葵) 참판공 1400 - 1437 예조참판
◎ 2子 - 강(薑) 세양공 ? - 1460 중추원 ,청백리
◎ 3子 - 훤(萱) 부윤공 ? - 1487 경주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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