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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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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통곡하는 ‘독립의 혼’
[경향의 눈]통곡하는 ‘독립의 혼’ 


〈강기석·본사 경영기획실장〉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내게도 적지 않은 팬이 있는 듯하다. 못난 글이나마 칼럼 내용에 대해 전화나 혹은 e메일 등을 통해 의견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 꽤 많다. 박관우라는 독자도 그런 분들 중의 하나다. 30대 후반의 장년으로 ‘뿌리찾기 범국민계몽회’라는 단체에서 족보를 연구하고 있다. 사귄 지가 벌써 7년이 넘은 것 같은데 나는 항상 겸손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순수한 그의 인간성이 좋다. 그 역시 첫 아들 얻은 소식을 내게 가장 먼저 알려야 한다고 믿을 정도로 나를 꽤 좋아하는 눈치다.
그가 최근 부탁할 것이 하나 있다며 신문사로 찾아 왔다. 두툼한 서류봉투를 꺼내면서 털어 놓은 그의 사연이 기이했다. 행방불명된 그의 작은 증조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교생이었던 1980년 처음으로 집안의 반남(潘南) 박씨 세보를 들춰보던 그는 증조할아버지 인서(仁緖)의 바로 아랫동생 의서(義緖) 할아버지의 이력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태어난 해(1895년)만 있고 후손은 물론 사망 연도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이었다. 주위의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했다. 궁금증을 가슴에 안고 지내던 관우씨는 90년대 초반 우연히 단서 하나를 얻었다. 집안 먼 친척 아저씨가 “어렸을 때 의서 할아버님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귀띔을 해 준 것이다.
그때부터 관우씨는 본격적으로 작은 증조부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할아버지의 고향인 고양시와 법원의 호적계를 샅샅이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다음에는 독립운동에 관한 서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관우씨는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라는 책에서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1927년 2월 일제경찰과 중국군 1개 중대의 습격으로 김혁·유정근·박경순·남혁 등 신민부 요원 12명이 체포되었다는 기사였다. 박경순(朴敬淳)이 누구인가. 족보에 적힌 의서할아버지의 자(字)가 바로 경순이 아니던가. 이 분 박경순이 혹시 박의서 그분이 아니신가. 하지만 무장독립운동비사, 독립항일투쟁총사 등 온갖 관련 서적은 물론 당시의 신문기사, 심지어는 일제 고등경찰요사까지 뒤져 보았지만 박의서라는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관우씨가 내게 부탁한 소망은 마지막으로 치안본부에 남아 있을 서대문형무소 수형자 기록부를 뒤져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박경순 의사는 만주에서 체포된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됐다 하므로 그 마지막 순간의 명부에라도 혹시 본명이 올라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치안본부의 명단에는 박의서는커녕 독립운동가 박경순의 이름조차 없었다.
관우씨가 가져온 서류중에서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보면서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만주·노령(露嶺)지역의 독립운동가 8,000여명 중에서 이름과 공적사항만 덩그러니 올라 있을 뿐 후손을 찾을 수 없어 서훈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거의 80a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관심이 어디 있는가. 일본 우익들의 역사왜곡만 소리높여 비난할 줄 알았지,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일제와 싸웠으나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내 자랑스런 선조들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 놓지도 못한 채, 아니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저들의 왜곡만을 문제삼고 있는 우리의 그 집단적 편리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것은 나를 포함한 해방후 세대가 친일파들이 제작한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94년 그 교과서의 현대사 재해석 노력이 일부 수구언론을 앞세운 친일 잔재들의 훼방으로 축소되거나 왜곡되어야 했던 우리의 사회상황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박경순은 끝내 박의서 할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형대에 서는 그 순간까지도 가족들에게 미칠 핍박이 두려워 본명을 숨겼던 진짜 박의서 그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후손들이 우렁차게 쏟아내는 반일(反日)의 레토릭이 공허한 위선의 시대에 이 위대한 민족혼은 지금 어드메서 통곡하고 계실까. 21세기의 진정한 한·일 파트너십은 일본의 반성보다도 먼저 우리의 자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강기석 kskang@kyunghyang.com〉

경향신문 최종 편집: 2001년 04월 12일 18: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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