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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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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부안군 신청사 뒤 참판 박시수(朴蓍壽) 금석문 새단장


예조 참판 휘(諱) 시수(蓍壽) 어른의 금석문 3점이 문화유적이 되어 전라북도 부안군 신청사 뒤 공원형 유적지에 공개될 예정이라는  2007년 8월 10일자 부안독립신문의 내용입니다.

  신청사 뒤 암각자 살려 공원형 유적지 조성
  바위에 쓰여진 '봉래동천(蓬萊洞天)' '옥천(玉泉)', '주림(珠林)' 글씨들 살려


  2009년도 12월 완공을 목적으로 부안군 신청사 기공식을 가진 가운데 부안군이 이 곳 부지 인근의 문화유적에 대한 보존 방침을 세워 관심을 끌고 있다.
  현 청사가 들어설 부지는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관아 흔적은 사라진 채 넓은 암반층만 남아 있다. 옛날부터 암반층이 성황산 쪽으로 넓게 분포돼 있어 문화재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곳은 암각자가 새겨져 있어 돌팍거리라 불릴 만큼 암반층이 형성돼 있다. 청사 뒷편 암반에는 초서체로 쓰여진 ‘봉래동천(蓬萊洞天)’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동편에는 봉래 서편에는 동천이라고 한자로 적혀있다. 이 암각자는 1810년 12월부터~1813년 4월까지 조선시대 부안현에서 현감으로 있었던 박시수가 쓴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또 다른 글씨인 ‘옥천’(玉泉)은 현재 부안군청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지금 청사 뒤편 암반에 조성된 우물을 일컫으며 자연암반을 파내고 다듬어서 만들어졌다. 옥천의 옆에는 주림(珠林)이라 글씨가 새겨져 있다.
  부안군은 이 세 글씨를 살려 신청사 뒤에 공원형 유적지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부안군의 문화유적 보존 계획은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안독립신문
박종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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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문익공(文翼公) 환경(桓卿) 박규수 (朴珪壽  1807 -1876 ) 어른도 1848년 급제하여 1850년 부안현감 을 역임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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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박찬민 종친께서 자유게시판에 올려주신글입니다
       박찬민 종친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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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 문과 방목에 기록된 박시수(朴蓍壽) 어른은
부(父)   박상한(朴相漢) 조부(祖父)   박만원(朴萬源) 증조부(曾祖父)   박사수(朴師洙) 외조부(外祖父)   서명응(徐命膺) 처부(妻父)   조시위(趙時偉) <국조 문과 방목>

비문으로 참봉공 휘 동민(東民)의 신도비, 주림옥천 봉래동천’(鎭石樓: 卽外三門在官衙前 今廢 樓下盤石上 參判 朴蓍壽書 珠林玉泉 蓬萊洞天 八字)”
<경신보 2권 1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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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간 박시수(朴蓍壽) 에 대한 조선 왕조실록의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조(正祖)8년(1784년), 정시(庭試) 을과1(乙科1)  
생년(生年)  1767년, 정해 자(字)   성용(聖用) 본관(本貫)   반남(潘南) 거주지(居住地)   경(京) 이다.
정조 10년( 1786) 한림의 권점(圈點)을 행하였는데 이때 5점을 맞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등이었다
정조 12년( 1788) 승문원 회권시 김유기의 선발과 관련하여 논쟁한 김회빈•김재일 등을 처벌하니, 상이 전교하기를
“범갑과 처호가 과연 괴원에 예속했었다면 그 손자가 배척당하는 것은 박절하다고 하겠으나, 이 말이 경의 입에서 나왔으니 또한 불순한 형적(形迹)의 혐의가 있다. 오늘 경의 말에 따라 삭직하였다가 내일 다시 영상의 말로 인해 서용(敍用)한다면 어찌 전도(顚倒)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이어 물러가 동료 재상과 상의해서 아뢰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전교하기를,
“어제 경연에서 좌상이 아뢴 바는 그 뜻이 비록 소란을 억제하는 데 있는 것이었으나, 마침 영상이 등연(登筵)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분(處分)하지 않았다. 단자를 올린 것과 원리에 분부한 것이 전례가 있고 없고는 고사하고라도 어찌 감히 소란을 일으켜 임금에게까지 알려지게 한단 말이냐. 회권하는 일이 지중한 데 순조롭게 끝나지 못하게 한 것은 또한 일의 체면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어찌 이런 회권이 있을 수 있느냐. 박시수(朴蓍壽)는 겨우 동자(童子)를 면한 나이로 이 분쟁의 일에 앞장서 참여하여 기쁜 마음으로 죄과(罪科)를 범한 듯하다. 저가 집에 비록 부형이 없지만, 그 외당(外黨)이 잘 교계(敎戒)하지 않은 것이 애석하다. 마땅히 신칙하고 면려하여 분쟁을 종식하고 소란을 금지하는 뜻을 보여야 한다.
하고, 회빈•재일은 한 등급을 낮추고 시수는 삭직의 형전(刑典)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시수는 고 봉조하(奉朝賀) 서명응(徐命膺)의 외손이다
정조 17년( 1793) 화기를 맞고 천명을 잇는 방도로 죄명을 벗겨주고 벼슬길을 터주았는데 이 때에 경사가 겹치고 조정과 민간이 조용하고 편안하였다. 그러자 상이 화기를 맞아들이고 하늘의 명을 이어가는 방도는 막힌 자들을 소통시키고 침체한 자들을 진작시키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조와 병조에 신칙하여 죄명을 벗겨주는 정사를 크게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참하(參下)로는 박시수(朴蓍壽)•등을 혹은 전조에 명하여 검토해서 의망하게 하고, 혹은 어필(御筆)로 망단(望單)에 보태 써넣기도 하고 혹은 전망(前望)에 넣기도 하여 비점을 내려서 차례로 서용하니, 수십 년 동안 침체되어 있다가 비로소 벼슬길에 오른 사람도 더러더러 있었다.
정조 18년( 1794박시수(朴蓍壽)를 사헌부 지평으로, 순조 9년(1809) 홍문록(弘文錄)을 행하였는데,3점(點)을 얻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 등이었고, 순조 12년(1812) 도당록을 4점(點)을 받은 사람은 박시수(朴蓍壽)등 이다.
순조 13년( 1813) 전라도 암행 어사 홍대호(洪大浩)의 서계에, 부안 현감(扶安縣監) 박시수(朴蓍壽),등의 실상을 논하였으므로, 모두 경중에 따라 감죄하게 하였다.
순조 16년(1816) 삼도감(三都監)의 별단(別單)을 판하(判下)하였는데 이때  섭상례(攝相禮) 박시수(朴蓍壽)•등은 모두 품계를 올려 주고,
순조 22년( 1822) 함경도 암행 어사 조인영(趙寅永)이 서계를 올려, 영흥 전 부사(永興前府使) 박시수(朴蓍壽), 등의 논하니, 모두 경중에 따라 처벌하게 하였다.
순조 25년(1825)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순조 31년( 1831) 박시수(朴蓍壽)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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