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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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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조선박씨 집성촌
350년 새월 말 잃었지만 민족의식 또렷

중국의 조선박씨 집성촌

<img src="http://img.hani.co.kr/section-kisa/2002/12/31/00700000012002123100440430.jpg">
중국에서 330~360여년 동안 ‘조선인’으로 살고 있는 박씨 집성촌이 3곳이나 있어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이들은 허베이성 칭룽셴(청룡현), 랴오닝성 가이셴(개현)과 번시셴(번계현) 등 만족(만주족) 자치현에 둥지를 틀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박씨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풍습을 지키고 있다. 언어는 완전히 잃어버렸으나 집마다 족보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중국화하긴 했으나 물김치와 된장이 이어지고 개고기와 매운 맛도 즐긴다. 만족과 한족에 둘러싸여 혈통도 만·한족과 섞여 있으나 조선인이란 의식은 핏속에 녹아 있다. 지난 12월 중순 세 마을을 찾아 이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봤다.

◇ 칭룽셴 박씨촌
마을을 가로지르는 ‘팔도하’라는 개울 위에 오리가 떠다니고 처마밑에는 옥수수가 바나나 송이처럼 매달려 있었다.
최고령인 박만우(79)씨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주름진 얼굴이 활짝 펴졌다. 가마솥에 고구마를 삶던 일손을 멈춘 그는 방안으로 들기를 청한 뒤 질화로를 끌어당겨 손 녹이기를 권했다.
그가 자랑스레 꺼낸 공민증(주민등록증)의 민족란에는 ‘조선’(朝鮮)이란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큰 조카가 항미원조(한국전쟁)에 참가했다”면서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숨진 형 박만순씨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다. 그는 민족탄압 정책이 서슬퍼렇던 1957년 10여명과 함께 성 정부를 찾아가 조선족임을 주장했다고 한다.
칭룽셴에는 다장쯔샹(大杖子鄕) 등 7개 향·진에 150~200명의 조선족이 흩어져 살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했다.

◇ 가이셴 박가구촌
투명한 시냇물이 흐르는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산자락에 둘러싸여 한겨울에도 포근한 이곳은 산사과와 산포도 산지로 유명하다.
읍내에서 출발하는 ‘박가구촌’행 버스가 자주 다닌다. 이장격인 박영상(60)씨는 조상들의 산소가 모여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산엔 ‘박○○의 묘’라고 적힌 묘석이 여러 개 서 있다.
멀리 보이는 말안장 모양의 안쯔산 동굴에는 신라 출신 조상들이 숨어지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박가구촌이란 마을 이름을 놓고 이웃동네 만주족 싱(邢)씨들과 소송을 벌여 이긴 적도 있다고 했다.
박씨 선조의 역사가 새겨진 비석과 돌절구도 보존되고 있고, 과수원 옆에는 마을을 수호하는 삼신당이 있다.
예전에는 사당이 있었으나 내전으로 없어졌다. 가을에는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박영해(40)씨는 “아이들이 조선어를 배우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화강암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건물에 사용될 정도로 질이 좋다. 이곳에는 40호에 200명 가량의 박씨가 살고 있다.

◇ 번시셴 박보촌
눈덮힌 마을 한가운데로 탕허가 흐르고 있다. 최고령자로 이곳에 정착한 지 11대째라는 박문창(84)씨는 깔끔하게 정돈된 방안으로 안내했다.
손자와 함께 사는 그는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던 빨간색 표지의 족보를 꺼내보였다. 표지에는 ‘박씨종보’라고 붓글씨로 써 있었다.
시내를 굽어보는 관먼산 중턱에는 선조들이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얽힌 동굴이 있다. 박명신(50)씨는 “3년전 작은 아버지인 박문우(당시 76살)씨가 족보를 정리하다 피를 토하고 숨졌다”며 효행과 예절을 강조하는 가훈이 실린 족보를 보여줬다.
이곳은 성 정부가 83년 ‘문명촌’으로 지정할 정도로 윤택했다. 유아원도 있었고 어린이날엔 한복을 입혔다. 청조 말에는 큰 공장이 운영돼 여기서 발행한 수표가 선양 일대에서 유가증권으로 통용될 정도였다.
반일 해방전쟁 출신 당 간부와 황포군관학교 출신 중장 등 인재도 많이 배출됐다.
교육을 중시해 박보공립소학교를 세웠으며 여대생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낙후된 농촌인 이곳에는 70호에 210명 가량의 박씨가 살고 있다.

한겨례신문 2003년 1월 1일자에서  칭룽셴 가이셴 번시셴/하성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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