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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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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7년 2월 7일.판돈녕부사 박준원의 졸기





순조 7년(1807 년) 2월 7일 1번째기사
판돈녕부사 박준원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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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돈녕부사 박준원(朴準源)이 졸(卒)하였다. 임금이 창경궁(昌慶宮) 금천교(禁川橋)에 나아가 거애(擧哀)하고, 하교하기를,
“병환은 비록 위독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회복할 것을 기대하였는데, 이제 세상을 떴다는 흉음(凶音)을 받드니, 놀랍고 한탄스러운 슬픈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다. 자후(慈候)가 요사이 미령함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런 망극한 일을 당하였으니, 장차 어떻게 우러러 위로할 것인가? 아! 경술년2077) 탄강(誕降)한 뒤로 지금까지 보호한 정성은 정으로 말하자면 조손(祖孫)의 친함이 있었고, 겸하여 보덕(輔德)의 스승이 되었다. 18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금중(禁中)에서 직숙(直宿)한 것이 하루와 같았으며, 경신년2078) 이후 큰 공과 위대한 업적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오늘이 있게 된 것과 나라가 태평 세월이 된 것은 이 누가 내린 것이며 이 누구의 힘인가? 그런데 지난해 섣달 한번 만난 것이 천고토록 영원히 이별이 될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 아! 이제부터 내가 누구를 의지할 것이며, 어느날 다시 보겠는가? 통탄스럽고 통탄스럽다. 졸한 판돈녕의 집에 동원(東園)의 부판(副板)2079) 한 부(部)를 각별히 가려서 보내고 녹봉은 3년을 기한으로 하여 그대로 보내라. 그리고 그 아들 중 입사(入仕)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거든 복(服)을 마치기를 기다려 즉시 조용(調用)하도록 하라. 이러한 처지와 훈로(勳勞)는 높이 보답하는 법을 더욱 늦출 수 없으니, 특별히 상상(上相)에 증직하고 예장(禮葬)은 대신(大臣)의 예(例)에 의거하여 거행토록 하라. 성복(成服)하는 날은 마땅히 친림하여 조문(弔問)하겠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련토록 할 것이며,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것은 시장(諡狀)을 기다리지 말고 즉일로 거행하도록 분부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각색의 비단 10필, 전칠(全漆) 7승(升), 무명과 포[木布] 각 5동(同), 쌀 50석을 실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박준원은 반남인(潘南人)으로, 수빈(綏嬪) 박씨(朴氏)의 아버지이다. 임금이 탄강(誕降)한 처음부터 정묘(正廟)의 명을 받들어 금중에 들어와 거처하며 보호하고 교도(敎導)하는 책임을 전담했는데, 조심스런 마음으로 공근(恭謹)하여 밤이나 낮이나 해이하지 않았다. 임금이 등극하자 지위가 더욱 높아졌으나 더욱 더 겸손하고 두려워할 뿐이었고, 성문(聲聞)이 외정(外廷)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성학(聖學)이 성취된 것은 그의 공이 많았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47책 573면
【분류】 *인물(人物) / *인사(人事) / *왕실(王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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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2077]경술년 : 1790 정조 14년.  
[註 2078]경신년 : 1800 순조 즉위년.  
[註 2079]동원(東園)의 부판(副板) : 동원은 원래 한(漢)나라의 관곽(棺槨)을 제조하던 관서로, 우리 나라의 장생전(長生殿)을 말함. 부판은 궁궐에서 쓰이는 관곽을 만들고 난 나머지 재목으로 만든 판재(板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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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2011/05/27 302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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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2011/05/27 27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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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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