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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 200주년 , 기념 행사 없어 아쉬움

<사거 200주년 맞은 박지원과 박제가>

이렇다할 기념 행사 없어 아쉬움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조선 영조 52년(1776) 8월 8일, 전라도 흥덕현(지금의 고창) 출신인 호남 '촌뜨기'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병신년(丙申年.1776년<영조 52>)에 서울로 상경한 김에 어찌어찌하여 그 해 8월 8일에 홍대용(洪大容.1731~1783) 집을 방문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는 박지원(朴趾源)과 박제가(朴齊家)와 이덕무(李德懋)가 있었다. 이 때 만남에 대해 황윤석은 박지원ㆍ박제가ㆍ이덕무를 가리켜 "모두 잠부(潛夫)로서 다문박식(多聞博識)하므로 같이 이야기할 만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황윤석은 고향인 호남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바람에 서울에서 활발하게 서로 교류하고 있던 홍대용ㆍ박지원ㆍ박제가ㆍ이덕무에 비해 '최신 정보' 습득에는 다소 뒤진 면이 없지 않았으나 박학(博學)과 다문(多聞)에서는 당대에 그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가 박지원 등을 가리켜 잠부, 즉, 잠자는 용(潛龍)이라 극찬하면서 아는 것이 많아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그의 방대한 일기인 '이재난고'에서 내리고 있다.

황윤석 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기라성이다. 하지만 출신은 달랐으니 남양홍씨 홍대용과 반남박씨 박지원은 명문 양반 적자였으나 밀양박씨 박제가와 전주이씨 이덕무는 서얼이었다. 조선 영ㆍ정조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서얼은 위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유득공(柳得恭)도 빼놓을 수 없다.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에 비해 나이도 13살이나 어리고, 출신성분도 현격하게 떨어지는 초정(楚亭) 박제가(1750~1805)는 '중국물'은 연암보다 먼저 먹었다. 때문에 선진문물에 대한 '개안'(開眼)도 더 빨랐던 듯하다.

그런 그가 청나라에 사신을 다녀온 다음인 1786년, 정조 10년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데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폭탄 발언을 한다.

"전하, 비단옷을 입어야 여공(女工)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요즘 경제학 용어로 풀어보자.

"각하, 소비를 권장하고 고용을 창출해야 국가경제가 부강해집니다." 이를 왜 폭탄발언이라 하는가? 당시는 주자성리학의 전성시대. 성리학은 실제야 어떻건 명목으로는 절검(節儉)을 근간으로 삼는다. 박제가의 이 발언은 성리학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던 것이다.

1781년, 정조 5년. 박제가는 작심하고 선진문물 도입과 이를 통한 조선은 바뀌어야 한다는 야망을 담은 책을 완성한다. 이름하여 '북학의'(北學議). 북쪽(청)을 배우자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면 조선을 세계화하자는 것이다.

이 시대에 책을 낼 때 다른 명망가에게 서문을 받는 전통이 있었다. 서문은 두 사람이 썼는데 그 중 한 명이 박지원. 그는 여기서 이렇게 적었다.

"시험 삼아 한번 책(북학의)을 펼쳐 보니 내가 '열하일기'에서 쓴 내용과 조금도 어긋남이 없으니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했다." 이처럼 의기투합했던 양 박씨. 그래서일까 사거(死去)도 비슷했다.

순조 5년, 서기 1805년 4월 25일(음력. 이하 같음) 박제가(朴齊家)가 사망하고, 같은 해 10월 20일에는 박지원(朴趾源)이 그 뒤를 따랐다.

올해는 이 당대의 박학을 대표하는 양 박씨가 사거한 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해.

기념식에 익숙한 학계라지만 아직까지도 유감스럽게 이를 기념하는 행사로는 이렇다 할 만한 소식은 그다지 없어 한 켠이 개운치 않다.

그런 가운데 한학자 우전 신호열과 김명호 성균관대 교수가 '연암집'(연암문집)을 우리말로 옮긴 '국역 연암집' 발간이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시작돼 그 첫 결실로 제2권이 먼저 선보였다. 이 국역집은 10월쯤 제1권 출간으로써 마무리될 예정이다. 연암의 글은 그동안 간헐적인 소개가 있었으나 완역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한문학회를 비롯한 몇몇 단체에서 연암 사거 200주년 행사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암에 비해 박제가는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기념행사 소식이 없다. 그런 가운데 열렬 박제가 팬인 안대회 명지대 교수가 올해 안에 '박제가 평전'을 낼 예정이다.

안 교수는 이와 함께 "몇몇 동료와 주축이 돼 기념학술대회 개최라든가 특집 학술지 발간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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