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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선우 
Subject  
   박치(세양공二男 집의공) 묘표(墓表)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박치(세양공 二男 집의공) 묘표(墓表)


시대   조선
연대   1501년(연산군7년)
유형/재질   비문 / 돌  
문화재지정   비지정  
크기   높이 116cm, 너비 60cm, 두께 15cm  
출토지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서체   해서(楷書)
찬자/서자/각자    유순(柳洵) / 미상 / 미상  

1501년(연산군 7년)에 세워진 박치의 묘표이다. 이 묘표는 비좌하엽(碑座荷葉) 형태로 관석(冠石)에는 연꽃잎과 보주(寶珠)가 있고 비좌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전반적으로 마모되어 있으나 판독은 가능하다.
노포당(老圃堂) 유순(柳洵)이 문장을 지었다. 박치(朴䎩 : 1499~1557년)는 본관이 반남(潘南)으로 좌명공신(佐命功臣)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 은(訔 평도공)의 손자이고 좌익공신(佐翼功臣) 금천군(錦川君) 강(薑 세양공)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나아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충주목사(忠州牧使) 하양현감(河陽縣監) 등을 지냈다. 특히 옥사(獄事)를 처리함에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비문에는 박치의 선조(先祖)의 내력과 그의 관력(官歷), 자손의 내력이 나와 있다.
(단행본)하남문화원, 2004, 『하남금석문대관』, 하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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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묘표(朴䎩墓表)

통훈대부(通訓大夫) 군기시정(軍器寺正)박공지묘(朴公之墓)

홍치(弘治) 12년(연산군 5, 1499년) 4월 정사에 통훈대부(通訓大夫) 군기시정(軍器寺正) 박공(朴公)이 졸하고, 같은 해 8월 을묘에 광주(廣州) 서쪽 초덕리(草德里)에 장사하였다. 부인 성씨(成氏)는 같은 언덕 위쪽에 모셨다.
공(公)의 휘(諱)는 치(䎩)이고 자(字)는 자치(子治)로 나주인(羅州人)이다. 증조부 휘 상충(尙衷)은 문학과 지조가 있어 고려 말에 이름을 드러내었다. 조부 휘 은(訔)은 본조(조선)에 들어와 태종을 추대하여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으며 벼슬이 의정부 좌의정에 이르고 금천부원군(錦川府院君)에 봉해져 우리나라의 세가(世家:대대로 벼슬하는 집안)가 되었다. 의정(議政)의 아들 강(薑)은 세조와 인연을 가져 좌익공신(佐翼功臣)이 되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해졌는데 금천군()이 흥령군(興寧君) 안숭직(安崇直)의 따님을 맞이하여 2남을 두었으니 공(公)이 그 막내이다.
처음에 음관(蔭官:조상의 공덕으로 벼슬하는 것)으로 나아가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형조 정랑, 공조 정랑, 한성부 서윤, 사헌부 장령을 지내고 재차 집의가 되었는데, 정도를 지키고 아첨하지 않아 남들이 사적인 일로 요구하지 못하였다. 영천군수, 진주목사, 충주목사가 되어 평소에 자애롭게 은혜를 베푸니 관리와 백성들이 좋아하여 떠나간 뒤에도 모두 사모하였다. 예빈시•상의원•군자감•군기시 등의 정(正)을 지냈으니 정(正)은 그 관청의 장관이다.
아랫사람을 예로써 대우하고 스스로 정도로써 처신하니 동료나 부하관리들이 공경하고 복종하여 직무가 모두 잘 거행되었다. 장령(掌令)과 집의(執義)를 지낼 때에 성종께서 공(公)의 풍채와 태도를 보고 매우 소중히 여겼다. 후에 하양(河陽) 관리의 탐오(貪汚)를 다스리기 위해 공(公)에게 명하여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그런데 마침 진주 목사에 임명되었으므로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치(䎩)는 지금 외직에 임명되었으니 경차관(敬差官:민정등을 조사하기위해 지방에 파견하는 임시 관직)으로 보내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내가 평소에 치(䎩)의 어짊을 알고 있으니 반드시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이 옥사는 반드시 이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 비록 외직에 임명되었더라도 사신의 일을 마치는 데에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하였다. 옥사를 판결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일에 파견된 것이 또한 많았으니 임금에게 신임을 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공(公)은 관직에 임하여 직무를 행할 때에 모두 명성과 공적이 쌓여 남들은 쉽게 미칠 수 없었으니, 아마도 높은 관직에 나아갔더라면 큰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병으로 집에서 졸하였으니, 향년 59세이다.
공(公)은 타고난 성품이 사리에 밝고 마음이 너그러우며 온화하고 편안하되 안으로 지키는 바가 진실하고 견고하였다. 어버이에게는 효성스럽고 형제와는 우애가 있으며 친구들과 신의로써 사귀니 남들이 트집하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성취하지 못하고 졸(卒)하니 사람들이 모두 안타까워하였다.
공(公)은 창령성씨(昌寧成氏) 영춘현감(永春縣監) 효원(孝源)의 따님을 맞아 5남 1녀를 두었으니, 해(垓)는 생원으로 공보다 먼저 죽었고, 다음은 기(基)이고, 호(壕)는 진사이고, 감(堿)은 사과(司果)이고, 연(堧)은 유학이다. 딸은 충의위 이지기(李枝基)에게 시집가 1남 1녀를 두었으니, 아들 양(讓)은 어리고, 딸은 충의위 송승은(宋承殷)에게 시집갔다. 감(堿)은 2녀를 두고, 연(堧)은 2남을 두었는데 모두 어리다.

홍치(弘治) 14년(연산군 7, 1501년) 봄에
정헌대부(正憲大夫)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 유순(柳洵)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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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묘표(朴䎩墓表)    
          
  通訓大夫軍器寺正朴公之墓」

弘治十二年四月丁巳通訓大夫軍器寺正朴公卒是年八月乙卯葬于廣州治西草
德里其配成氏同原之上穴也公諱䎩字子治羅州人曾祖諱尙衷以文學志節顯于
高麗之季祖諱訔入 本朝翊戴 太宗爲佐命元功官至議政府左議政封錦川
府院君遂爲三韓世家議政之子諱薑攀附 世祖爲佐翼功臣封錦川君君娶興
寧君安崇直之女生二子公其季也初以蔭官而進旣穎脫拜刑工兩曹正郞漢城府
庶尹司憲府掌令再爲執義守正不阿人不敢干以私爲榮川郡守晋忠兩州牧使公
平慈惠吏民愛之皆有去後思歷任禮賓尙衣軍資軍器正正長官也待不以禮處已
以正僚吏敬服職事俱擧其爲掌令執義也 成宗見公風度甚器之後有河陽官
吏貪汚事發 命公往治之適選授晋牧承政院 啓曰䎩今補外不宜敬差 上
曰予素知䎩賢必不欺我此獄須此人治之雖除外官竣使事何妨凡決獄救民 持
遣亦多其見 知遇如此公居官奉職皆有聲績人罕能及意其進據顯位有大施也
已而病卒于家年五十有九公資性明達寛厚和易而內守實固孝於親友于兄弟交
朋友以信人無間言自少志于學未就而卒人皆歎惜公娶昌寧成氏永春縣監孝源
之女生五男一女曰垓生員先公死曰基曰壕進士曰堿司果曰堧幼學女適忠義衛
李枝基有一男一女男曰讓幼女適忠義衛宋承殷堿有二女堧有二男皆幼
弘治十四年春 正憲大夫議政府左參贊柳洵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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