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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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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중반월의 명당 (雲中 半月의 明堂) - 부도유사


                                   운중반월의 명당 (雲中 半月의 明堂)

  반남 우리 도선산에 호장공의 산소를 풍수지리학적으로 양유도수의 명당(楊柳倒水의 明堂)이라고 한다.   풍수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어떠한 연유에서 양유도수의 명당이라고 하였는지에 대한 이해를 할수 없어 명색 풍수지리학을 전공한 학자에게 질의하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못한다.  차라리 속칭 “벌 명당” 이라고 하며는 이 유래는 나도 설명을 할 수있다.
  반남박씨 성지(聖地)하면 세거지(世居地)는 현 시점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는 각기 생활 연고지가 도시집중으로 되어 인구통계상 수도권(서울, 경기도, 인천)에 55%의 종원이 이거하여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성지(聖地)라 하면 자연 선대의 묘소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할수 밖에 없다.  반남, 문산, 하남시, 김포, 합천, 영주, 안동, 함양, 금산 등이 반남박씨의 성지이다.

  전남에는 도선산 외에 남곽공 산소가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모시어저 있는데 이를 “운중반월의 명당”(雲中半月의 明堂)이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13세조 남곽공 동열(南郭公 東說), 14세조 첨추공 호(僉樞公 濠), 남양공 정(南陽公 渟), 15세조 참판공 세모(參判公 世模)를 모신 곳이다.
  반남박씨 종중에 신도비와 묘갈비등 많은 유적 보물이 있는데 합천 야천공 신도비(陜川 冶川公 神道碑)가 지방 문화재로 지정 되어있다. 그 외에도 지방 문화재로 지정될만한 우리 선대의 신도비 또는 묘갈비의  소재를 알리는 작업으로 본 글을 올립니다.   일차적으로 거론하여 사적유물로 지정 대상된 곳은
  1) 인천시 대곡동에 서포공 동선 신도비(西浦公 東善 神道碑)
                     금주공   정 신도비(錦洲公   炡 神道碑)
  2) 시흥시 군자동에 오창공 동양 신도비(梧窓公 東亮 神道碑)
                     분서공   미 신도비(汾西公   瀰 神道비)
  3) 영암군 서호면에 남곽공 동열 신도비(南郭公 東說 神道碑)
                     첨추공   호 묘갈비(僉樞公   濠 墓碣碑)
                     남양공   정 묘갈비(南陽公   渟 墓碣碑)
                     찬판공 세모 묘갈비(參判公 世模 墓碣碑)
  우선 지방문화재로 추진중인 문산에 平度公(釣隱)訔과 參判公 葵, 문화재 관리하에 있는 鷺江書院, 西溪公 世堂과 定齋公 泰輔를 除外하면, 상기 세곳의 유적이 첫 대상이 된다고 본다.   이 외에도 반성부원군 응순(潘城府院君 應順), 만보정 명원(晩葆亭 明源), 금석 준원(錦石 準源)의 신도비가 대상이 되지 않나 여깁니다.   만보정 금성위(錦城尉)와 금석 충헌공(忠獻公)은 정조(正祖)와 순조(純祖)가 직접 찬(撰, 글을 지음)하시어 큰 비중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남곽공 묘소에 모셔져 있는 4위(四位)의 묘비에 찬(撰, 문장 글), 서(書, 글씨), 전서(篆書, 한자의 서체로 비문의 상단에 쓰는 글씨)와 식(識, 추가 사유를 기록한 글, 음기)은 그 당시의 문장가요, 명필가이면서 유림에서 추앙 받는 분들의 찬, 서, 전, 식이란 점에서 역사적 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묘지법의 철저한 시행 전에 이의 대비책으로 문화재의 지정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의미에서 본인이 자주 접하고 있는 남곽공 묘소부터 말하고자 합니다.    
  문화재지정이 되면 토지소유자의  재산권행사를 제한되거나 못하게된다. 따라서 인천 대곡동에 서포공과 금주공의 문화재지정을 신청할 시에는 사직공 병문(司直公 秉文), 상주공 임종(尙州公 林宗), 교리공 억년(校理公 億年), 正郞公 兆年) 유사공 집(儒士公 緝), 도정공 응인(都正公 應寅), 사마공 동기(司馬公 東紀), 호군공 동위(護軍公 東緯)등 일괄적으로 같이 신청함이 필수요건이지만 지정에 따른 불이익도 검토하여 충분한 논의를 한 다음 뒷말 없는 지정 요청하여야 한다고 본다.

    남곽공 동열 시도비(南郭公 東說 神道碑)
  찬(撰):  상촌(象村) 신 흠(申 欽)撰, (1566-1628). 본관은 평산(平山)사람, 시호는 문정(文貞), 관은 영의정을 하였으며 인조 묘정(仁祖 廟庭)에 배향(配享)됨.  상촌선생은 다음에 서술할 첨추공 호(僉樞公 濠)와 현석공(玄石公)의 아버지이신  교리공 중봉 의(校理公 中峯 漪)의 장인으로 따님 두분을 반남박씨 가문에 출가시키고 또 양측 집안은 국혼(國婚)을하여 부마(駙馬, 왕의 사위)집안이다.
  서(書):  글씨는 안진경 서체(顔眞卿 書體)로 유명한 집안인 백석 태유(白石 泰維 1648-1686)로서 서계공 세당(西溪公 世堂)의 장남이고 정재공 태보(定齋公 泰輔)의 형이시다.  백석선생은 세상에서 명필로 알려진 한석봉(韓石蜂)에게 밀리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석봉에 뒤지지 않는 명필가(名筆家)이시다.  우리 후손들은 이 집 형제간의 단명(39세, 36세에 도아가심)을 아쉬워 할 따름이다.  이 집안은 11세조에서 16세조까지 6대에 걸쳐 4분의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시어 우수한 머리와 필체(筆體)로 명필 집안임이 널리 알려져 있고 또 확인할 수도 있다.
  전서(篆書): 노봉 민정중(老峰 閔鼎重 1628-92)篆. 여흥(驪興)사람, 시호는 문충(文忠), 관은 좌의정을 하시였다. 숙종(肅宗)비 민중전의 친정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형으로 장희빈(張嬉嬪)세력에 밀려 유배지에서 돌아 가셨다.  노봉의 아들 지재 민진장(趾齋 閔鎭長)은 아버지와 같이 숙종 조에 우의정을 하여 부자 정승(父子 政丞)을, 또 노봉의 아버지 민광훈(閔光勳), 민정중(閔鼎重)본인, 아들 민진장(閔鎭長)이 각기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3세문장(三世文壯)으로 이름을 떨쳐  우리의 5세3장(五世三壯)과 더불어 유명하다.
  음기(陰記):   현석공 세채 찬 음기(玄石公 世采 撰 陰記)하셨음.

    첨추공 호 묘갈비(僉樞公 濠 墓碣碑)
  찬(撰):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의령(宜寧)사람, 시호 문충(文忠), 관은 영의정을 하고, 숙종 묘정 배향(肅宗 廟庭 配享)되시었는데 우리 선대의 현석공께서도 같은 숙종 묘정에 배향되시었다. 소론(小論)의 거두이시고 서계공 세당(西溪公 世堂)의 처남(妻男)이시다.
  서(書):  글은 오창공(梧窓公)의 외손자인 약재 유상운(約齋 柳尙運1636-1707)이다. 문화인(文化人), 관은 영의정을 하고 시호는 충간(忠簡), 아들 유봉휘(柳鳳輝)가 좌의정을 하여 부자정승(父子政丞)으로 유명하다.
  전서(篆書):  일암 윤덕준(逸菴 尹德駿 1658-1717), 남원인(南原人), 판서역임. 어려서 신동이라하여 만사상통(萬事詳通)하고 글씨도 모든 체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詩)에도 취미가 많았다고 한다.

    남양공  정 묘갈비(南陽公  渟 墓碣碑)
  찬(撰):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1689)은 안동인(安東人), 관은 영의정, 시호는 문충(文忠), 현종 묘정 배향(顯宗 廟庭 配享)되었으나 기사환국(己巳換局 1689년)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우리 정재공은 친국(親鞫, 왕이 직접 신문하면서 고문하는 것)으로 돌아 가셨지만 문곡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따라서 두분이 돌아 가신 해는 같으나 얼마후 남인정권의 몰락으로 복관되고 시호의 제수(除授)와 종묘(宗廟)에 배향되었다.  또 문곡은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의 손자이고 영의정 퇴우당 수흥(退憂堂 壽興)의 아우이며 큰아들 몽와 창집(夢窩 昌集)은 노론4대신(老論四大臣)의 한사람으로 소론에게 패퇴(敗退)하여 이분도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노론의 세상이 되자 신원복관(伸寃復官)되고 아들은 영조 묘정 배향(英祖 廟庭 配享)되어 부자가 연이어 종묘 배향(宗廟 配享)이란 영예(令譽)를 누렸다.
  서(書):  우리 선조의 명필가 백석 태유(白石 泰維).
  전서(篆書):  둔촌 민유중(屯村 閔維重 1630-87), 여흥인(驪興人), 숙종의 국구(國舅, 왕의 장인)로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임. 좌의정인 노봉 민정중(老峰 閔鼎重)의 아우이며 사림간에 명성이 높았다. 한동안 민중전(閔中殿)의 아버지로써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흔히 장희빈 사건이라고 알려진 기사환국(기사환국 1689년)시에 우리 선대 정재공 태보(定齋公 泰輔)의 순절(殉節)로 여흥민씨(驪興閔氏)문중에서는 반남박씨를 다정하게 대한다고 한다.  또 175년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민중전(閔中殿)을 간택(揀擇)한 후에 우리 종중에 와서 잘 부탁한다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전(口傳)이지 기록으로 본적은 없다. 이는 얼마든지 비공식적으로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 여긴다.

    참판공 세모 묘갈비(參判公 世模 墓碣碑)
  찬(撰):  서계공 세당(西溪公 世堂), 시호 문정(文貞), 대문장가로써 색경(穡經)이란 농서(農書)가 있으며 아드님이신 정재공(定齋公)의 순절로 한 동안 극진한 대접도 받았지만 말년에는 노론의 탄핵(彈劾)으로 정치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으셨는데 개화사상의 선구자의 외로움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서(書):  약재 유상운(約齋 柳尙運)  첨추공의 글쓰신 분,  참조하시압.
  전서(篆書):  호은 홍수주(壺隱 洪受疇) 남양인(南陽人), 관은 참판(參判), 당대의 전서가(篆書家)이고 학자이면서 그림도 잘 그렸다.  태조헌능신도비(太宗獻陵神道碑)의 전서와 많은 전액(篆額)을 남기었다.  

중요약력:  
    1) 동열(東說).(1564-1622) 호 남곽(南郭), 봉촌(鳳村), 壯元        及第, 官歷 成均館大司成, 黃海道 觀察使. 經歷 羅州牧使로 계시면서  반남 도선산(潘南 都先山)에 聖域事業과 位土畓 마련하심.鳳村集지음.
    2) 호(濠). (1586-1667)   字, 백유 (伯游),   官歷  僉中樞府事. 榮州,  益山郡守, 南原府使하심. 1642년 처음 潘南朴氏 族譜인 壬午譜를  만드실적에 錦陽尉 瀰를 도와 六友堂 檜茂 와 같이 整理發刊함.
    3) 정(渟). (1602-56)  字, 계연(季淵), 官歷 南陽府使, 淳昌郡守.
    4) 세 모(世模). (1610-67) 字, 汝道, 壯元及第, 禮曹參判겸 同知  義禁府事副摠管, 京畿道觀察使.

그리고 경남 합천군의 야천공 신도비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301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의 오창공 신도비는 "시흥 향토유적 제12호" 지정되어있습니다.

   이상은 앞으로 묘지법의 철저한 시행령이 발동 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 우리들은 선대가 이뤄놓은 유산을 잘 보존함이 의무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유적지로 보존하는 전 단계의 작업으로 우선 비문의 내용을 검색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방 문화재로 신청하여도 가능한지 의견을 문의코자 합니다.  
            
                                              2004년 12월 4일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
                                                 의학박사   丁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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