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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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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의 대가 야산(也山) 이달(李達) : 해방 하루 전 문경(聞慶)<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 가서 '기쁜 날' 예고
주역의 대가 야산(也山) 이달(李達) : 해방 하루 전 문경(聞慶)<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 가서 '기쁜 날' 예고
  

일제 강점기 말엽에 총독부는 조선 땅에 대규모의 신궁(神宮)을 건립하려고 시도하였다. 한 군데는 서울의 남산(南山)이었고, 다른 한 군데는 충남 부여의 부소산(扶蘇山)이었다. 남산은 조선의 서울이니까 세우려 했던 것이고, 부여의 부소산은 백제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가 아니고 하필 부여에 신궁을 세우려고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뿌리가 백제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일제는 1944년 무렵 부소산의 삼충사(三忠祠)터에 신궁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를 시작하였다. 일본신(日本神)을 조선 땅에 이식시킴으로써 영적(靈的) 차원에서마저 조선을 병합하고 말겠다는 의도가 담긴 공사였다. 조선 주역의 대가이자 조선의 호국신(護國神)을 신봉하였던 야산 이달은 이 공사현장을 지켜보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네놈들은 상량식(上樑式)을 하기도 전에 망할 것이다!" 현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야산을 일본 경찰이 잡아다 취조하였지만 광인으로 판정되어 곧 풀려날 수밖에 없었다.

8·15 해방이 되기 4 ~ 5개월 전부터 야산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면전에다 대놓고 '야 이놈아? 대한독립 만세여! 너 그거 알아?"라고 외치고 다녔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지만,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미친 사람이었으므로 며칠 구류를 살다가 곧 방면되곤 하였다. 일제 말엽 춘원 이광수 등 조선의 일급 지식인들은 일본제국이 영원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래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밑바닥 민초들과 호흡을 같이하던 조선의 도사들은 일본이 가까운 시일 내에 망할 것이라는 정세판단을 하고 있었다. 신식교육을 받아 사회과학적 분석에 능하였던 식자층들은 오래 갈 거라는 예측을 하였던 것이고, 주역이나 사주에 심취하였던 사이비 종교 종사업자(?)들은 조금 못 가 일본은 결딴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신식과 구식, 과학과 미신의 상반된 예측이었다.

모악산의 강증산(姜甑山)이나 지리산의 문도사(文華載), 경상도의 박만수(朴萬修), 그리고 야산 같은 이인(異人)들은 '일본 사람들이 새경도 못 받고 물러갈 것'이라고 한결같이 예언하였다. 참고로 1900년대 초반 조선의 4대 기인은 정역(正易)을 창시한 김일부(金一夫)·강증산·문도사·박만수였다. 지리산 청학동 도인 문도사는 고운 최치원의 맥을 이은 인물로, 지리산파의 장문인이기도 하였다. 박만수는 경상도에서 활동하였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더 이상의 신상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길거리에서 행인을 붙들고 '대한독립 만세여!'를 외치던 또라이 이달. 그는 1945년 8월 13일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읍의 화계리(花溪里) 주막집에서 비밀회합을 했다. 주막집 주인은 성씨가 오씨(吳氏)였다고 전해진다. 이 주막집에는 야산의 사돈이자 또한 동지이며, 문도사의 수제자였던 송을규(宋乙奎)도 합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리산파와 계룡산파의 비밀 회동이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야산은 주막집 주인 오씨에게 닭 울음 소리를 한번 내보라고 시켰다. 야산의 느닷없는 오더를 받은 오씨는 "꼬끼오! - 꼬끼오!"를 연발하였다. 그 자리에 모였던 다른 제자들도 "꼬끼오"를 따라하여야만 했다. 왜 '꼬끼오'를 합창하도록 시켰는가. 화계리의 화(花)는 꽃이라는 뜻이다. 계는 시내 계(溪)자이다. 주막집 주인 오씨는 '오'발음이다. 이 세 글자를 연결시키면 '꽃계오'가 된다. 연달아 발음을 하면 '꼬끼오'로 들린다. 지명 이름도 절묘하게 화계리였고, 주인 성씨도 하필 오씨였다. 추측컨대 이러한 배합은 야산의 신산(神算)이었다고 여겨진다. 새벽이 가까웠다는 의미를 내포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고나 할까.

이 퍼포먼스는 문경에서 한 번 더 연출된다. 8월 13일 화계리 주막집에 머물렀던 야산 일행은 다음날인 14일 경북 문경군(聞慶郡) 문경읍(聞慶邑) 문경리(聞慶里)로 이동한다. 왜 문경입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으니, 야산은 "경사스러운 일을 듣기 위해서는 문경으로 가야 한다"는 대답을 하였을 뿐이다. 문경이라는 글자 자체가 '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는 뜻이 아닌가. 14일 저녁 문경리에 도착한 야산은 그 제자들에게 잔치판을 벌이라고 명령했다. 문경리의 촌로들을 모아놓고 닭고기와 술을 대접하는 춤판을 벌인 것이다. 야산은 "오늘같이 기쁜 날, 내가 닭춤을 한번 추겠다"고 하면서 멍석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내막을 모르는 제자들은 "우리 선생이 진짜로 돌았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스승의 닭 춤을 구경하였다. 한판 신나게 놀고 난 다음날 8월 15일이 밝았다. 그날 해방이 되었음을 알았다.

야산은 민족의 해방이라는 경사스러운 일을 듣기 위하여 장소도 비상한 곳을 물색하였던 것이다. 비상시에는 비상한 장소에서 비상한 인물이 비상한 일을 한다고 했던가. 비상한 장소. 그게 바로 문경이었다.

이글은 중앙일보에서 퍼온글입니다.
2004년 04월 09일  [W17면]  글자수 : 2449자  
조용헌 원광대초빙교수  
원광대 초빙교수, 江湖東洋學 연구소장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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