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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용우 
Subject  
   신간안내 『서계연록』김종수저 혜안출판사


국역 『서계연록』


책소개『서계연록』은 박세당이 1668년 11월 동지사 서장관 자격으로 청의 수도인 연경에 다녀와 사행 기간 동안 체험하고 목격한 내용들을 일록체 형식으로 기록한 연행일기다. 주로 왕환 노정에서 관찰하고 목격한 사실들과 공식적인 일정 수행과 관련하여 파생된 내용들을 등래한 이 책은 공적 기록이라는 성격을 다분히 띠면서도 매우 실증적인 탐구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 책 외에 총 23제 37수의 시로 이루어진 <사연록>을 남겼다. 이 짧은 기록에는 박세당의 학문적 태도와 사고, 고민들이 녹아 있다.

"서계연록" 통합검색 결과보기 목차옮긴이의 말

『서계연록』 해제  국역 『서계연록』
『서계연록』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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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체계화한 박세당의 청나라 견문기,
실증적인 탐구 태도와 청의 선진문물에 대한 충격, 퇴은 구상까지 한데 담겨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사은사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작성한 『서계연록』의 한글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박세당은 탈주자학적 경학론과 노장(老莊)사상, 『색경』으로 표방되는 농학을 아우르고, 독자적인 고증학을 개척하였으며 양명학과 역(易) 방면에까지 깊이 천착하는 등 다양한 경계지대의 학문을 추구한 17세기 중·후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의 한 명으로, 32세의 늦은 나이에 입사하였다가 8년이라는 짧은 관직생활을 마감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강학과 연구에 몰두하였다. 당시 노론의 거두 송시열과 대립하며 사문난적으로까지 낙인찍혀 불행한 최후를 맞았으나 조선후기의 실학사상을 체계화하여 다산경학의 연원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서계연록』은 박세당이 1668년 11월 동지사 서장관 자격으로 청의 수도인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다녀와 사행 기간 동안 체험하고 목격한 내용들을 일록체 형식으로 기록한 연행일기로, 이 책 외에 총 23제 37수의 시로 이루어진 『사연록(使燕錄)』을 남겼다.
『서계연록』은 표지까지 포함시켜도 겨우 58면에 불과하여 다른 연행록에 비하면 분량이 매우 적은 편인데다 본문도 대개가 각면 10행, 각행 20자의 기준으로 씌어져 있어 일률적이고 다소 단조로운 구성체계로 되어 있다. 사적 기록이라는 성격이 강한 다른 연행록들과 달리 『서계연록』은 관찬 기록에 준하는 공적 기록이라는 특징이 강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연경에 체류한 한 달여 기간의 기록에서 더욱 두드러져 봉사단 일행의 사적 활동에 관한 기술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기록에는 박세당의 학문적 태도와 사고, 고민들이 녹아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왕환 노정에서 보여준 투철한 실증적(實證的) 탐구 태도다.
그의 실증적 관심권 속에는 사행 동안 그가 참고했던 『지지(地志)』와 앞선 사절단들의 기록인 전록(前錄)은 물론이고, 비석과 사원, 누각(樓)과 누대(臺) 및 묘지, 그리고 성(城)과 강하(江河) 등의 명칭과 여타 산천지리 관련 소재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심지어 연경의 숙소인 회동관(會同館) 벽면 낙서까지도 무심히 지나치질 않았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참고한 전록을 그대로 신뢰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당 기록을 의심하면서 전록의 내용 자체를 고증해 내기도 했다.
길거리 통신류의 와전된 소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런 모습은 매우 치밀하면서 꼼꼼한 학구풍의 인물이었던 박세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결국 이때의 실증적 탐구 노력은 무신년 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남게 된다. 박세당의 대표적인 문도 중의 한 사람인 이탄도 스승의 이러한 고증 노력에 대해“연행 노정상의 산천과 길의 이정(道里) 및 지명에 대해서, 앞서 연행을 다녀온 우리 봉사단들의 기록 중에는 허다한 오류가 유전되고 있었으나, 이를 두 번 다시 의심하지도 바로잡으려 들지도 않았다. 이에 선생은 중국의 제반 관련 문서들을 고증하고, 해당 지역 거주민들에게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 무릇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는 것들은, 대부분 고쳐서 바로잡았다. 이에 연로한 역관들이 놀라워하며 탄복해 마지않았다.”고 하였다.
또한 당시는 청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정보가 초유의 관심사로 등장해 있던 시기여서 사행 경위를 보고할 책무를 지녔던 박세당은 날카로운 대청 정탐(偵探)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17세기의 다른 연행록에서는 대체로 묘사가 극히 소략한 조의(朝儀)와 사연(賜宴)을 상세히 취급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또 이 책에는 불교와 관련된 소재들을 다수 기재하였다. 이는 청초의 중국 불교의 현황을 엿보게 해주고 동시에 40세 이전까지 견지했던 박세당의 불교인식의 일단을 살피는 데도 좋은 자료가 된다. 물론 이 기술은 불교사원에 대한 묘사가 주류를 점하지만 계율과 좌선 같은 수행법에 관한 관찰과 분석, 조·청 양국의 수행 가풍에 대한 비교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에 대한 친연성과는 상관없이 그가 근본 유자로서의 사상적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에서 박세당이 진리 인식의 한 차원에서 불교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는 하되 강한 원시유학 지향성이라는 사상적 입각점은 확고부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 적의 피로인(被虜人)들의 애절한 실상과 청국의 민물(民物) 관찰에 대한 기술도 눈에 띈다. 특히 조선에 비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해 가는 청의 경제적 현실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간헐적으로 배나 수레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며 특히 당시 서양의 앞선 첨단문물을 상징하는 청초의 유명한 역법논쟁(曆法論爭)에 관한 기록은 주목할 만하다. 박세당은 신역파(新曆派)인 아담 샬 및 그 문도들과 구법파(舊法派)인 양광선 일파 간의 이 역법논쟁 전개 과정을 압축적으로 기재하였다. 이러한 서술 태도가 주자학자들의 숭명배청론(崇明排淸論)에 반대하여 중국 대륙의 세력변동에 주체적으로 적응하자는 그의 실리주의 정책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서계연록』은 다른 연행록에 비해 이른바 장관(壯觀)에 대한 기술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만리장성이나 산해관, 각산사(角山寺) 등의 탁월한 경관을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으로 담아내기는 했지만 극히 소략한 편이다. 이는 다분히 병자호란의 피해국인 조선봉사단의 우울한 처지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 옮긴이의 말

마지막으로 박세당은 특별히 연경으로 향하는 서행 길에서 영평부(永平府)의 이제묘(李齊廟)를 참배하고 묘의 세부적 구성과 명칭들, 묘가 위치한 영평지역의 산수에 주목하였다. 또한 난하 변에 자리한 조어대(釣魚臺)와 그 주인공인 명대의 감찰어사 한응경(韓應庚)의 무덤과 구택도 비교적 상세히 묘사하였다. 이런 기록들은 사행을 나서기 전에 이미 결심을 굳히 그의 퇴은 후 구상과도 관련 있는 듯하다. 옮긴이 김종수는 박세당이 구상하고 그 문인들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 이른바 석천경영(石泉經營)의 선행 모델을 이제묘가 조성된 영평경영에서 제공받았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이 무신년 연행 후 박세당은 벼슬을 마다하고 곧 수락산의 석천동으로 귀환한다. 이러한 그의 심경은 연행 때 그가 접한 일련의 문명충격에 대한 수용 태도를 결정해 주는 변인으로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국역 『서계연록』

현재 연행록으로 총칭되는 글은 1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그 중 하나인 『서계연록』은 다른 연행록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짤막한 기록이나 박세당이라는 걸출한 조선후기 사상가의 특징을 미리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이 완전한 국역본은 이 방면 연구자와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옮긴이 김종수는 후속작업으로 『서계 박세당의 연행록 연구』의 출간을 준비중이다.

* 박찬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8-1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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