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홈페이지:::
 
::: 대종중 및 일가소식 :::
본 게시판은 문중의 소식 및 일가님들의 행사. 승진. 부음. 축하 등을 널리 알리는 공간으로,
주변에 알리고져 하는 내용은 전화 혹은 메일 parkcm@bannampark.org 로 연락 주십시오.

0
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5월22일 현목수비(綏妃) 가순궁 제향 안내

5월22일
현목수비(綏妃) 가순궁 제향 안내


5월22일(화)은  조선 22대 정조의 빈(嬪)이신
가순궁(반남박씨 20세손) 제향일 입니다
가순궁(현목수빈)은 조선23대 순조의 생모(生母)이십니다
고종 38 년 10월11일 현목 수빈을 수비(綏妃)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보를 올리는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를 반포하고 의식을 거행 하였다

장소 경기도 광릉내 수목원
       휘경원내 있읍니다
가시는길 청량리 에서 버스 타고 휘경원 다리앞 하차 약  5분 거리입니다.


<< 찾아가는길 >>
전 철    의정부역(1호선) 하차 광장방향 출구 이용 구 시외버스터미널(의정부동)에서
            광릉내행 시외버스(21번) 이용
승용차   서울(미아리) → 의정부 → 축석고개 → 국립수목원(32㎞)
            서울(청량리) → 구리시 → 퇴계원 → 광릉내입구 → 국립수목원(34㎞)
            서울(석계역) → 태릉 → 퇴계원 → 광릉내입구 → 국립수목원(30㎞)
            중부고속도로 → 구리IC → 퇴계원(일동방면) → 광릉내입구 → 국립수목원  
버 스   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께서는 청량리(청량리 우체국 건너편, 국민은행앞)에서
         7번, 707번을 타시고 퇴계원을 경유 광릉내 종점 하차 의정부행(21번) 국립수목원
         으로 오시면 되고 종로5가에서 1018번 버스를 타시고 의정부 구시외버스터미널
          하차 광릉내행 버스로(21번) 국립수목원으로 오셔도 됩니다.  

=============================================================================  

◎ 가순궁 (嘉順宮)
반남박씨 20세손으로 1770년(영조46)에 태어나셔서 1822년(순조22)에 돌아 가셨고 조선 22대 정조의 빈(嬪)으로, 원호(園號)는 휘경(徽慶)이고, 시호는 현목(顯穆)으로 현목수빈(顯穆綏嬪)이라 하였고 조선23대 순조의 생모(生母)이시다.
고종 38 년 10월11일 현목 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보를 올리는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를 반포하고 의식을 거행 하였다
판돈령부사(判敦敦府事) 준원(準源)의 딸로써 1787년(정조11)에 수빈(綏嬪)이 되어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낳았고 참봉공 東民의 8世孫이다. 예절이 바르고 착한 행실이 많아 그 현숙(賢淑)함을 칭찬 받았다.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그가 잉태될 때 어머니 원씨부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큰 구슬을 바치매 그 광채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한다.어릴 때 두 여형(女兄)과 함께 있었더니 별안간 큰 호랑이 한마리가 뜰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두 여형은 놀라서 넘어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으나, 그는 조용히 걸어가서 방안으로 들어가니 모두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1787년(정조 11)에 정조의 빈이 되어 순조와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낳았다. 왕자를 낳은 뒤 왕자를 낳지 못하는 왕비를 위로하고 공경하니 온 궁중에 화기(和氣)가 가득하였다.또한 행실이 착하고 예절이 바를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말이 적으며 의복과 일상용품들을 극히 검소하게 하니 조야에서 현빈(賢嬪)이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어느날 그의 궁에서 시중을 드는 나인(內人)이 의복을 만들 때 작은 천조각을 버렸다가 크게 꾸중을 받은 일이 있었으며, 또한 후궁인 그의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자, 아첨하는 무리들이 그에게 은밀히 귀중품을 진상하였다가 의금부에 잡혀간 일도 있었다.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죽었다.궁호(宮號)는 가순(嘉順), 시호는 현목(顯穆), 원호(園號:무덤의 명칭)는 휘경(徽慶)이며, 효자동 경우궁(景祐宮:七宮內)에 제향되었다, 1823년(순조23)에 경기도 양주 배봉산(拜峰山) 묘좌원(卯坐原)에 장례 하였다.
  

////////////////////////////////////////////////////////////////////////////

백년 늦어진 현목수비<顯穆綏妃> 개호(改號) 전말
                                                찬욱 贊旭 (활당공活塘公 후後)

나의 서재에 있는 대한제국 융희 원년(光武11年)에 간행된 현채(玄采)선생의 동국사략<東國史略> 권三 중의 본조일람(本朝一覽) 3페이지에 보니 수빈 박씨가 벌써 빈<嬪>이 아닌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의 수비<綏妃>로 나와 있었다.
물론 우리 족보 경신보 제1권 71페이지에도 정조수비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대 어른들을 못믿어서 그 존호를 불신하고 수빈<綏嬪> 칭호를 묵수(墨守)해 왔다는 것인지....

그것은 전주 이씨들도 마찬가지였다.
휘경원(수비박씨園寢)봉향회 당국 분들이 “이미 비로 추존되셨습니다.” 알려주시면서도 그 공문에는 여전히 <수빈>으로 항상 표기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보학에 다년간 조예 깊으시고 대종중의 전산화 작업을 담당하시는 태서(太緖) 족숙(族叔)께 여쭈어,
검색해 주신 바 조선왕조실록 중의 고종실록 38년 10월 11일 실록에서 그 추존사실을 확인하였다.

<고종 38/10/11(양력) / 현목 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다>
현목 수빈을 수비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보를 올리는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축하를 올리고 조서를 반포하였는데 간략한 의식으로 하였다.
조서는 이러하였다.(중략) 삼가 생각건대 현목수빈은 천품이 순결하고 천성이 정숙하였다.
이름이 있는 가문의 딸로서 범절에는 물려받은 아름다움이 있었고 훌륭한 용모와 의젓한 행동으로 폐백을 갖추어 선발하였는데 뽑혔다. 훌륭한 꿈을 꾼 것은 황태자를 낳을 상서로운 징조에 부합되고 범이 지나가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곰이라도 당해낼 떳떳한 공적을 기대한 것이었다. 경술년에 아들을 낳으니 크나큰 복록은 나라의 좋은 운수를 이어 놓았다.
왕비를 도우니 두드러진 공로는 태사나 태임(太任)에 미쳤고 자궁을 모시는 각근한 지성은 아침 저녁 문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음을 잡아 생각이 깊고 덕이 가득했으며 불행에 처하여도 끝까지 한생을 누렸고 훌륭한 계책을 품고 있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빛났다.(중략)

우리 정조선황제의 칭호를 소급하여 높인 만큼 그 다음으로 비를 소급하여 높이는 것은 떳떳한 규례이다.
그래서 이해 음력 8월29일에 삼가 인장을 올리고 수비로 높여 봉하였으니 황후의 의장은 제도대로 하고 금궤에 보관하는 것은 예법이 그러한 것이다.
삼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니 감격스러운 마음이 더해진다. 아, 법은 전대에 근거하여야 하니 그것은 모든 선왕들의 것이고 훌륭한 계책은 길이 후대에 물려주니 우리 자손만대에 내려갈 것이다. 온 나라에 공포하여 모두 알게 할 것이다.

<고종 39/10/24/(양력) / 이주영 등이 황후로 높이는 의식을 제의하다>
폐하는 효성이 모든 임금들보다 뛰어나고 예의는 ‘3대’의 임금과 대등하여 조상을 높이고 근본에 보답하는 모든 방도를 취할 대로 다 취하였습니다.
융릉(隆陵)을 소급하여 높이고 다섯 사당을 더 높였는데 유독 차례로 시행해야 할 현목수비를 황후로 높이는 의식만 아직도 시행하지 않은 지가 몇 해씩이나 됩니다...(중략)
천자의 비로서 천자의 어머니까지 되고도 끝내 황후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니 천하에 어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상고할 만한 지난 시기의 역사책이나 원용할 만한 나라의 규례들이 한두 가지만이 아닌 만큼 폐하처럼 거룩하고 명철한 자질로는 틀림없이 꿰뚫어 볼 것이니 신 등이 어찌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까. 하지만 종묘의 아름다운 법은 바로잡지 않으면 안되고 온 나라의 공정한 논의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폐하는 깊이깊이 생각해서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해당 관청에서 좋은 날을 받아 황후로 높이는 의식과 신주를 종묘에 들여놓는 의식 절차를 예의를 갖추어 거행하게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폐하의 효성이 빛날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선조와 숙종 두 조상의 영혼도 저 세상에서 기뻐할 것이며 높고 낮은 관리들과 백성들까지 모두 더 없이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 (후략)

고종 38년은 光武 5년이니 서기 1901년이다.
당시 갑오경장을 실시하여 국위를 일신하고 칭제건원을 단행하였는데 특히 선대 다섯 종묘를 추존하였다는 실록기사가 있다. 그리하여 열조 중에, 재위하지 않았던 추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의 조대비도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높이고 사도세자 곧 추존 장조(莊祖)의 빈이신 혜경궁 홍씨도 다행스럽게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가 되어 종묘에 봉안되었거니와, 정작으로 애석하게도 실제 재위했던 두 분이인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의 비요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의 모후는 후(后)도 아니요 비(妃)도 아닌 빈(嬪)으로 지금까지 106년을 칠궁(七宮)에 받들어 왔다니.(오호(嗚呼), 불민(不敏)한 오문(吾門!)
이것은 <전주리씨 대동 종약원>이 공한에서나 기타 존호를 사용함에 있어,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아 遑然히 개호를 실천해야 한다. 이미 1901년에 추존(개호) 조서(詔書)는 내려진 것이 아닌가!
애석한 것은 대한제국이 이후 을사년(1905년 보호조약) 정미년 (1907 칠조약) 경술년(1910 국권병탄) 국치에 이르기까지 혼미한 정국으로 운이 다하매, 수비께서도 끝내 황후로 추존, 행례(行禮)되는 운을 못 보신 것이다.

그러나, <빈>은 임금의 1위 부실(副室)이며 정일품의 여관(女官)이요, <비>는 임금의 정실 아내며 내전 곤전 중궁전이라 불러 왕과 같이 품계는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미 경신보에 선대 종현들이 정통하시어 바로 기록해 주신 대로 ‘수비(綏妃)’ 칭호를 준수하자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세 분의 비빈이라>하지 않고 <세 분의 비(妃)라>고 일러야 옳다. <반박(潘朴)에 비빈이 셋이라> 않고 <비가 세 분이라> 해야 바른 지칭이다. 그 추존호는 <현목수비>다.
현재 칠궁에는 비빈이 7위 모셔 있는데 그 중에 두 妃가 있으니. 영왕 은(垠) 모친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와 순조의 모친 현목수비 박씨다.
종친들께 알리오니, 부디 매년 양력 10월 넷째 월요일(오전11시)을 달력에 메모해 두셨다가, 전철 경복궁역에 내리시어 청와대 정문 왼쪽 담에 이웃한 칠궁제(七宮祭)의 제향(景祐宮)에 참반해 주시기를 삼가 부탁을 올립니다.

///////////////////////////////////////////////////////////////////////////////
동대문구 휘경동의 유래
휘경동은 서울시 동대문구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배봉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중랑구 면목동, 서쪽은 청량리동, 북쪽은 이문동과 접해 있습니다. 휘경이란 마을(洞) 이름은 배봉산 아래에 있던 수빈(綏嬪) 박씨의 묘소인 휘경원에서 유래합니다. 수빈 박씨는 정조의 후궁이며 조선 22대 순조의 생모인데 순조 22년 수빈이 세상을 떠나자 순조는 사방으로 장지를 구하다가 이곳 양주군 배봉산 아래(현재 서울위생병원 위치) 자리를 정하였습니다. 배봉산에는 이보다 먼저 사도세자의 묘인 수은묘가 있었는데 영조38년(1762) 수은묘라고 묘호를 정하고 배봉산에 장사 지냈다가 아들인 정조가 임금이 되자 정조원년(1776) 영우원으로 승격한 후 정조13년 경기도 화성의 화산으로 이장하여 현륭원으로 원호를 바꾸고 후에 융릉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순조는 생모인 수빈 박씨의 원호(園號)를 휘경(徽慶)이라 하고 세자를 데리고 휘경원에 자주 거둥하였는데, 이때부터 한적한 마을이었던 휘경원 일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휘경원 또는 휘경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풍수설에 따라 철종 6년 묘소를 양주군 풍양의 순강원(인빈 김씨 묘역) 후면 언덕으로 이장하였다가 철종14년 양주 달마동 즉 현 위치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로 이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휘경동은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하였고 1911년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휘경원으로 불렸습니다.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휘경리가 되었고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휘경정(徽慶町)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 휘경동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휘경원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 우리들 기억속에 남아있는 1993년 김영삼 정부시절 고속열차 업체선정과정에서 TGV 관련하여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297권)해간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 반환시 외규장각도서 한 권을 반환받아 한때 국민을 흥분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반환받은 책이 바로 휘경원을 조성한 기록인 휘경원 원소도감의궤으로서 이 책을 통해 휘경원에 얽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기록
- 순조 22(1822년) 12/26 가순당(수빈박씨)이 보경단에서 서거하다
12/29 빈청에서 가순당의 원호를 휘경으로 시호는 현목으로 정하다
- 순조 23(1823년) 02/26 사시(巳時)에 현실(玄室)에 하관(下棺)하였다.
- 철조 6(1855년 ) 9/28 휘경원의 현실(玄室)을 파낼 때 함인정 앞뜰에서 망곡(望哭)을 행하였다
- 철종 14(1863년) 5/8 휘경원의 현실(玄室)을 내릴 때에 망곡하였다.
- 고종 39(1902년) 10/24 현목 수빈을 수비(綏妃)로 높여 봉하고 옥책과 금책을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다





0
418 28 5

 no 
 subject 
 name 
 date 
 hit 
 vote 
358
   나주시, 2008 반남 고분 국화축제

박찬무
2008/10/25 2718 0
357
   `열하일기' 한글번역 필사본 새로 발견

박찬무
2006/02/22 2673 0
356
   젊은 반남박씨 찾습니다 [6]

박양우
2010/02/11 2670 0
355
   나주 기오정 전남도문화재 제 266호 지정

박찬무
2008/04/07 2665 0

   5월22일 현목수비(綏妃) 가순궁 제향 안내

박찬무
2007/05/04 2664 0
353
   박찬구 종친 경기도청 사무관 승진

박찬무
2004/09/25 2662 0
352
   10월 22일(음력 9월9일) 절사(節祀) 안내

박찬무
2004/10/10 2661 0
351
    이연자의종가음식기행- 서계 박세당 종가 [중앙일보]

박찬무
2007/06/07 2659 0
350
   화양회 정기총회 성황리에 끝 마쳐

박찬무
2004/01/31 2658 0
349
   하남시, 박치 묘역 시 지정문화재 심의

박선우
2007/12/02 2651 0
348
   謹弔 박창서님 母親, 宿患으로 別世

박찬무
2008/02/25 2647 0
347
   ‘박영효 태극기 산실’ 일본배 보존 확인

박찬무
2009/01/06 2635 0
346
   프로야구 FA 박명환, LG 이적...최대 40억원

박찬무
2006/12/24 2616 0
345
   박준서 도유사 지난해는 율곡상 수상 하기도

박찬무
2008/07/18 2612 0
344
   나주시 왕곡면, 기념일! 우리 마을에도 있다

박찬무
2007/10/10 2596 0
[1][2][3][4] 5 [6][7][8][9][10][11][12][13][14][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