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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료, 세보의 세적, 비갈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비롯하여 각종 인터넷백과사전 자
료 등을 참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종친 분들의 많은 참여와 자료제공을 부탁 드립니다.
참고로 앞부분 (예) 09-02-0057 은 9세 경신보 2권 57쪽에 등재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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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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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1-03-0124 박규수(朴珪壽) 환재(桓齋) 문익공(文翼公)



박규수(朴珪壽)에 대하여
박규수(朴珪壽)
1807(순조 7)∼1877(고종 14). 조선 말기의 문신·개화사상가.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규학(珪鶴), 초자(初字)는 환경(桓卿), 자는 환경(瓛卿) 또는 정경(鼎卿), 초호(初號)는 환재(桓齋), 호는 환재(瓛齋) 또는 환재거사(瓛齋居士). 서울출신.
북학파 거두 지원(趾源)의 손자로, 현령 종채(宗采)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유영(柳詠)의 딸이다.

1. 가계와 수학
가세가 빈한하여 어려서는 주로 아버지에게 수학하였고, 소년시절에는 진외족(陳外族)인 이정리(李正履), 외족인 유지산(柳芝山) 등에게서 훈도받았다.
그러나 15세경 이미 조종영(趙鍾永) 등과 망년지교(忘年之交)할 만큼 학문적으로 성장하였고, 20세 무렵 효명세자(孝明世子)와 교유할 때는 이미 문명(文名)이 자심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세자의 급서(急逝)와 어머니·아버지의 연이은 사별로 인한 상심 때문에 근 20년간 칩거(蟄居)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였는데, 자와 호의 ‘환(桓)’이라는 글자를 ‘환(瓛)’자로 바꾼 동기도 세자의 죽음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동안 이미 할아버지인 박지원의 《연암집 燕巖集》을 통하여 실학적 학풍에 눈을 떴고, 윤종의(尹宗儀)·남병철(南秉哲)·김영작(金永爵) 등 당대 일류학자와의 학문적 교유를 통하여 실학적 학문경향을 한층 심화시켰다.

2. 출사와 관직생활
그뒤 1848년(헌종 14)에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으로서 처음 관직에 나아갔다. 그해 병조정랑으로 옮겼다가 그해 다시 용강현령에 부임하였다.
1850년(철종 1)부안현감, 이듬해 사헌부장령에 제수되었다.
1854년 동부승지가 되고, 그해 경상좌도 암행어사로서 민정을 시찰하였다.
1858년 다시 곡산부사로서 외직에 보임되었다.
1861년 약 6개월간에 걸쳐 연행사절(燕行使節)의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856년의 애로호사건(Arrow號事件)에 관련, 영·프랑스 양군이 북경(北京)·톈진(天津)을 점령하자 당시 청나라의 함풍제(咸豊帝)가 러허(熱河)에 피난하였는데, 그 문안사절로 갔을 때 국제정세의 돌아감을 목격할 수 있었고, 심병성(沈秉成) 등 80여명의 중국문인들과의 교유를 통하여 보다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귀국하자 곧 성균관대사성이 되었고, 1862년 2월 진주민란의 사태수습을 위한 안핵사(按覈使)에 임명되어 민란의 진상을 조사, 보고하였다. 이는 국내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기회가 되었다. 안핵사로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그해 10월 이조참의에 서용되었다.
1864년(고종 1)고종이 즉위하자 특별 가자(加資)되어 도승지에 임명되었는데, 이는 새로 즉위한 고종으로 하여금 익종(翼宗)의 뒤를 승계하게 한 조대비(趙大妃:익종의 비)가 지난날 익종과 절친하였던 그를 우대한 때문이다.
이어 사헌부대사헌·홍문관제학·이조참판을 차례로 역임하고, 1865년 한성부판윤에 제수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지경연사(知經筵事)겸 공조판서에 전임되었는데, 이 무렵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왕실의 위엄을 높이기 위하여 경복궁 중건에 착수하자 그 영건도감(營建都監)의 제조(提調)를 겸하였다.
그뒤 예조판서·대사간을 거쳐 그해 8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제수되고, 1866년 2월 평안도관찰사로 전임되었는데, 그해 7월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사건(General Sherman號事件)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10월 천주교도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는데, 천주교도 박해에 대하여 민중이 천주교를 좇는 것은 결국 위정당국이 이들을 교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처벌보다 선도하여야 한다고 주장, 그의 관내에서는 단 한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게 한 일 등의 선정으로 1869년 4월까지 만 3년 2개월 동안 평안도관찰사 직에 잉임(仍任)되었다.
1869년 4월 한성판윤에 임명되었고, 이어 형조판서에 제수되었다.
그뒤 대제학에 재임중 1872년 진하사(進賀使)의 정사(正使)로서 서장관 강문형(姜文馨), 수역(首譯) 오경석(吳慶錫)을 대동, 두번째 중국에 다녀왔다. 이 제2차 중국사행을 통하여 그는 서양의 충격에 대응하는 청국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목격, 개국(開國)·개화(開化)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 후 1873년 5월 다시 형조판서에 임명되고, 그해 12월 우의정에 승진되었다.

3. 치사와 후세교육
이 무렵 흥선대원군에게 개국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역설하였으나 뜻대로 실현되지 못하자 1874년 9월에 사직하고 1875년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어 국정의 제일선에서 물러나 한거생활에 들어갔다.
이 시기에 그의 사랑방에 출입하는 젊은 양반자제들에게 《연암집》을 강의하기도 하고 중국에 내왕한 사신이나 역관들이 전하는 새로운 사상을 말하기도 하여 개화운동의 선구적 인물들이 그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뒤로도 계속 문호개방을 위하여 진력하던 중, 1875년 9월 일본이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을 일으켜 수교를 강요해오자 오경석 등과 함께 정부당로자들을 설득, 1876년 2월 드디어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하였다.
그해 1월 고희(古稀)를 넘겨 기사(耆社)에 든 뒤 한직(閑職)인 수원유수(水原留守)로 있다가 죽었다.

4. 개화사상
그의 실학파적 학문경향은 그의 가문이나 그가 교유하였던 관계인물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의 학풍은 그 문인 김윤식(金允植)이 지적한 바와 같이, “크게는 체국경야(體國經野)의 제(制)로부터 작게는 금석(金石)·고고(考古)·의기(儀器)·잡복(雜服) 등의 일까지 연구, 정확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하지 않는 바가 없고, 규모가 굉대하고 종리(綜理)가 미세 정밀한” 실학파의 학풍이었다.
박지원의 손자로서 인맥적으로도 북학파에 직결되는 그가 사숙한 선배 중에는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정약용(丁若鏞)·서유구(徐有榘) 등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실학’으로부터 ‘개화’에로의 사상적 전환은 1860년대부터 1870년대에 걸쳐서 대외적 위기에 대응한 그의 활동과 깊게 관련된다.
1861년 열하부사(熱河副使)로서 청나라를 방문, 국제형세를 목격하였고, 1862년 진주민란의 안핵사로서 현지에 파견되었으며, 1866년 평안감사로서 대동강에 불법침입한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의 격침을 직접 지휘하였다.
그로부터 1871년의 신미양요에 이르기까지 양요(洋擾)에 관련되는 청나라에의 자문(咨文) 및 미국측의 힐문(詰問)과 통상요구에 대한 답장을 대부분 기초하였다.
이러한 대외활동을 통하여 경향으로서는 실학적인 것으로부터 점차 개화적인 것으로 기울어졌던 것으로서 그의 개화사상이란, 요컨대 실학사상의 근대지향적 측면을 내재적으로 계승한 위에 외발적 요인이 작용하여 촉발된, 일찍이 북학파 학자들이 주장한 이용후생(利用厚生)바로 그것이었다.
1866년의 셔먼호사건과 그것을 구실로 하여 무력 개국을 시도한 1871년의 신미양요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 대하여 “미국은 지구상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공평하다고 일컬어지고 난리의 배제와 분쟁의 해결을 잘하며, 또 6주(洲)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이 없다고 하니, 저쪽에서는 비록 말이 없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먼저 수교 맺기를 힘써 굳은 맹약을 체결하면 고립되는 우환은 거의 면할 것이다.”고 내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유학자들의 세계관과는 비교될 수 없는 진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직자로서의 그는 주화(主和)는 곧 매국이라고 규정짓는 흥선대원군의 집정하에서 그의 개국론을 공식적으로 거론할 수는 없었다. 셔먼호사건에서처럼 무력에 호소하는 무법행위에 대하여 단호히 이를 격퇴한 것이라든지, 신미양요에 관한 미국에의 자문에서 “저쪽이 호의로써 오면 우리도 호의로써 응하고, 저쪽이 예(禮)로써 오면 나도 예로써 접대할 것이니, 곧 인정이 진실로 그런 것이며 나라의 통례이다.”라고 말한 것 등은 국가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공적 입장에서였다.
문인 김윤식에 의하면 자문·답장에 나타나 있는 박규수의 주장은, “이치에 근거하여 자세히 말하고 그 말을 완곡하게 굴려서 국가의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것뿐이었다. 문호를 닫고 수호를 물리치는 등의 일은 선생의 뜻이 아니었고 부득이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개국에의 확신을 깊이하고 이를 공공연히 주장하게 된 시기는, 대체로 1872년 진하사의 정사로서 두번째 중국을 방문, 양무운동을 상세하게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1871년 청나라의 사죄사로서 프랑스여행에서 돌아온 숭후(崇厚)의 형 숭실(崇實)을 만나 서양제국의 사정을 보다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던 때부터라고 생각된다.
1873년 12월, 우의정에 승진하던 무렵 고종의 친정(親政)이 선포되었고, 이에 따라 흥선대원군에 대신하여 민씨일족이 국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당시 대외관계에 있어 초점이 된 문제가, 일본이 왕정복고를 통고해온 서계문제(書契問題)였다.
즉, 그 서계가 종전의 서계격식과 달라 조선국왕에 대한 일본의 ‘황(皇)’·‘칙(勅)’, 조선국에 대한 ‘대일본(大日本)’ 등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수리하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직함(職銜)을 가서(加書)한 것은 저네들 자신 그 나라의 정령(政令)이 일신되어 그 인군의 우상(優賞)을 입은 것을 과시한 것뿐이다. 소위 관작(官爵)을 승진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인가? 종래의 격식과 다르다고 하여 이를 힐책하며 받지 않는데, 이것이 일개 통역관의 견해라면 괴이할 것이 없겠지만, 하필 조정 스스로가 이를 교계(較計)하려 하는가? 가히 일소에 붙일 일이다.”라고 하면서 서계의 문구에 구애되지 말고, 저들이 나라의 제도를 변경하여 옛날같이 통호(通好)하려는 뜻을 표명하는 한 대국적 견지에서 서계를 받아들일 것을 대원군에게 역설하였다.
1875년 5월 대원군에게 “만약 저들이 포성을 한번 발(發)하기에 이르면 그 이후 비록 서계를 받고자 하여도 이미 때가 늦어 나라를 욕되게 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즉, 왜양일편(倭洋一片)인 상황에서 일본과의 수호를 거부하는 것은 조선의 약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무력행사의 구실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875년 6월 13일, 일본이 보내온 서계에 대한 논의를 위하여 열린 시원임대신(時原任大臣)의 어전회의에서 거듭, 저들 일본이 나라의 제도를 변경하여 인호(隣好)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거부하면 반드시 한을 품게 하고 불화를 낳을 단서가 될 것이므로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그해 9월 25일 강화도사건이 발생하였다. 강화도사건에 있어서의 조선측의 패배는 그가 우려한 바대로 최악의 사태로 발전되어 1876년 2월의 강화도 담판은 패자 조선에 대한 승자 일본의 무력적 협박하에 진전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따라서 1876년 2월 26일에 조인된 12개 조항의 병자수호조규(丙子修好條規)는 이렇게 하여 체결된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5. 평가
그의 개국론은, 그가 “일본이 수호를 운운하면서 병선을 이끌고 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호의 사신이라 하니 우리가 먼저 선공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의외의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바와 같이, 무력충돌도 불사한다는 자주적 개국이었고, 무력적 굴복에 따른 타율적 개국을 회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그의 의도와는 반대방향으로 진전되어버렸던 것이다. 문인 김윤식은 박규수의 만년에 대하여, “나라사정이 날로 그릇쳐지매 공은 늘 천장을 쳐다보며 길게 탄식하며 윤기(倫紀)가 끊어져 나라도 장차 따라서 망하리니, 가련한 우리 생민(生民)이 어찌하여 하늘로부터 저버려져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드디어 걱정과 분함 때문에 병석에 누웠다.”라고 적고 있다.
정약용·서유구·김매순(金邁淳)·조종영·홍석주(洪奭周)·윤정현(尹定鉉)을 선배로서 사숙하였고, 문우로서 남병철·김영작·김상현(金尙鉉)·신응조(申應朝)·윤종의·신석우(申錫愚) 등과 주로 교유하였다. 그리고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김윤식·유길준(兪吉濬) 등은 그 문하에서 배출된 개화운동의 선구적 인물들로서, 박규수는 곧 북학파와 개화파를 결절(結節)시킨 중심인물이다.
고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환재집 瓛齋集》·《환재수계 瓛齋繡啓》가 있고, 편저로는 《거가잡복고 居家雜服攷》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日省錄, 高宗實錄, 承政院日記, 朴珪壽全集, 陰晴史(金允植)
續陰晴史(金允植)
雲養集(金允植)
苟菴集(申應朝)
梅泉野錄(黃玹)
韓國痛史(朴殷植, 大同編譯局, 1915)
朝鮮近代史硏究(姜在彦, 日本評論社, 1970)
近代朝鮮の思想(姜在彦, 紀伊國屋書店, 1971)
開化黨硏究(李光麟, 一潮閣, 1973)
近代朝鮮の變革思想(姜在彦, 日本評論社, 1974)
朝鮮の洋夷と開化(姜在彦, 平凡社, 1977)
朝鮮の開化思想(姜在彦, 岩波書店, 1980)
實學과 開化思想의 聯關問題(金泳鎬, 韓國史硏究 8, 1972)
朴珪壽의 生涯와 思想(李完宰, 史學論志 3, 1975)
開化思想의 形成과 그 性格(金泳鎬,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瓛齋先生集(金義煥, 朝鮮學報 86, 1978)
初期開化思想硏究(李完宰, 慶熙大學校大學院博士學位論文, 1988)
朴珪壽の政治思想(原田環, 朝鮮學報 86, 1978)
朴珪壽と洋擾(原田環, 旗田古稀紀念朝鮮史論集, 1979)
朴珪壽と對日開國論(原田環, 人文學報 46,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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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0001 박응주(朴應珠) 호장공(戶長公)

박찬무
2010/07/03 353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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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1-0001 박 의(朴 宜) 급제공(及第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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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1-0001 박윤무(朴允茂) 진사공(進士公) 참의공(參議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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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01-0001 박 수(朴 秀) 밀직공(密直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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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1-0002 박상충(朴尙衷) 문정공(文正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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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1-0002 박상충(朴尙衷)2 - 이곡(李穀) 가정(稼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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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1-0002 박상충(朴尙衷)3 - 이색(李穡) 목은(牧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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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1-0002 박상충(朴尙衷)4 - 안길상(安吉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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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01-0002 박 은(朴 訔) 錦川府院君 평도공(平度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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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1-0002 박 규(朴 葵) 참판공(參判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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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1-0003 박 강(朴 薑) 세양공(世襄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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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01-0005 박 훤(朴 萱) 부윤공(府尹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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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0001 박병문(朴秉文) 사직공(司直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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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0002 박병균(朴秉鈞) 판관공(判官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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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0003 박병덕(朴秉德) 군수공(郡守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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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0004 박 치(朴 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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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1-0005 박숭질(朴崇質) 공순공(恭順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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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1-0009 박억년(朴億年) 교리공(校理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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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1-0009 박조년(朴兆年) 정랑공(正郞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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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6-0014 박 용(朴 墉)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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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6-0014 박 용(朴 墉)女 조선12대왕 인종(仁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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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6-0014 박 용(朴 墉)女 인성왕후(仁聖王后) 인종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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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9-0001 박맹지(朴孟智) 춘당공(春塘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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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8-0001 박희권(朴希權) 임회당(臨淮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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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1-0010 박소(朴紹) 야천(冶川) 문강공(文康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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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1-0021 박 집(朴 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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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4-0018 박승간(朴承侃) 사성공(司成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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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4-0021 박승임(朴承任) 소고공(嘯皐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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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5-0848 박윤성(朴允誠) 송고공(松皐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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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6-0015 박 주(朴 洲) 정산공(鼎山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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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0015 박응남(朴應男) 문정(文貞) 남일공(南逸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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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0015 박응남(朴應男)女 선조妃 의인왕후(懿仁王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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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1-0015 박응남(朴應男)女 조선 14대왕 선조(宣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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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4-0021 박 록(朴 漉) 취수옹(醉睡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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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0342 박명회(朴明會) 어모공(御侮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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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0017 박 린(朴 璘) 청라공(靑蘿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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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0020 박 찬(朴 璨) 동곽자(東郭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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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0010 박동현(朴東賢) 활당공(活塘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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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0011 박동노(朴東老) 정자공(正字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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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0011 박동준(朴東俊) 도사공(都事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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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0011 박동호(朴東豪) 가선공(嘉善公)

박찬무
2010/07/05 2093 0
206
   13-01-0012 박동민(朴東民) 참봉공(參奉公)

박찬무
2010/07/05 2266 0
205
   13-01-0013 박동선(朴東善) 서포공(西浦公)

박찬무
2010/07/05 2123 0
204
   13-01-0014 박동도(朴東燾) 온양공(溫陽公)

박찬무
2010/07/05 2086 0
203
   13-01-0014 박동언(朴東彦 ) 시정공(寺正公)

박찬무
2010/07/05 2092 0
202
   13-01-0016 박동윤(朴東尹) 부솔공(副率公)

박찬무
2010/07/05 2173 0
201
   13-01-0016 박동점(朴東點) 토산공(兎山公)

박찬무
2010/07/05 1980 0
200
   13-01-0017 박동열(朴東說) 남곽공(南郭公)

박찬무
2010/07/05 2148 0
199
   13-01-0018 박동망(朴東望) 길주공(吉州公)

박찬무
2010/07/05 2070 0
198
   13-01-0019 박동량(朴東亮) 오창공(梧窓公)

박찬무
2010/07/05 2123 0
197
   13-04-0010 박중윤(朴仲胤)

박찬무
2013/06/07 1533 0
196
   13-04-0021 박회무(朴檜茂) 육우당(六友堂)

박찬무
2010/08/10 2006 0
195
   13-06-0019 박대하(朴大夏) 송곡공(松谷公)

박찬무
2010/08/10 1952 0
194
   14-01-0010 박 병(朴 炳) 목사공(牧使公)

박찬무
2010/08/10 2048 0
193
   14-01-0011 박 엽(朴 燁) 약창공(葯窓公)

박찬무
2010/08/10 2033 0
192
   14-01-0012 박 휘(朴 煇) 집의공(執義公)

박찬무
2010/08/10 2141 0
191
   14-01-0013 박 정(朴 炡) 하석공(霞石公)

박찬무
2010/08/10 2032 0
190
   14-01-0013 박 환(朴 煥) 동추공(同樞公)

박찬무
2010/08/10 1991 0
189
   14-01-0014 박 황(朴 潢) 나헌공(懦軒公)

박찬무
2010/08/10 2027 0
188
   14-01-0016 박 정(朴 渟) 남양공(南陽公)

박찬무
2010/09/04 2042 0
187
   14-01-0017 박 호(朴 濠) 남평공(南平公)

박찬무
2010/09/04 1988 0
186
   14-01-0018 박 유(朴 瀏)

박찬무
2010/09/12 1932 0
185
   14-01-0019 박 미(朴 瀰) 금양위(錦陽尉)

박찬무
2010/08/10 1980 0
184
   14-01-0019 박 미(朴 瀰) 정안옹주(貞安翁主

박찬무
2010/09/14 2220 0
183
   14-01-0020 박 사(朴 사)

박찬무
2010/09/11 2054 0
182
   14-01-0020 박 의(朴 漪) 중봉공(仲峰公)

박찬무
2010/08/10 1999 0
181
   14-04-0010 박 정(朴 烶)

박찬무
2013/06/07 1536 0
180
   14-09-0002 박문영(朴文楧) 용호공(龍湖公)

박찬무
2010/09/11 1811 0
179
   15-01-0014 박세상(朴世相) 창수공(倉守公)

박찬무
2010/09/04 2142 0
178
   15-01-0044 박세지(朴世墀)女 이경(李璟)처

박찬무
2010/09/11 1950 0
177
   15-01-0054 박세기(朴世耆) 둔촌공(遯村公)

박찬무
2010/08/10 2236 0
176
   15-01-0059 박세구(朴世耉) 한천공(寒泉送)

박찬무
2010/08/10 2128 0
175
   15-01-0060 박세성(朴世城) 승지공(承旨公0

박찬무
2010/08/01 1999 0
174
   15-01-0076 박세견(朴世堅) 단애공(湍厓公) 고옹(痼翁)

박찬무
2010/08/01 2095 0
173
   15-01-0083 박세후(朴世垕) 시정공(寺正公)

박찬무
2010/09/11 2008 0
172
   15-01-0097 박세당(朴世堂) 서계공(西溪公)

박찬무
2010/08/01 2206 0
171
   15-01-0143 박세모(朴世模) 여도공(汝道公)

박찬무
2010/08/01 2014 0
170
   15-01-0150 박세해(朴世楷) 찬성공(贊成公)

박찬무
2010/09/04 2027 0
169
   15-01-0180 박세량(朴世樑) 생불공(生佛公)

박찬무
2010/09/11 1871 0
168
   15-01-0186 박세장(朴世樟)

박찬무
2010/08/01 1972 0
167
   15-01-0190 박세교(朴世橋) 경력공(經歷公)

박찬무
2010/08/10 1997 0
166
   15-01-0213 박세채(朴世采) 현석(玄石) 문순공(文純公)

박찬무
2010/08/10 2277 0
165
   15-01-0223 박세집(朴世集)

박찬무
2013/06/07 1518 0
164
   15-01-0251 박세준(朴世雋)

박찬무
2010/09/11 1866 0
163
   15-04-0106 박세현(朴世鉉) 눌헌공(訥軒公)

박찬무
2010/09/11 1850 0
162
   15-06-0154 박원도(朴元度) 죽창공(竹窓公)

박찬무
2010/08/01 2104 0
161
   15-06-0185 박두망(朴斗望)

박찬무
2013/06/07 1513 0
160
   16-01-0017 박태초(朴泰初)

박찬무
2010/09/04 1939 0
159
   16-01-0032 박태징(朴泰徵) 돈재공(遯齋公)

박찬무
2010/09/12 1877 0
158
   16-01-0069 박태원(朴泰遠) 일우공(一愚公)

박찬무
2010/08/10 1909 0
157
   16-01-0069 박태원(朴泰遠) 일우공(一愚公)

박찬무
2010/08/10 1877 0
156
   16-01-0076 박태상(朴泰尙) 만휴당(萬休堂)

박찬무
2010/08/01 2289 0
155
   16-01-0083 박태보(朴泰輔) 정재공(定齋公)

박찬무
2010/08/01 2087 0
154
   16-01-0087 박태유(朴泰維) 백석공(白石公)

박찬무
2010/08/01 2051 0
153
   16-01-0103 박태순(朴泰淳) 동계공(東溪公)

박찬무
2010/08/01 1994 0
152
   16-01-0109 박태손(朴泰遜) 천휴공(天休公)

박찬무
2010/08/01 2106 0
151
   16-01-0113 박태정(朴泰定) 경녕군주(慶寧郡主)

박찬무
2010/09/14 2258 0
150
   16-01-0113 박태정(朴泰定) 경신재(敬愼齋) 경헌(敬憲)

박찬무
2010/08/01 2021 0
149
   16-01-0143 박태장(朴泰長)

박찬무
2013/06/07 1543 0
148
   16-01-0169 박태항(朴泰恒)

박찬무
2010/08/01 1949 0
147
   16-01-0177 박태초(朴泰初) 아천공(鵝川公) [1]

박찬무
2010/09/12 1926 0
146
   16-01-0187 박태창(朴泰昌) 운계공(雲溪公)

박찬무
2010/08/01 1894 0
145
   16-01-0190 박태두(朴泰斗) 금은군(錦恩君)

박찬무
2010/09/04 1926 0
144
   16-01-0200 박태만(朴泰萬) 부남공(部南公)

박찬무
2010/08/01 2005 0
143
   16-01-0213 박태은(朴泰殷) 극재공(克齋公)

박찬무
2010/09/12 1986 0
142
   16-01-0220 박태회(朴泰晦)

박찬무
2013/06/07 1519 0
141
   16-08-0017 박지영(朴之英)

박찬무
2010/09/12 1952 0
140
   16-09-0415 박문빈(朴文彬)

박찬무
2013/06/07 1510 0
139
   17-01-0032 박필창(朴弻昌)

박찬무
2013/06/07 1459 0
138
   17-01-0078 박필건(朴弼健)

박찬무
2013/06/07 1518 0
137
   17-01-0095 박필규(朴弼逵)

박찬무
2013/06/07 1507 0
136
   17-01-0106 박필현(朴弼顯)

박찬무
2010/08/01 2013 0
135
   17-01-0107 박필몽(朴弼夢)

박찬무
2010/08/01 2060 0
134
   17-01-0110 박필기(朴弼夔)

박찬무
2013/06/07 1500 0
133
   17-01-0113 박필영(朴弼英)

박찬무
2013/06/07 1524 0
132
   17-01-0113 박필명(朴弼明)

박찬무
2010/08/01 1942 0
131
   17-01-0143 박필성(朴弼成) 금평위(錦平尉)

박찬무
2010/09/04 2005 0
130
   17-01-0143 박필성(朴弼成) 숙녕옹주(淑寧翁主)

박찬무
2010/09/14 1907 0
129
   17-01-0170 박필간(朴弼幹) 정헌공(靜軒公)

박찬무
2010/08/01 2121 0
128
   17-01-0187 박필기(朴弼琦) 무취옹(無臭翁)

박찬무
2010/09/04 1909 0
127
   17-01-0187 박필리(朴弼理)

박찬무
2010/08/01 1890 0
126
   17-01-0191 박필하(朴弼夏)

박찬무
2010/09/11 1981 0
125
   17-01-0198 박필주(朴弼周) 여호(黎湖) 문경공(文敬公)

박찬무
2010/09/12 1935 0
124
   17-01-0211 박필균(朴弼均) 장간공(章簡公)

박찬무
2010/08/13 2057 0
123
   17-01-0216 박필부(朴弼傅)

박찬무
2010/09/04 1919 0
122
   17-01-0224 박필순(朴弼淳)

박찬무
2013/06/07 1522 0
121
   17-01-0253 박필재(朴弼載)

박찬무
2010/08/01 2008 0
120
   17-01-0256 박필시 (朴弼時)

박찬무
2010/09/04 1920 0
119
   17-06-0195 박치륭(朴致隆)

박찬무
2010/08/01 1945 0
118
   18-01-0028 박사백(朴師伯)

박찬무
2013/06/07 1472 0
117
   18-01-0054 박사덕(朴師德)

박찬무
2012/07/21 1691 0
116
   18-01-0069 박사석(朴師錫)

박찬무
2010/08/10 1947 0
115
   18-01-0075 박사창(朴師昌)

박찬무
2010/09/11 1969 0
114
   18-01-0076 박사임(朴師任 )

박찬무
2010/10/30 2177 0
113
   18-01-0089 박사형(朴師亨)

박찬무
2010/08/10 1975 0
112
   18-01-0113 박사수(朴師洙) 내헌(耐軒) 문헌공(文憲公)

박찬무
2010/08/01 2043 0
111
   18-01-0187 박사해(朴師海) 창암공(蒼巖公)

박찬무
2010/08/03 2060 0
110
   18-01-0193 박사익(朴師益) 금원군(錦原君)

박찬무
2010/08/01 2048 0
109
   18-01-0193 박사정(朴師正)

박찬무
2010/08/01 2012 0
108
   18-04-0154 박홍준(朴弘儁)

박찬무
2013/06/07 1532 0
107
   19-01-0019 박취원(朴取源)

박찬무
2013/06/07 1458 0
106
   19-01-0039 박일원(朴一源)

박찬무
2010/09/12 1891 0
105
   19-01-0061 박성원(朴盛源) 문헌공(文憲公)

박찬무
2010/08/03 2094 0
104
   19-01-0069 박윤원(朴胤源) 근재(近齋) 문헌공(文獻公)

박찬무
2010/10/31 1950 0
103
   19-01-0070 박준원(朴準源) 금석(錦石) 충헌공(忠獻公)

박찬무
2010/08/03 2213 0
102
   19-01-0071 박준원(朴準源)女 수빈박씨 가순궁(嘉順宮)

박찬무
2010/08/10 2592 0
101
   19-01-0071 박준원(朴準源)女 조선 22대왕 정조(正祖)嬪

박찬무
2010/09/12 2467 0
100
   19-01-0071 박준원(朴準源)女수빈(綏嬪) 조선 23대 순조母

박찬무
2010/09/12 2234 0
99
   19-01-0170 박하원(朴夏源) 도객공(島客公)

박찬무
2010/09/11 1827 0
98
   19-01-0175 박서원(朴瑞源)

박찬무
2013/06/07 1498 0
97
   19-01-0194 박창원(朴昌元) 담옹공(澹翁公)

박찬무
2010/08/03 2037 0
96
   19-01-0195 박명원(朴明源) 금성위(錦城尉)

박찬무
2010/09/14 2077 0
95
   19-01-0195 박명원(朴明源) 화평옹주(和平翁主)

박찬무
2010/09/14 2137 0
94
   19-01-0202 박재원(朴在源) 이천공(而川公)

박찬무
2010/08/03 2020 0
93
   19-03-0124 박지원(朴趾源) 연암(燕巖) 문도공(文度公)

박찬무
2010/08/03 2331 0
92
   19-04-0169 박시원(朴時源) 일포공(逸圃公)

박찬무
2010/08/03 2020 0
91
   19-04-0174 박사건(朴師騫)女 민조현(閔祚顯) 처

박찬무
2010/09/10 1963 0
90
   19-05-0042 박승욱(朴承郁) 삼호재(三好齋)

박찬무
2010/09/12 2104 0
89
   20-01-0069 박종여(朴宗輿) 냉천공(冷泉公)

박찬무
2010/09/12 1921 0
88
   20-01-0070 박종경(朴宗慶) 돈암(敦巖) 문숙공(文肅公)

박찬무
2010/08/03 2158 0
87
   20-01-0070 박종보(朴宗輔) 충익공(忠翼公)

박찬무
2010/08/10 1960 0
86
   20-01-0071 박종희(朴宗喜) 만촌공(晩村公)

박찬무
2010/08/13 1933 0
85
   20-01-0075 박상로(朴相老)

박찬무
2013/06/07 1490 0
84
   20-01-0076 박종갑(朴宗甲) 삼춘방(三春坊) 문정공(文貞公)

박찬무
2010/08/03 2024 0
83
   20-01-0077 박상래(朴相來)

박찬무
2010/08/03 2016 0
82
   20-01-0087 박종길(朴宗吉)

박찬무
2013/06/07 1484 0
81
   20-01-0089 박종훈(朴宗薰) 두계(荳溪) 문정공(文貞公)

박찬무
2010/09/11 2025 0
80
   20-01-0157 박종겸(朴宗謙)

박찬무
2010/08/03 1912 0
79
   20-01-0192 박상면(朴相冕)

박찬무
2013/06/07 1452 0
78
   20-01-0193 박종덕(朴宗德) 효헌공(孝憲公)

박찬무
2010/08/03 2018 0
77
   20-01-0194 박상집(朴相集)

박찬무
2013/06/07 1487 0
76
   20-01-0194 박종악(朴宗岳) 창암(蒼巖) 충헌공(忠憲公)

박찬무
2010/08/03 2063 0
75
   20-01-0195 박상철(朴相喆)

박찬무
2013/06/07 1496 0
74
   20-01-0203 박종신(朴宗臣)

박찬무
2013/06/07 1509 0
73
   20-01-0209 박종휴(朴宗休)

박찬무
2013/06/07 1500 0
72
   20-01-0257 박종황(朴宗璜)

박찬무
2013/06/07 1483 0
71
   20-04-0101 박종희(朴宗禧)

박찬무
2013/06/07 1479 0
70
   20-04-0124 박면중(朴冕中)

박찬무
2013/06/07 1418 0
69
   20-04-0170 박종후(朴宗垕)

박찬무
2013/06/07 1490 0
68
   20-09-0021 박효삼(朴孝參) 사촌공(涉村公)

박찬무
2010/09/11 1822 0
67
   21-00-0000 죽서 박씨(竹西 朴氏) 반아당(半啞堂)

박찬무
2010/09/11 1983 0
66
   21-01-0290 박돈수(朴惇壽)

박찬무
2013/06/07 1530 0
65
   21-01-0618 박호수(朴鎬壽)

박찬무
2010/08/03 1943 0
64
   21-01-0658 박운수(朴雲壽) 죽계공(竹溪公)

박찬무
2010/09/12 1873 0
63
   21-01-0667 박기수(朴岐壽)

박찬무
2010/08/03 1972 0
62
   21-01-0715 박회수(朴晦壽) 호곡(壺谷) 숙헌공(肅獻公)

박찬무
2010/08/03 2048 0
61
   21-01-0720 박윤수(朴崙壽) 금풍군(錦豊君) 충헌공(忠獻公)

박찬무
2010/08/03 2004 0
60
   21-01-0795 박난수(朴蘭壽)

박찬무
2010/08/03 1892 0
59
   21-02-0591 박창수(朴昌壽)

박찬무
2013/06/07 1504 0
58
   21-03-0078 박기수(朴綺壽)

박찬무
2010/08/03 1899 0

   21-03-0124 박규수(朴珪壽) 환재(桓齋) 문익공(文翼公)

박찬무
2010/08/03 2253 0
56
   21-03-0127 박선수(朴瑄壽)

박찬무
2010/08/03 1911 0
55
   21-03-0366 박홍수(朴弘壽)

박찬무
2010/08/03 1882 0
54
   21-03-0369 박용수(朴容壽)

박찬무
2013/06/07 1495 0
53
   21-05-0150 박노수(朴潞壽)

박찬무
2013/06/07 1457 0
52
   22-01-0275 박제선(朴齊璿)

박찬무
2010/08/03 2047 0
51
   22-01-0580 박제순(朴齊純) 평재공(平齋公)

박찬무
2010/08/03 2187 0
50
   22-01-0659 박제헌(朴齊憲)

박찬무
2013/06/07 1552 0
49
   22-01-0659 박제근(朴齊近) 경암공(敬菴公)

박찬무
2010/09/12 1936 0
48
   22-01-0661 박제인(朴齊寅)

박찬무
2010/08/03 1979 0
47
   22-01-0668 박제관(朴齊寬)

박찬무
2010/08/03 1871 0
46
   22-01-0713 박제소(朴齊韶)

박찬무
2010/08/03 1910 0
45
   22-01-0721 박제문(朴齊聞)

박찬무
2013/06/07 1494 0
44
   22-01-0778 박제교(朴齊敎)

박찬무
2013/06/07 1485 0
43
   22-01-0798 박제빈(朴齊斌)

박찬무
2010/08/03 1939 0
42
   22-02-0134 박제경(朴齊璟) 하강공(荷江公)

박찬무
2010/08/11 1957 0
41
   22-02-0134 박제경(朴齊絅)

박찬무
2010/08/03 1894 0
40
   22-02-0872 박제대(朴齊大) 동계공(東溪公)

박찬무
2010/09/12 1923 0
39
   22-03-0002 박원양(朴元陽)

박찬무
2013/06/07 1540 0
38
   22-03-0031 박제일(朴齊一)

박찬무
2013/06/07 1494 0
37
   22-03-0065 박제명(朴齊明)

박찬무
2013/06/07 1477 0
36
   22-03-0366 박제성(朴齊晟)

박찬무
2010/08/03 1942 0
35
   23-01-0344 박돈양(朴暾陽)

박찬무
2013/06/07 1457 0
34
   23-01-0580 박부양(朴富陽)

박찬무
2013/06/07 1497 0
33
   23-01-0582 박성양(朴性陽) 운창(芸窓) 문경공(文敬公)

박찬무
2010/09/11 2001 0
32
   23-01-0658 박정양(朴定陽) 문익공(文翼公)

박찬무
2010/08/03 2061 0
31
   23-01-0661 박호양(朴顥陽)

박찬무
2010/08/03 1921 0
30
   23-01-0721 박홍양(朴弘陽)

박찬무
2013/06/07 1525 0
29
   23-01-0747 박두양(朴斗陽)

박찬무
2013/06/07 1496 0
28
   23-01-0748 박기양(朴箕陽) 석운공(石雲公)

박찬무
2010/08/03 2006 0
27
   23-01-0798 박서양(朴敍陽)

박찬무
2013/06/07 1466 0
26
   23-03-0369 박희양(朴熙陽)

박찬무
2013/06/07 1583 0
25
   23-03-0369 박이양(朴彝陽)

박찬무
2010/08/03 1967 0
24
   23-03-0376 박주양(朴周陽)

박찬무
2010/08/03 2019 0
23
   23-05-0115 박규양(朴奎陽)

박찬무
2013/06/07 1461 0
22
   24-01-0342 박승빈(朴勝彬) 학범공(學凡公)

박찬무
2010/08/11 1884 0
21
   24-01-0659 박승희(朴勝喜) 춘강공(春崗公)

박찬무
2010/09/10 2008 0
20
   24-01-0663 박승봉(朴勝鳳) 산농공(汕農公)

박찬무
2010/08/11 1932 0
19
   24-03-0002 박영교(朴泳敎) 충목공(忠穆公)

박찬무
2010/08/03 2042 0
18
   24-03-0002 박영효(朴泳孝) 영혜옹주(永惠翁主)

박찬무
2010/09/14 2336 0
17
   24-03-0002 박영효(朴泳孝) 현현거사(玄玄居士)

박찬무
2010/08/03 2164 0
16
   24-03-0005 박용원(朴用元)

박찬무
2013/06/07 1552 0
15
   24-05-0121 박승진(朴勝振)

박찬무
2013/06/07 1498 0
14
   24-06-0674 박승산(朴勝山) 우석공(又石公)

박찬무
2010/09/11 2174 0
13
   24-07-0252 박승무(朴勝武) 심향공(心香公)

박찬무
2010/08/11 1989 0
12
   25-01-0658 박동서(朴東緖)

박찬무
2013/06/07 1522 0
11
   25-01-0748 박정서(朴禎緖) [1]

박찬무
2013/06/07 1553 0
10
   25-03-0014 박완서(朴婉緖)

박찬무
2013/06/07 1737 0
9
   26-03-0003 박찬범(朴贊汎)

박찬무
2013/06/07 1613 0
8
   26-03-0003 박찬주(朴贊珠) 운현궁의 종부(宗婦)

박찬무
2010/08/11 2695 0
7
   26-03-0027 박찬익(朴贊翊) 남파공(南坡公)

박찬무
2010/08/11 2330 0
6
   박동형(朴東亨)에 대하여

박찬무
2013/06/07 1556 0
5
   박만서(朴晩緖)에 대하여

박찬무
2013/06/07 1608 0
4
   박성양(朴聖陽)에 대하여

박찬무
2013/06/07 1583 0
3
   박유굉(朴裕宏)

박찬무
2010/09/12 2135 0
2
   박제환(朴齊瓛)에 대하여

박찬무
2013/06/07 1568 0
1
   박태서(朴泰緖)에 대하여

박찬무
2013/06/07 2142 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