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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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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가 아들없는 종친을 울리고 말았다 (오마이뉴스)
족보가 아들없는 종친을 울리고 말았다 (오마이뉴스에서 퍼온글)

지난해 음력 시월 시제 때의 일이다 고향 선산에 모셔진 조상님들의 시제를 올리기 위하여 나는 일찌감지 아침을 먹고 우리 삼형제는 시제를 드리기 위하여 고향 파주 파평면 마산리를 찿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전날 저녁부터 내리는 초겨울 비가 그치지 않고 있었는데 현지에 도착을 하여도 세차게 내리는 비는 멎지를 않고 있다. 날씨가 이런 상태에서는 사실상 현장 시제를 올린다는 것이 불가한 날씨이다.

각처에서 모인 종친들이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이제나 저네나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고 있지만 내리는 비는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이에 하는 수 없이 나는 우리 집안에서 제일 종손이신 형님과 우리 집안 유사일을 보고 계신 형님과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어르신들께 상의를 하여 옛부터 전해오는 풍습이나 유교적인 차원에서의 도리로는 결례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시제를 비가 온다고 연기를 할 수도 없고 만약 연기를 한다 하게 되면 오늘 시제를 모시러온 종손들이 모두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되어 오늘같은 인원 참석이 쉽지가 않을 것 같으니 옛법에 다소 어긋난다 하드라도 오늘 모인 유사 어른댁에서 시제를 올리시자고 건의를 했다.

그러자 연세가 80이 다 되거나 넘으신 어르신들께서는 글쎄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하나 하는 난감한 입장을 취하신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야 시제를 뒤로 물리게 되어도 자영업을 하는 입장이니까 다시 참석은 할 수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보니 만약 그렇게 되면 물러진 날에 시제는 대부분 참석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더러 아저씨께서 어른들께 다시 한번 오늘 모인 김에 집안에서라도 시제를 드리자고 건의를 드리자고 말씀을 드려 달라고 간청을 하여 뭐 한놈이 항렬만 높다고 하던가 게다가 나이까지 중간층 60대이고 보니 이렇게 입장이 곤란한 일이 있을 땐 의례껏 내가 나서서 어른들에게 의사 소통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누구보다도 집안에서 시제를 모신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어르신들께 또 다시 건의를 드리는 일은 무엇보다도 조상님들게 나 자신의 맘이 편치를 않게 생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두 바쁜 사람들을 시제를 올리지 못하고 그냥 돌려 보내기도 또한 쉽지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어르신들께 다시 말씀을 드렸다.

모든 면에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치만 이 다음 형님들이나 어르신들께서 시제 참석을 하실 수 없는 시기가 올 때에도 오늘 같은 일이 생긴다면 아마 오늘 모임 후손들의 생각으로는 집안에서 시제를 모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중요한 것은 정신이니 비록 집안에서 올리는 시제라 하여도 조상님들에 대한 경모 정신은 덜하지 않을 것이며 조상님들께서도 후손들에 피치못할 사정을 이해 하시게 되면 아마 흔쾌히 그러라고 하실 거라고 억지춘향의 이론으로 합법화 시켜가며 어르신들을 설득을 하니 어르신들께서는 자네말을 듣고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며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조바심을 갖고 나의 칙사역활에 신경을 쓰고 있던 젊은 종친들은 모두다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하신 것이니 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시제를 올리도록 하라고 당부를 하고 나니 젊은 사람들이 일사천리로 나서서 시제상 준비를 하여 시제를 올리게 된다.

고향 선산 열서너 군데에 산재되어 있는 조상님들의 묘를 찿아 다니며 시제를 올리게 되면 늦가을 해가 서산에 걸치게 될 때쯤이나 되어 시제 행사가 끝나게 되는데 그날은 집안에서 시제를 모시게 되니 시제올리는 시간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절약이 되어 점심을 먹고 나니 수십년 동안 우리 집안 유사로 종중의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신 형님께서 우리 태유공파의 족보를 재발간을 하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족보 재발간을 책임지고 일할 사람을 선출을 하여 달라고 말씀을 하신다.

예전에는 당신께서 모든 일을 다 맡아서 처리를 하였는데 이제는 나이가 80이 넘었고 능력이 되지를 않는다고 말씀을 하신다. 내가 생각을 하여도 더 이상 연세를 드신 형님께 족보 재발간의 책임을 지워드릴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모두들 어정쩡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데 과거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형님께서 이번 일은 도균이가 책임을 지고 해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니 꿀먹은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던 종친들이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하며 박수를 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 자신도 60이나 된 노인이면서 총친회 총무직까지 덤으로 감투를 쓰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과는 달리 족보를 재발간 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방대한 자료를 옛날처럼 수기(手記)로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려면 소요되는 시간 또한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우선 파평윤씨 대종회에 전화를 하여 그곳에 족보 재발간에 따른 자료라도 다운을 받을 수가 있느냐고 질의를 하니 그 분들은 나의 말을 무슨 외계인 정도가 하는 말로 이해를 하시고 계시는지 예끼! 이사람 족보를 만드는데 무슨 놈의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느냐며 족보를 편찬하는 것은 정성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그냥 손으로 정리를 하여 오라고 나에게 나무라듯 말을 하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 통화를 끊고서 나는 생각을 하였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문명의 이기를 놔두고 궂이 손으로 수기를 고집을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를 않으며 과거에는 파평윤씨 하면 양반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도 파평윤씨 대종회에서는 그때의 영화를 누리던 시절의 꿈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비몽사몽을 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타고 솔직히 컴퓨터를 옆에 놔두고서 수기 작업으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었다. 고심 끝에 나는 내 나름대로 족보 발간에 필요한 편지와 서식, 그리고 주소록 양식을 만들어 전국에 산재하여 살고 있는 종친들에게 전화를 하여 족보 발간에 따른 자료제출 이야기를 한 후 컴퓨터를 하시느냐고 물어보면 50대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대다수 컴퓨터에 컴맹이어서 나의 생각했던 계획과는 많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아이들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리고 집에 컴퓨터는 있을 것 아니냐 물으면 대부분의 가정에 아이들이 컴퓨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차라리 아이들을 바꾸워 달라고 말을 하여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이메일로 족보 발간에 필요한 서식을 보낼테니 너희들이 아버지에게 내용을 설명을 드려서 반드시 너가 자료 정리를 하여 나에게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라고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나의 생각처럼 그렇게 일사천리로 만족한 성과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 대로 대다수의 종친들에게 이메일로 자료를 받아 족보 재발간에 따르는 자료 정리를 이제 거의 두달여에 걸쳐 정리를 하여 마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내가 족보 발간 업무를 하면서 가슴아프게 느끼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代)가 (아들이 없는 종친)끊기는 종친들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겪는 느낌인데 옛날에는 아들이 없이 손이 끊기게 되면 대부분 양자를 입적 하여 양자에 의한 대를 이었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당사자인 (代가 끊키는) 본인이나 가족들이 원치도 않치만 또한 양자로 입적을 원하는 사람들도 없는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내가 나서 족보에 남녀 평등을 주장하여 대통을 이어가자는 주장도 할 수가 없고 또 그렇다고 엄연히 젊게 생존해 있는 종친을, 자신은 족보에 올리나마나 대가 끊키는데 이번 족보 갱신에는 빠지겠다는 소리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그분들을 빼고 자료 정리를 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고 참으로 난감한 입장을 겪는 경험을 한다.

심지어 어떤 종친은 아들 셋이서 큰형은 딸만 셋 둘째는 딸만 하나 또 막내는 딸만 둘로서 이러한 종친들이 더러 있고 보니 그분들은 현재는 당신들 대에서 래왕을 하는 것이고 손이 끊기면 그만인데 궂이 뭘하러 비용을 들여가며 족보에 신경을 쓰겠느냐면서 체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한다.

그 와중에도 다행히 세 분의 종친들이 나의 설득에 의하여 족보 자료 정리를 하여 등재를 하기는 하였지만, 족보라는 기록이 현대사회에서 아들 딸 구분하지 말고 적당히 낳아 잘 기르자는 선각자 정신을 갖고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온 종친들을 볼모로 가슴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그래도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 호적법 주민등록법이 많이 개선되어 남녀 차별없는 평등 사회화되어가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을 하였는데 현대 사회에서 별로 유용하게 사용 하지도 않는 '족보'가 선하게 살어온 종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 가슴아프게 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기 짝이없고 답답하다.

이글은 2003년 2월9일자 오마이뉴스에서 퍼온글입니다. 윤도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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