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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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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군(護軍) 박공(朴公) 묘갈명, 서계집


서계집 제14권  

호군(護軍) 박공(朴公) 묘갈명




공은 휘는 동위(東緯), 자는 사경(士經), 성은 박씨로, 나주(羅州) 반남(潘南)이 관향이다. 8대조 상충(尙衷)은 고려 말에 우문관 직제학(右文館直提學)을 지냈다. 우왕(禑王) 초에 명나라를 배신하고 원나라를 섬기는 것은 선왕의 뜻이 아니라고 간하다가 간신에게 해를 당하였는데, 본조에서 문정(文正)으로 추시(追諡)되었다. 7대조 은(訔)은 태종(太宗)을 도와 좌상(左相)이 되었고 시호는 평도(平度)이다. 4대를 전하여 휘 조년(兆年)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관직이 이조 정랑이었는데, 이분이 공의 증조이다. 조부 휘 소(紹)는 사간을 지냈다. 중종(中宗) 때 김안로(金安老)가 재차 기용되는 것을 막으려다가 찬축되어 영남으로 돌아가 생을 마쳤다. 이분의 동생이 유사(儒士)인 휘 집(緝)인데, 훌륭한 행실이 있었지만 일찍 별세하여 후사가 없었다. 송당(松堂) 박영(朴英)이 묘표를 써 주었다. 사간 부군(司諫府君)이 죽기 전에 막내아들 휘 응인(應寅)으로 하여금 유사 부군(儒士府君)의 후사를 잇게 하면서 말하기를, “내 동생이 제사를 받지 못한다면 죽어서 내가 눈을 감을 수 있겠느냐.” 하였다. 후사가 된 이분이 돈녕 도정 부군으로, 공은 도정 부군의 막내아들이다. 모친 숙부인(淑夫人) 밀양 변씨(密陽卞氏)는 찰방 희눌(希訥)의 따님이다. 선조(宣祖) 9년인 병자년(1576) 10월 7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뜻이 구차하지 않았으니, 24세에 종형이, 선조(先祖)의 공(功)이 임자(任子)에 해당된다면서 공에게 매우 지성껏 벼슬하기를 권하였지만, 끝내 따르지 않았다.
병오년(1606, 선조39)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임자년(1612, 광해군4)에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무오년(1618)에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는 피하여 예산(禮山)에 거주하였다.
계해년(1623) 봄에 일이 있어 서울에 왔는데, 구 능성(具綾城)의 부인이 공의 조카딸이어서 공이 찾아가자, 부인이 공에게 언제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공이 내일 돌아간다고 하자, 부인이 애써 만류하면서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하였고, 능성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공은 그 집에 활과 화살이 잔뜩 있는 걸 보고는 머무르지 않고 이튿날 아침에 떠났다. 능성이 마침내 공이 머무는 곳에 와서 진사가 어디 있는지를 물으니, 그 집에 있던 자가 오늘 새벽에 벌써 돌아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능성이 실망스러워하며 한참을 있다가 돌아갔으니, 홍제원(弘濟院)의 거사(擧事)가 대개 이날에 일어났던 것이다. 뒤에 능성은 공을 책망했지만, 사람들은 공이 멀찌감치 떠나간 것을 대단하게 여겼다. 이해에 재랑(齋郞)에 보임되었다. 가을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병인년(1626, 인조4)에 전설사 별검(典設司別檢)에 제수되고, 동부(東部)와 사복시의 주부, 공조의 좌랑과 정랑, 군기시ㆍ사재감ㆍ장악원ㆍ선공감의 첨정, 광흥창 수(廣興倉守), 전첨(典籤)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연산(連山)과 순창(淳昌) 두 고을의 현감으로 나간 것뿐이었다.
효종(孝宗) 6년인 을미년(1655)에 연로하다는 이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로 올랐다.
정유년(1657) 5월 14일에 양성(陽城)에서 졸하니, 향년 82세였다.
부인 화순 최씨(和順崔氏)는 찰방 효원(孝源)의 따님이다. 공보다 먼저 졸하여 광주(廣州) 압구정(狎鷗亭)에 하관(下棺)하였다가 공이 졸한 뒤 다시 공을 따라 양성에 안장하였고, 기해년(1659, 현종 즉위년)에 함께 이장해 양주(楊州) 가사평(袈裟坪)의 도정 부군 무덤 왼쪽의 자좌(子坐) 언덕에 합부하였다.
공은 3남 4녀를 두었다. 아들은 판관 여(梠), 빈(彬), 진(榗)이고, 딸은 한준발(韓駿發), 조경위(曺敬瑋), 판관 유현(柳俔), 진사 정만세(鄭晩世)에게 출가하였다. 여의 아들은 세섭(世爕), 생원 세혁(世爀), 세욱(世煜), 승지 세준(世)이고, 빈의 아들은 현감 세희(世熙), 세황(世熀), 세현(世炫), 세미(世美), 세겸(世兼)이고, 진의 아들은 세영(世榮), 세형(世瑩), 세횡(世謍)이다. 한준발의 아들은 상익(相翊), 생원 상규(相揆), 상로(相老)이고, 조경위의 아들은 일흥(一興)이고, 유현의 아들은 세경(世慶)이고, 정만세의 계자(繼子)는 하일(河一)이다. 나머지는 다 기재하지 않는다.
공의 두 형은 모두 일찍 죽어 자식이 없었다. 큰형수 이씨(李氏)는 시부모님이 연로하고 시댁에 형제도 없어, 늘 울며 도정 부군에게 전중(傳重)을 옮겨 공에게 사정(私情)을 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내용이 애절하여 도정 부군이 종족을 모아 허락을 받았고, 병오년(1666)에 부친상을 당하게 되자 공이 결국 대를 잇게 되었다.
공은 어려서 가문이 한창 존귀하고 번성하였지만 과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필체도 정치하였다. 그런데도 끝내 벼슬길에 현달하지 못했으니, 명(命)이 있는 것이다. 집안에 자주 식량이 떨어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생활하였고, 연로해서는 늘 손자들을 어루만지며 놀아주고 웃어주기까지 하였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엄하게 꾸짖었다. 최 부인(崔夫人)은 효성스럽고 순종하여 공경히 남편을 섬겼다. 이제 자손이 많은 것으로는 종족들 중에 으뜸이니, 공은 결국 생전에 받지 못한 보답을 이렇게 누리게 된 것이다.
세준이 가장(家狀)을 구비해 와서 세당에게 묘갈명을 부탁하기에, 삼가 명을 단다. 명은 다음과 같다.

야천의 다섯 아드님 중에 / 冶川五子
도정 부군이 막내인데 / 都正爲季
숙부의 후사로 나갔으니 / 出後諸父
실로 선친의 뜻이라네 / 實自先意
도정 부군의 세 아드님 중 / 都正三子
공이 또 막내인데 / 公又其季
두 형님이 일찍 별세하시어 / 二兄早亡
종통을 잇게 되었네 / 故承宗祀
집안의 가르침 굳게 지켜 / 秉守庭訓
겸손하게 처신하여 / 行己謙謙
선공감 첨정을 지내고 / 乃僉工正
종친부 전첨을 역임했네 / 乃典宗籤
자손이 번성하고 / 以多子孫
장수를 누렸으니 / 妊壽耈
선덕에 대한 하늘의 보답에 / 天之報善
후박을 의심하랴 / 疑薄疑厚
이 빗돌에 명을 새겨 / 載銘玆石
삼가 후인에게 보이노라 / 敬示諸後


[주D-001]임자(任子) : 부형(父兄)의 공으로 관직에 임용되는 것을 말한다.
[주D-002]구 능성(具綾城)의 부인 : 구 능성은 구굉(具宏)으로, 박동위(朴東緯)의 큰누이가 조정(趙玎)에게 출가하였는데, 그 딸이 구굉의 부인이 되었다.
[주D-003]홍제원(弘濟院)의 거사(擧事) : 인조반정(仁祖反正)을 말한다. 반정 당일 장단(長湍)에서는 이서(李曙)의 군사가, 이천(伊川)에서는 이중로(李重老)의 군사가 모여들어 홍제원에서 김류(金瑬)의 군대와 합류, 이괄(李适)을 대장으로 하여 능양군(綾陽君) 즉 인조(仁祖)의 친솔 아래 창의문(彰義門)으로 진군하였다.
[주D-004]야천(冶川) : 박소(朴紹)를 말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DB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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