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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우 
Subject  
   이영희 교수가 쓴 무쇠의 역사 --- 아리영 왕비
[이영희 교수가 쓴 무쇠의 역사] (2)

아리영 왕비

‘알’은 사철<砂鐵>, ‘영’은 연못 의미
소녀 때 살던 ‘사도리’는 고대 제철소 터
서라벌 번성 바탕에는 무쇠가 있기 때문

사진설명 : 신라 도읍 서라벌의 번성했던 모습을 그린 ‘왕경도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이름은 알영(閼英)이다. 아리영(娥利英)이라고도 한다.
이 ‘아리영’이라는 이름을 대중화시킨 데는, 얼마간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 1995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중앙 일간지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는데, 여주인공 이름을 ‘아리영’이라 붙였다.
신라 왕비 아리영 못지않게 소설 속의 아리영도 아름답고 슬기로웠다. 그래서인지 여주인공 아리영은 꽤 인기가 있었다.
하루는 젊은 여성 독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딸을 낳아서 아리영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전화는 한동안 계속됐는데 간혹 아버지가 될 사람이라며 남성이 전화를 걸어 올 때도 있었다.
이 무렵에 태어난 여자 어린이 중에 아리영이라는 이름이 많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 놀랐는데, 최근 인기를 모았던 TV 연속극의 여주인공 이름도 아리영이라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같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 ‘아리영’이란 무엇을 뜻하는 이름일까. 풀이를 하기 전에, 먼저 그녀의 출신부터 살펴야 할 것 같다.
옛 역사책 삼국유사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 대목에서 아리영 왕비의 신기한 탄생 얘기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옛날, 경주 사량리(옛 발음으로는 ‘사도리’)의 알영(또는 아리영)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더니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 아이를 낳았다(혹은, 용이 나타났다가 죽었는데 그 배를 가르고 여자아이를 얻었다고도 한다). 모습이 아주 고왔으나, 입술이 마치 닭의 부리와 같았다. 월성(신라의 왕궁)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떨어졌다.



사진설명 : 신라 부부총에서 출토된 금제 귀고리


아리영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계룡의 딸이었다는 것은 제철왕의 딸이었음을 뜻한다.
용은 ‘왕’을, 계룡은 ‘제철왕’을 상징한다. ‘닭’의 옛말은 ‘달구’인데, 이 말소리는 불을 달군다는 ‘달구’와 통한다. 고대에는 강모래 속에서 사철을 골라 내어 불로 달구어 무쇠를 만들어 냈으므로, ‘달구’라 불린 닭계(鷄)자로 제철을 상징했던 것이다. 그리고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녀가 정실 소생이 아니라 소실 태생임을 알려 준다.
입술이 닭 부리와 같았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사철을 달구어 녹여서 무쇠를 만드는 일을 옛날엔 ‘불그기’ 또는 ‘불리기’라 했다. 요즘도 무쇠 다루는 이를 ‘쇠부리꾼’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리영의 부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쇠불리’의 신분에서 왕비로 승격됐음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녀는 알영 또는 아리영 우물가에서 태어났으므로, 알영 또는 아리영이라 불렸다 한다.
그럼, 알영 또는 아리영이란 무슨 뜻일까.
‘알’은 새나 물고기의 알·달걀·알갱이·사철이나 사금을 가리키는 낱말이었다. 알영 설화에서의 ‘알’은 사철을 뜻한다. 그리고 ‘영’은 연못·샘·우물의 우리 옛말 ‘얼’을 비슷한 소리인 ‘영(英)’이라는 한자로 표기해 놓은 것이다.
또 ‘아리영’은 ‘알영’을 부르기 쉽게 고친 부름새다. 따라서 알영·아리영은 다 같이 ‘사철 연못’을 가리키는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현대 제철도 엄청난 양의 물을 필요로 하지만, 고대 제철이나 대장간 일도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옛 무쇠공장은 반드시 큰 우물가나 물이 샘솟는 연못가에 지어졌다. 이 곳에서, 우선 사철을 걸러 내는 작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제철작업의 총지휘자가 거수, 거세였다는 것은 지난번 글에서 설명했다.
사철을 거르는 연못 ‘알얼’(아리얼) 가에서 태어났다는 아리영은, 이 거수·거세의 소실에게서 태어난 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한 장의 옛 지도 ‘왕경도’가 있다. 신라가 가장 번성했던 무렵의 서라벌(지금의 경주)을 그린 세밀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맘때의 경주에는 17만 8936호의 집이 있었다고 하니, 한 집에 평균 다섯 식구가 살았다 치더라도 자그마치 100만 명이나 된다. 경주시의 현재 인구가 28만 명을 조금 넘을 정도라 하니 그 당시 서라벌은 번성한 고대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부유함의 바탕엔 무쇠가 있었다. 이 지도의 왼편에 흐르고 있는 강은 형산강. 이 형산강과 맞물리는 지도 위쪽의 강이 알천(요즘의 북천)이다. 그리고 알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L자 지역(지도 위쪽 끝) 일대가 옛 야철지 즉, 고대의 제철소 터다.
아리영이 소녀 때 살았다는 사량리가 바로 여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에 사량리는 ‘사도리’라 불렸다고 삼국유사는 밝히고 있는데, ‘사도’란 소도(포스코신문 7월 3일자 14면 ‘박혁거세’편 참조)와 같은 무쇠터라는 뜻의 신라말이다.
형산강도 질 좋은 사철이 많았던 무쇠의 강이었고, 알천, 즉 북천도 사철과 사금이 풍성하게 건져진 보배로운 강이었다. 알천 강가에 왕궁이 세워져 있었고, 역대 신라왕들이 알천에서 군대를 챙기는 사열식을 자주 가졌던 것도, 무쇠와 금의 생산지를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초기의 신라 이름이 ‘무쇠나라’를 뜻하는 사라(斯羅)·사로(斯盧)였던 것을 봐도, 신라가 고대의 무쇠 선진국이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서라벌(徐羅伐)은 ‘무쇠나라 벌판’, 서벌(徐伐)은 ‘무쇠벌’의 뜻이다. 지금의 서울은 이 서벌에서 바뀌어 온 낱말이니, 서울이라는 이름에도 무쇠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는 셈이다. 한강도 일찍이 풍요로운 무쇠의 강이었다.


포스코신문 469호 2003년 7월 9일 예뜨락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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