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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우

Subject

한국의병서 기재사초, 박동량

국방일보 한국의병서
<34>기재사초
壬亂 개전 전후 사초중 유일하게 보존

“이미 밤은 삼경이 되어 대가가 출발하려 했지만 호위군이 갖춰지지 않았다. 병조 정랑 이홍로는 표신을 갖고 주위를 돌아다녔으나 오직 위장 성수익 한 사람뿐이었다.”기재(寄齋) 박동량(1569~1635)의 1592년 4월 30일자 일기의 한 대목이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패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궁궐 경비병력이 모조리 도망가 버려 국왕을 호위할 장수가 위장 성수익 한 명뿐이었다는 내용이다.

“하늘에선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임금은 단지 두서너 명의 내시와 함께 마루방에 앉았는데, 무뢰한들이 대내로 난입해 거리낌없이 보화를 약탈했다. 시녀들은 맨발에다가 옷을 벗고, 눈물을 흘리고 혹은 통곡하면서 궁문을 흩어져 나오니 곡성이 하늘에 사무쳤다.”이어지는 일기는 더욱 서글프다. 일본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궁궐 경비체계가 붕괴돼 도둑이 궁내로 침입, 약탈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이다.

그의 일기는 임진왜란 직전 일본과 통신사를 주고받던 1591년부터 시작해 전쟁이 발발한 1592년으로 이어져 그해 12월 30일 끝난다. 결국 박동량의 일기는 전쟁의 조짐이 보이던 1591년에 시작,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1592년 상황 전체를 담고 있는 셈이다. 특히 박동량의 일기는 사초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박동량은 1591년 당시 검열로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의 임무를 맡았다. 사관들은 평소 사초를 기록해 뒀다가 왕의 사후 실록 편찬 때 제출하도록 돼 있는데 박동량의 일기 중 1591년도 부분이 바로 사초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개전을 전후한 시점의 사초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크다.

1592년 박동량은 사관직에 있지 않았지만 현재로 치면 국방부의 실무 관료에 해당하는 병조 좌랑이었다. 그런 인물이 전쟁을 전후해 쓴 기록인 만큼 그의 일기는 적지 않은 가치가 있다. 시종일관 임금 주변을 지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관을 경험해 본 덕택인지 1592년 일기도 다른 사람의 것보다 내용이 체계적이다.

그의 일기 전체를 기재사초(寄齋史草·사진)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사정들 때문이다.물론 사초라고 해서 다른 기록보다 더 완벽하게 공정한 것은 아니다. 박동량은 서인계통의 인물로 윤두수와는 밀접한 사이였다. 그 탓인지 기재사초에는 누구보다 윤두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정탁 등 동인계통의 인물에 대해서는 혹평을 숨기지 않는다.

이 같은 당파적 편향은 기재사초의 한계라고 할 수 있지만 1591년부터 1592년 무렵 국왕 선조(재위 1567∼1608)를 중심으로 조정에서 중요 안보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대해 어떤 기록보다 체계적이고 방대한 기록을 남긴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선조 재위 무렵 작성된 사초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 때 산실됐기 때문에 선조실록은 개인 기록까지 참조해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선조실록 중에서 임진왜란 개전 초기까지의 기록은 매우 혼란스럽고 내용도 부실하다. 기재사초는 이 같은 전쟁 전후 시기 실록의 부실함을 보완해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국방일보
2008.09.24
김병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