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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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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지향적(過去指向的) 명문집착증(名門執着症)

과거지향적(過去指向的) 명문집착증(名門執着症)

   영어(미국)에 octoroon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8분의 1 흑인”이라는 뜻이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mulatto(2분의 1 흑인)라 하고, mulatto와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quadroon(4분의 1 흑인)이라 하는데 이러한 quadroon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식을 octoroon이라 부른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mulatto, quadroon, octoroon 할 것 없이 모두 흑인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이 분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순수주의를 표방하는 백인들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생각해 보라. “8분의 1 흑인”(octoroon)은 사실상 “8분의 7 백인”이 되는데 이를 흑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를!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지극히 강한 혈통(血統)주의를 고수해 오고 있다. 혈통주의는 가부장적(家父長的) 가족 제도와 결합하여 배타적 가문(家門)을 형성하여 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연유로 자손이 없는 경우, “손을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때 거의 예외 없이 형제나 4촌, 6촌 등의 부계 남아(男兒)중에서 선택한다. 이러한 혈통주의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타성(他姓)을 입양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바탕으로 하는 배타적 혈통주의는 소위 “명문” 집단을 형성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명문”은 대개의 경우 과거 부계 조상들 중에서 벼슬을 많이 한 집단을 일컫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소위 가문과 명문을 형성하는 이 가부장적 혈통 집단은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8분의 1 흑인”(octoroon)의 경우와 별로 다른 것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우리의 명문은 긍정적 시각에서 본 것이지만 미국의 octoroon은 다소 부정적 시각에서 본 것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가부장적 혈통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통계상으로도 어색하고 생물학적으로도 근거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성을 가진 남성과 “을”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이 혼인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하자.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따라 그 아이는 “갑”이라는 성을 갖게 되겠지만 실제로는 “2분의 1 갑”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또 다시 “을”이라는 성을 가진 여성과 혼인하여 자식을 낳게 되면 그의 성은 여전히 “갑”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4분의 1갑”이 된다. 결국 이 3대째 아이는 비록 “갑”이라는 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을” 쪽의 성질을 더 강하게 갖고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갑”에서 수 십 세대가 흐르고 나면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16분의 1 갑”, “32분의 1 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예컨대 홍아무개는 “32분의 1 홍, 32분의 이, 32분의 김, ... ” 등의 혼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대가 내려갈수록 최초의 조상에서부터 혈통상으로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전학적으로 부계 유전보다 모계 유전이 강하다고 하니 최초의 남성 조상에서 혈통상으로 멀어지는 정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에서는 과거 (남성) 조상들이 벼슬한 것을 가지고 우스꽝스러운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참으로 민망한 경우가 많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물론 조상을 기리고 좋은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며 때로는 권장할만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자신의 초라한 행색을 조상 자랑으로 가려 보려는 딱한 행위는 비참하게 보일 뿐이다. 혈통상으로 보나 실용적 입장에서 보나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조상 자랑에 과도하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갈고 닦아 이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세계 인류의 발전을 위해 아주 작은 일이나마 봉사하고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수필10번)
대종중

박찬무

[2007/09/16]

승형 대부님께서 귀중한 글을 올려주시니 천군만마(千軍萬馬) 입니다.대단히 감사합니다.항상 홈페이지 자문위원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환절기 건강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