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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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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박씨집성촌(3) (한겨례신문)
중 이주역사 200년 앞당겨
■발굴 의미는

중국내 박씨 집성촌 ‘발굴’은 황유복(59·사진 왼쪽) 베이징 중앙민족대 교수의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황 교수는 1982년 인구조사 결과 허베이성 칭룽셴에 수백명의 조선족이 있는 것을 알고 현지를 찾았다. 주민들은 조선 민요가 담긴 테이프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조선족이란 민족의식은 살아 있었다. 이들의 증언과 문헌연구 결과 1619년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에 대항하기 위해 명·조선군 연합작전에 참가한 조선 군인의 후손임이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84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1회 세계조선민족대회에 처음 공개됐다.
이후 박창욱(74·오른쪽) 연변대 교수가 연구를 더 진전시켰다. 그는 박씨촌이 칭룽셴외에 랴오닝성 가이셴과 번시셴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86년 연구생 4명과 세 지역을 답사한 결과 모두 1619년 이후 수십년 동안 이주한 조선인의 후손임이 밝혀졌다. 이런 내용은 87년 12월 발행된 <조선족연구논총>(연변대학출판사) 1권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몇해 전에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인가를 받아 <중국통사> 머리말에도 올랐다. 중국내 조선족의 이주 역사가 200년 가량 앞당겨진 셈이다. 그는 “이는 중국의 소수민족(54개) 보호정책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80년대 들어 중국 당국이 호적정리에 나서면서, 좌익사상과 문화혁명(1966~76)에 짓눌려 만·한족으로 신분을 위장했던 조선족에게도 “광명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민족의 틈에서 민족의 고유성을 보존하려면 집거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박씨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족과 만족에 없는 박씨라는 성이 이들을 더욱 뭉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팔기만주씨족통보>에는 청나라 8기군에 소속된 43개 성씨의 조선인이 기록돼 있으나 이 가운데 박씨만이 지금까지 내려온다. 칭룽셴에서는 숨질 때 “우리는 조선인이다”라는 유언을 대대로 남겨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가 방문했을 때 어떤 이는 “한국에 묘지를 사겠다”고 했고 “남북이 한민족인데 왜 통일 못하나”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한겨례신문 2003년1월1일자 베이징/하성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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