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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훤의 성은 李씨 ( 동아일보)
견훤의 성은 李씨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 주말 사극 '태조 왕건'을 이끌어가는 주축 멤버중 한 명이 후백제 시조 견훤(甄萱. 867-936)이다.

그런데 많은 시청자가 견훤이 이름인지, 아니면 견(甄)이 성이고 이름이 훤(萱)인지를 궁금해한다.

답은 견이 성이고 훤이 이름이다. 그런데 원래 성은 이(李)씨였다.

13세기말 고려 문인 이승휴(李承休.1224-1300)가 쓴 「제왕운기」(帝王韻紀)라는 서사시에서 후백제 역사를 읊은 '후백제기'라는 대목을 보면 견훤을 "상주 가은현 사람인데 본시 성은 이(李)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이승휴와 동시대를 산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를 보면 더욱명확해진다.

일연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판단되는 「삼국사」(三國史) '본전'이라는 기록을 인용하면서 "함통(咸通) 8년 정해년(867)에 태어났으며 본성은 이씨였는데 뒤에 견씨라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계속해서 「이제가기」(李啼家記)라는 기록을 끌어다가 견훤의족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가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어떤 책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제라는 사람이 고려 때 실존했던 인물이고 가기(家記)라는 말이 들어간 것으로보아 이제라는 사람의 집안 족보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이 기록에 견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제의 집안이 그 뿌리가 견훤임을 아울러 알 수 있다. 이로써 견훤이 원래 이씨였음은 명백하다.

그런데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를 보면 경천동지할 내용이 들어 있다. 바로 견훤의 족보가 그것인데 아직도 진짜다 가짜다 논쟁이 치열한 「화랑세기」 필사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이제가기」에 따르면 견훤은 그 조상이 신라 제24대 진흥대왕의 비(妃)로서 시호(죽은 뒤에 올린 이름)가 백융부인인 사도(思刀)이다.

사도의 셋째 아들이 구륜공(仇輪公)이고 그 아들이 파진찬 선품(善品)이며 그아들이 각간 작진(酌珍)이다. 이 작진이 왕교파리(王咬巴里)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元善)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이다.

이것이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에 기록된 견훤 족보이다.

이를 쉽게 정리하면 사도→구륜공→선품→작진→원선(아자개)→견훤이 된다.

이 족보에는 틀림없이 몇 명이 탈락했다. 사도 부인 이래 견훤까지는 연대가 무려 300년 가량 차이나는데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내지 못한 견훤의 조상은 세월이흐르면서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나 꽤 많은 수가 탈락했다.

그런데 「화랑세기」 필사본을 보면 선품은 제21세 풍월주(우두머리 화랑)로 등장하는데 진흥왕과 사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구륜이 보화공주를 아내로 맞아 서기609년에 낳은 아들로 기록돼 있다.

선품은 내성(內省)이라는 정부 기구에 들어갔다가 얼마 뒤 예부(禮府)에 올랐으나 인평(仁平) 10년(643) 왕명을 받들어 사신으로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병을 얻어돌아와 35살에 죽은 것으로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선품이 보룡이라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나중에 문무대왕의 비가 되는 자의태후를 낳았는데 문무왕이 즉위하자 자의태후가 아버지를 파진찬에 추증했다고 나오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와 「화랑세기」 필사본은 예사롭지않은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삼국사기」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한국고대사 전공인 전남대 이강래 교수가 주목하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왜 믿을 수밖에 없으며, 왜 한국고대사 최대의 핵폭탄인지 우리는 견훤의 족보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물론 대다수 역사학자들처럼 「화랑세기」 필사본은 20세기 들어와 상당한 역사적 안목을 갖춘 소설가가 꾸며낸 가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필사본 족보 또한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제가기」를 보고 만들어 냈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연합뉴스]

이글은 동아일보에서 퍼온글입니다.
등록 일자 : 2001/03/13(화)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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