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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신비벗는 ‘박혁거세 神宮터’
2천년 신비벗는 ‘박혁거세 神宮터’


8면의 기단부를 뚜렷히 드러낸 팔각건물지, 무너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땅 속에 박혀 있는 담장지의 기와편들. 지난달 27일 현장설명회에서 마주한 경주시 탑동 나정(蘿井) 유적(경향신문 11월26일자 3면 보도)은 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이 보였다. 나정 유구를 보기 위해 모여든 고고학자와 역사연구자들은 비가 뿌리는 날씨에도 유물, 유구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대단한 유적이다” “앞으로 이만한 신라 유적이 발굴되긴 어려울 것 같다.” 백발이 성성한 발굴 지도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경주 나정유적 발굴현장-
◇“나정은 신라 신궁(神宮)터”=지난해 5월 이후 발굴이 진행중인 나정 유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나정이란 무엇이냐’는 유적지의 성격 규명이다. 흔히 나정은 신라의 건국시조 박혁거세의 탄강(誕降)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 알려져 왔다. 이런 연유로 1975년 사적 245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모든 탄생신화가 그렇듯 이곳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증거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화가 역사가 됐고, 그 역사가 기록으로 남았을 뿐이다. 최초의 기록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나정이 경주부 남쪽 7리에 있다(蘿井在府南七里)’고 쓰여있다. 또 박씨 문중에 전해오는 ‘숭덕전사’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들 기록처럼 나정이 현위치인 탑동 700의 1번지라는 것도 정설은 아니다.
일찍이 학계가 나정을 주목한 것은 ‘나을 신궁’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소지왕 9년(487년) 2월에 나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지으니 나을은 시조가 탄생한 곳이다’라고 적었다.
이병도 박사를 비롯, 많은 학자들은 나을을 나정이라고 보았다. 이병도 박사는 ‘奈’와 ‘蘿’가 신라의 ‘나(羅)’처럼 나라를, 나을의 ‘을(乙)’은 우물(井)의 고어인 ‘얼’을 나타낸다고 풀었다. 곧 나을은 ‘나라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나희라 울산대 연구교수도 ‘신라의 국가제사’라는 저서에서 월출산(月出山)이 ‘월나악(月奈岳)’ ‘월생산(月生山)’으로 일컬어졌던 점을 들어 ‘奈’를 ‘나다(生)’ ‘태어나다(産)’로 해석했다. 즉 ‘나을’은 박혁거세의 탄강지인 나정이 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나을을 김씨의 발상지로 보고, 신궁의 위치를 경북 영주지역으로 비정하는 등 이견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나정 유적에서 통일신라대의 팔각건물지와 함께 우물터가 발굴됨으로써 ‘나을=나정’설이 더 힘을 받게 됐다. 남한 지역에서 통일신라 이전의 팔각건물지가 발굴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경기 하남의 이성산성과 이천 설봉산성에서 팔각건물지가 확인됐을 정도다. 이들 팔각건물지는 모두 제사를 지낸 제단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나정의 팔각건물지는 각변의 길이가 8m인 대형인데다 동서·남북 각 60m에 달하는 사각형 담장을 두른 것으로 확인돼 신라의 신궁이었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 발굴단이 팔각지 한 가운데에서 우물지를 찾아냄으로써 나을 신궁에서 시조신인 박혁거세를 제사지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있다. 우물가에 신전을 세워 제사를 올리는 예는 고려시대 개성 대정묘(大井廟)와 일본 고대의 이케가미 소네(池上增根) 신전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발굴단의 김정기 지도위원은 “우물지는 우물이기보다는 나정을 상징하는 샘인 것 같다”면서도 “문헌 기록 등을 종합해 볼 때 나정이 나을 신궁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나정 유적은 고대 건축의 보고”=발굴 현장 설명회장 옆에 전시된 출토유물은 작은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평기와, 귀면와, 연화문 막새, 사자무늬 막새, 무문전(문양 없는 벽돌), 등잔 토기, 당삼채(중국의 채색토기를 말함) 호편, 꽃모양 청자접시편, 백자편 등 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은 나정이 오랫동안 제단으로 사용돼 왔음을 추정케 했다. 많은 수가 발굴된 막새류는 고신라시기의 단판 연화문에서 통일신라기의 사자무늬까지 폭이 매우 커 나정이 고신라 이래 지속적으로 보수·관리됐음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발굴현장에서 수습되지 않은 채 층을 이뤄 쌓여있는 기와들이 눈길을 끌었다. 김동현 지도위원은 “층층이 쌓인 기와들이 시대별로 단층을 이루고 있다”며 “건축물과 담장지의 축조 방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정에서 확인된 유구는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2구, 배수로 등. 현재로선 팔각건물과 담장의 축조 시기가 통일신라에 추정될 뿐 유구의 성격과 편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영화 지도위원은 “고대 건물지의 유구가 이토록 잘 남아 있는 것은 드물다”면서 “발굴기간을 연장해 시간을 갖고 발굴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3년 12월 01일 18:29:43
경향신문 2003년 12월1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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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신비벗는 ‘박혁거세 神宮터’

박찬무
2003/12/25 199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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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정(蘿井)유적

박찬무
2004/01/09 14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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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나정, 탑지 아닌 제사시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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