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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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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潘南朴氏 家史 이야기.(박찬덕)를읽고-부도유사
                 潘南朴氏 家史 이야기
                .(박찬덕씨의 글을 읽고)

  우선 지면으로 인사말씀 드립니다.  저의 명함에 기재된 이외의 자기소개부터 하게됨을 이해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조때 낙향하여 나주에서 터전을 마련한 남곽공파입니다.
따라서 贊德씨와 저하고는 촌수로 따지면 대략 45촌의 처지가 되지 않나 하여 반가운 인사겸 자기 소개를 더 계속합니다, 1928생이며, 55세에 광주종친회회장이되여 전혀 생소한 보
학에 입문하여 족보공부부터 시작하였으나 워낙 기초가 없어 외우면 잊어버리고의 되풀이
입니다,
그러하기에 贊德씨의 춘부장어르신의 가르침에 충실한 환경을 부러워하면서 우리 문중에 이러한 훌륭한 분이 계심에 대단히 반갑기 그지없으며 자랑으로 여기고저합니다.
광주종친회의 회장으로 대종중 당연직 상임유사를 하고있을 적에 합천 야천공묘소 성역화사업이 거론된바있읍니다.
그 당시 執行部案이 冶川公神道碑를 없애버리고 새로이 세운다는안을 제시하여 이를 확정하게 되어있는 처지여서,  혼자 아무리 반대하여 보았자 먹혀 들어가지 않을 상태인 분위기였읍니다.
이를 현지에서 (합천 야천공 제각) 상임유사회를 열고서 최종적인 결정을 한다는데 합의 도출하여 현지에서 신도비를 자세히 관찰 검토하여 보존하기로 결정한 바 있읍니다.  자칫 우리 宗寶 제1호이며 지방 문화재가 없어질 뻔한 중차대한사건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대종중 출입을 삼가든 차에 금년 총회에서 부도유사로 선출되어 이 무거운 책임을 어찌 감당하느냐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다행히 대구지회장 勝垠씨 경북지회장 興陽씨도 잘 도와주고 있읍니다.
  贊德씨의 저술, 반남박씨 家史 이야기를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年齡으로 보아 한글로 변환한, 한문경시를 하기 시작한 시기의 환경에서 어찌 이러한 한문학자요,  보학자요, 향토학자로서 대성하시었음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여기까지에 과정,  문장의 자질, 자료수집, 한문에 造詣, 보학공부에서부터 뿌리찾기연구 끝에 추리에 대해 추적하여 實證하는, 이러한 모-든 것은 열의, 경제적인 뒷받침, 시간과 주어진 여건이 좋아야 이루어진다고 여깁니다. 한마디로 감탄하고 종중 입장에서도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이 책의 제일 큰공은 구세대와 앞으로의 세대의 교량역할을 하여 쉽게 보학에 접근하는데 기여한 점을 사고 싶읍니다.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가에 큰 참고 자료가 됨을 확신하면서 춘당공파 한 종파만의 지침서가 되지 않고 널이 보급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읍니다.
  독후감에서 본인의 몇 가지의견은 우리를 너무나 미화하여 양반,양반이라고하는 점입니다.
여러 사적으로 따져서 대성입니다만 인구수로서는 대성이 아니고(인구 50만 이상이라야) 著 姓에 속하고, 이조시대만 따진다 하여도 여러성씨중 10-20성안에 드는 行勢를 하여온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성씨중 대과급제는 이조만 따진다 하면 춘당공이 서열 3번 (1454년)으로 급제하시었으며 左相을 지내신 恭順公보다 2년을 빨리 합격하신 분으로 기록에 나와있읍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건데 우리 박씨는 이조 중기에서 發福하여 후기에 약진한 성씨임이 나타나있읍니다. (이 반대는 廣州李씨 임) 黑人 小說家의 “아랙스 해일”이 쓴 자기 조상의 뿌리(Root) 라는 소설 마냥, 진실만이 인정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반남박씨 족보는 일반적으로 진실에 가까움을 자타가 인정하는 족보이기에 남이 알아줍니다.  근래에 밀양 박씨의 8대대군에 접목됨을 심히 유감된일로써 시정함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자체가 자기네들의 족보에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 따지면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잘못 판단하였다거나 역사기록에 입증되지 않았다고 나설 사람이없읍니다.  
따라서 이문제의 해답은 앞으로의 사학자는 예전의 어수룩한 시대는 지나 확실한 물증이 있어야만 이 그 확실성을 인정하여주는 검증의 시대로 와 있읍니다.  본 성씨가 부정하는데 그를 자기네의 뿌리에 誤接함은 사적과 기록이 없는데  이의 승부는 뻔합니다.
물증이 없는 주장은 언젠가는 패배하기 마련이고 귀결점은 뻔합니다. 이를 앞당기는 일을 우리가 하여야하는 과제이며 이러한 견지에서 찬덕씨의 저술은 큰 기여를 하였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대종중에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戶長公 이상의 선조는,  不詳으로 우리 宗族에게 주지시킴이 先務라고 여깁니다.  
  우리 조상의 훌륭한 어르신을 역사책에서 많이 거론된 순위로 간추린다면 泳孝, 珪壽, 世采, 趾源, 訔, 尙衷, 泰輔, 世堂, 定陽, 崇質, 箕陽. 明源, 齋純, 泳敎, 弼健, 東亮등으로 나열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특별히 강조하여야 함은 1) 平度公의 호가 조은(釣隱) 인데 여말에서 이조건국시에 세상에서 많이 거론된 삼은(三隱)을 이색(李穡,牧隱), 정몽주(,鄭夢周圃隱), 길재 (吉再, 冶隱)로 만 불리어지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 반박에서는 사은(四隱)이란 말을 어려서 듣든 기억이 있어 우리 6세의 조은, 평도공 (平度公,釣隱)을 더한 사은(四隱)으로하는 운동을 전개함이 타당하다고 여기는데 여러 종중 사학자의 각고의 홍보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여깁니다.
사실 문정공만 하더라도 후손의 번창이 윗대 할아버지의 업적을 빛내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까지 약300년 이상에 걸친 대작업 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주정학(朱程學)은 안유(安裕), 이재현(李齋賢), 이색(李穡), 박상충(朴尙衷),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정도전(鄭道傳),길재(吉再)등으로 진흥되어 가는데 우리 문정공 할아버지께서 정치에 휘말리셔 일찍 돌아가심에 주자학의 선각자의 큰 틀인 중심역할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없지 않나 보여집니다. (숙종(肅宗, 1681년) 文正公의 시호 받으심)..  저는 어디까지나 길재,야은 (吉再,冶隱) 보다 17년 늦게 태어나셨지만 우리 평도공할아버지는 수문관 대제학(修文館 大提學)등을 하시었으며 주자학의 기틀인 유교 부흥과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전력하시었는데, 후자에 무게를 두시었기에 사은(四隱)으로서의 테두리에서 소외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2) 연암 박지원 (燕岩, 朴趾源),   찬덕(贊德)씨는 우리 연암 할아버지를 국소적으로 소개하시었는데 물론 지역적인 安義縣監이란 연고가 있어서 이겠지만, 이 연암선생이 우리 반박을 만고의 대성족(大姓族) 임을 나타내는 어른으로 여깁니다.  유교가 진수이다 는 경지에 들어 계신 찬덕씨는 약간 불만이시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현석공(玄石公)을 훨씬 추월하여 있음이 현실이라고 여깁니다.  참고로 연암의 업적을 간추리면은 저 有名한 文學家요, 思想家요, 先覺者이면서도 諧學的인 지원(趾源, 號 燕岩, 諡號 文度公 1737-1805)은 농촌출신이  아닌 서울 명문 출신이라고 백과사전에 기재되어 있고,  그러나  명문에 비해 不運의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자기 自身의 處地에 대한 반발(反撥)도 있었겠으나 현실에 대한 비타협적인 것만은 사실일 것입니다.
  연 암이 쓰신 虎叱(호질), 閔翁傳(민옹전), 양반전 (兩班傳), 許生傳(허생전) 등은 “선비”를 풍자(諷刺)하여 절대권자인 보수주의에 경종을 울려 줌으로써 당시에는 모험적 용기 (冒險的勇氣) 있는 비평 (批評)인 것이다.
  연암의 학설중 진수(眞髓)인 열하일기 (熱河日記)의 학설골자(學說骨子)는,
1) 문학으로 문장 간소화 문법, 표현의 변화를 실천하고,
2)농업은 중농정책으로 토지개혁, 토지분배, 농기구개량, 농경, 양잠법의개량 ,수리시설에 개    선책  등이고.
3)경제, 산업집약과 국내외 교역확대로 부민강국을 기하여야 한다고 하고.
4)교통운수로확장정비, 교량가설, 차량및 선박은 개량하여 제조, 건조촉진, 화물유통활성책등
5)공업으로는 야금술(冶金術), 도자기(陶磁器)등 기술교육연구와 장려 등
6)교육으론 농, 공, 상(農 工 商)은 “선비” 가 전담 학(學)으로 발전시켜 率先垂範(솔선수범) 하여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證例로써 설파(說破)저술(著述)한 점이다.
  이러한 식견은 연암의 3종형인 명원(明源, 字 晦甫, 錦城尉 忠憘公 1725-1790)이 1780년 중국 고종황제 70수(壽)를 축하하기 위한 正使로 갈 때 연암선생이 따라가 일기 기행문  
형태(形態)로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전술하여 다방면에 걸쳐서 쓰시었는데 심지어 천문학인 면에서 지동설(地動說)까지 논하여져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安義현감, 沔川군수, 襄陽부사를 지낸 것은 일문(一門)의 추천도 있었거니와 어디까지나 식견(識見)에 높은 평가(評價), 학설(學說)이 朱子學의 否定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改善, 進步策으로 主張하여 왔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박희병교수(朴熙秉敎授)는 박종채(朴宗采)가 아버지 연암의 남기신 자취를 모아서 후대에 전하고자 “過庭錄(과정록)을 작성한 책을 변역(飜譯)한 분인데 번역에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음을 문장 여러 군데서 엿 볼 수가 있다. 수고 많이하셨읍니다.
  이 박교수의 번역 발간 서문(책머리에)을 저자에게는 양해 없이 인용합니다.

                      책머리에 (나의 아버지 박지원)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 나라에는 박지원(朴趾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는 중세기 우리 나라 최고의 대문 호다. 아니 중세기만 아니라 근대문학까지 포함시키더라도 박지원을 능가하는 문호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구한말(舊韓末)의 유수한 문장가 김윤신(金允植)은 박지원의 문장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다. 후생(後生)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박지원은 한갓 문장만 신품(神品)이였던 건 아니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그가 대문호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하 생략.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한말 명재상 박규수(朴珪壽)의 아버지임.)
     이러한 위대한 大文豪를 우리종중에 선조임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앞으로 연암 박지원의 재조명이 있을 것으로 여기는데 우리종원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바입니다.
    저는 인조때 우리 선조께서 나주로 낙향하였읍니다. 이는 사람도 동물 마냥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어서  고향으로 가고져하는 본능이 있읍이다.  따라서 우리 선대는 당연히 옛 고향으로 돌아왔읍니다만,  춘당공파, 판광공파, 군수공파의 영남으로 遷鄕(천향)을,    저희들은 항시 궁금하게 여기고 있든 차에 찬덕씨의 끈질긴 노력으로 구명, 선대의 발자취를 확인하니 참으로 춘당공 後裔(후예)라고 감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달인 6월 24일에 영주에서 반남박씨 경북지회총회가 있어 대종중 도유사를 모시고 참석한 적이 있었읍이다. 이 석상에서 귀소본능을 버리고 영남으로 천향한 연유가 대단히 궁금합니다, 더구나 판관공파와 군수공파는 4형제분이 한 분은 서울(司直公)에 두분은 영남(判官公, 郡守公)에 한분(護軍公)은 충청도로 터전을 옮기신 연유가 궁금하다는 말을 한적히 있습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가다 보면 하나 하나 가닥이 잡혀가는데, 이러한 후계자의 출현이 절실히 요구되고 渴求(갈구)되는 심정입니다.
    이러하기에 贊德씨의 저술은 귀중하면서 차세대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한글 위주의 저술이기에 외람 되지만 다시 한번 고마움 인사를 드립니다.
    영국 해군의 英雄 낼손제독이 무찌른 함대는 스페인의 무적함대임
    충무공 이순신을 세계적인 해군영웅(英雄)으로 높이 평가하여 준 분은 일본 해군전사 전문가이면서 군사 평론가임.
이상 독후감을 올리면서 해방후의 한글 독학이라서 여러 곳의 맞춤법의 이상과 사투리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贊德씨와 春塘公파의 발전과 영광을 기원 드립니다.

상기 내용은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이신  "정서" 부도유사님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항상 반남박씨 홈페이지의 발전을 위해 걱정해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정서 부도유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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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가입 했습니다.

박필양
2004/03/24 1458 0
442
   안녕하세요..

박찬범
2004/03/26 1386 0
441
   저도 다시 가입했습니다.

박응서
2004/04/01 1388 0
440
    ~~~~ 반남문중에 저도 딸래임니다.~~~~~

PARK SOON BOON
2004/04/02 2057 0
439
   숙천공파

PARK SOON BOON
2004/04/02 1854 0
438
     [re] 숙천공파

박영우
2004/04/08 1520 0
437
   가입 인사 드립니다! 웹 마스터님 감사~감사

박정우
2004/04/05 1389 0
436
   평도공위 한식 절사 [1]

박민우
2004/04/06 1632 0
435
   가입인사 드려염..^^

박원숙
2004/04/11 1510 0
434
   오세삼장 (5世3壯)을 아십니까 - 부도유사

박찬무
2004/04/13 1835 0

   潘南朴氏 家史 이야기.(박찬덕)를읽고-부도유사

박찬무
2004/04/13 2452 0
432
   반가운 가입인사드립니다. [2]

박승욱
2004/04/15 1391 0
431
   "부계 중심 호주제는 생물학적으로도 모순"

박찬무
2004/04/19 1716 0
430
   박통<무사 기질>+YS<동물적 감각>=노통<'쌍권총'사주>

박찬무
2004/04/19 2319 0
429
   주역의 대가 야산(也山) 이달(李達) : 해방 하루 전 문경(聞慶)<경사스러운 일을 듣는다> 가서 '기쁜 날' 예고

박찬무
2004/04/19 256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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