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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무주 사교 마을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마을
무주 사교 마을  
이 내용은 [ 전라도닷컴 } 에서 퍼온글 입니다
  

▲ 덕유산을 스크린처럼 펼쳐놓고 앉은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사교마을.


ⓒ 심홍섭

무주 구천동 방면으로 달리다 안성면 소재지에서 잠깐 차를 멈추었다. ‘안성면민의 집’이라는 간판이 신선하게 여겨져 가보니 면사무소다. 일반적인 면사무소 건물과는 외양부터 다르다. 권위적이고 딱딱한 관공서 건물이 아니다. 면사무소 안에 목욕탕이 있어 면사무소 직원이 목욕탕 티켓을 끊고 있다.
마을을 소개해 달라 하니 퍼머 머리 할머니가 ‘사교마을’로 가라 한다. 할머니 입에서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마을’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그 마을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스크린처럼 펼쳐진 덕유산이 뽀짝 앞에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마을’인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사교(沙郊)마을은 무주 덕유산이 마을 앞에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다. 밤이면 덕유산 너머 스키장의 불빛이 훤하다는 마을은 덕유산에 품에 안겨 옹기종기 모여 있다. 모내기를 마치고 지금은 좀 한가할 법도 한데 마을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마을회관도 텅 비어 있다. 그렇게 골목을 몇 번 돌아가는데 작은 개울가 천막 안에 마을 사람들 몇이 모여 있다. 마을에 대사(결혼식)가 있는 날이란다. 19가구에 50여 명도 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아침 일찍 관광버스 대절해서 결혼식이 있는 부산으로 가는 바람에 동네가 텅 빈 것이다.


▲ 모종 고구마 순. 이 순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란다.
ⓒ 심홍섭

“그래서 우리가 동네 지키고 있는 중이여!”
전직 부녀회장이라는 아주머니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기 일쑤인데 말은 비단같이 술술 나온다. “다른 동네 같으믄 꼬맹이들 보기 힘들어요. 우리 동네 같이 살기 좋은 동네나 된께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있제.”

왜 ‘가운데 토막’이냐 물으니 윗어른 공경 잘허고, 동네 사람들 서로 우애 있고, 공기 좋고, 길 좋고 그러니 가운데 토막처럼 좋은 동네 아니냐고 오히려 내게 묻는다.
사진 찍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뜬 할머니 한 분이 다시 고구마 넝쿨이 든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모종 고구마 순이었다. 이 순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란다. “옛날이 좋았어. 집안에 사람이 바글바글해야 사는 맛이 나는디, 지금같이 적적흐믄 재미없어 못 살어.”

320년 전에 마을로 입향한 반남박씨들이 대부분인 사교마을. 뒤에 있는 밀개미 골짜기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이 맑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면사무소에 몇 번을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들어설 골프장에 대하여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다. “골프장 들어서면 다 끝나는 거여!”



▲ 소풍 단골 장소였던 도산서원터. 마을과 함께 한 서원이 이웃마을로 옮겨 갈 때 마을 사람들
은 여간 서운하지 않았다 한다.  


ⓒ 심홍섭


절이 된 도산서원, 폐교된 금사초등학교의 추억
왜 사교마을이냐고 물으니까 ‘원천양반’이 잘 아니 그리 가라 한다. ‘원천양반’ 박찬원(82)옹은 마을 유래를 줄줄 입에 단다.
원래 마을명은 ‘억밑에 마을’이었다. 마을 뒤 오도산 언덕 아래에 320년 전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모래가 많은 연못을 메우고 그 위에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땅을 깊이 파면 모래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마을에 물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래땅이기 때문에 물이 잘 빠진다는 것. 마을 이름에 ‘모래 사(沙)’자가 든 이유다.

마을 뒤에 있는 도산서원터. 100여 년 전에 세워졌다는 서원이 1993년 이웃마을로 옮겨갔다. 지금은 일부 건물이 절로 바뀌어 사용되면서 학동들 글 읽는 소리 대신 목탁소리 울리고 있다.
도산서원은 인동 학교들의 소풍 단골 장소였을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학교 소풍날엔 마을 사람들도 모두 소풍을 가서 재미진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마을과 함께 하던 서원이 이웃마을로 옮겨 갈 때 마을 사람들은 여간 서운하지 않았다.
서원에 배향된 인물이 판서를 지냈다는 김종직 후손의 광산김씨 집안 사람이 3명이고 반남박씨 집안 사람이 한 분이었는데 세가 큰 광산김씨 집안에서 광산김씨들이 많이 사는 이웃마을로 이건하여 간 것이다.



▲ 이웃한 사전(沙田)마을로 옮겨간 도산서원.


ⓒ 심홍섭


광산김씨보다 세가 약하고 자손이 미약한 반남박씨 입장에서는 그냥 모른 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집안 사람들이 문중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 문제라며, 문중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박찬원 옹. 날 보고 애가 몇이냐고 묻는다. 딸이 둘이라 하자 꼭 아들 낳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을에 있는 금사초등학교가 1993년 폐교됐을 때 가장 가슴 아팠다는 원천양반. 40년 전 금사초등학교를 세우던 그 무렵은 마을이 한창 발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땅까지 제공하고 너나없이 울력을 해서 학교를 만들었는데 너무 쉽게 폐교를 시켰다 한다. 폐허가 돼 가는 학교만 보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는 그는 교육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같이 가 보시자 하니 손사래를 친다. “그쪽은 가고 잡지도 않어!”



▲ 마을 사람들이 땅 내놓고 너나없이 울력해서 만든 금사초등학교. 폐허가 돼 가는 교정에 여
전히 횃불을 든 채 달리고 있는 소년상이 애잔하다.
ⓒ 심홍섭


ⓒ 심홍섭

"동네 사람들 서로 우애 있고 공기 좋고 길 좋고…"
밀개미 골짜기는 그렇게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만, 마을은 여전히 ‘고등어 가운데 토막’이다. 27년 전에 마을 앞으로 난 신작로 덕분에 마을은 더욱 중요한 교통 중심지로 떠올랐다. 길이 나면서 마을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금사마을에는 마을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기도 하지만 빈집은 거의 없다.

박찬원 옹은 어렸을 때 도원서원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이웃 마을 훈장님이 서원에서 공부를 가르쳤던 것이다. 그때 배운 사서삼경이 지금껏 밑천이 되고 있다. 선대(先代)는 일제강점기에 사범학교를 다닐 정도로 학식이 높았지만, 절대 외지에 나가 배운 거 써먹을 생각하지 말고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라고 했다 한다. 생각하면 자신의 선대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선대의 말대로 박찬원 옹은 군대 갔다 온 것을 빼고는 단 한번도 외지에 나가 산 적이 없다.


▲ 마을 유래를 줄줄이 얘기해 준 ‘원천양반’ 박찬원 옹 부부.
ⓒ 심홍섭

마루에 지팡이 몇 개가 나란히 놓여 있기에 사진을 찍으니, 할아버지가 일어나시더니만 지팡이 하나를 나에게 준다. “명화(명아주)나무로 만든 청려장이여. 가지고 가.” 가볍고 부드러워 지팡이의 대명사인 청려장을 가져가란다.

마을 뒤 지산정(芝山亭)에 오르니 마을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앉았고 멀리 덕유산이 남으로 남으로 내달린다. 마을의 보물이자 결집 매개였던 서원을 빼앗겨 버리고 빈터에는 주춧돌만 남았지만 여전히 사교마을은 ‘고등어 가운데 토막’ 같은 마을이다.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출력  2006-07-07 15:51:57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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