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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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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조선시대의 외교사절,부도유사 丁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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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절단용어(使節團用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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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역사를 읽고 있노라면 외교 사절을 중국과 일본으로 보내고 있다.
여기에서 사절단의 명칭이 여러 가지로 불리 워 진다.  
이 명칭으로 추리하노라면 우리의 선대는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면서 외교적 심려 속에서 국사를 돌보고 나라의 위상을 유지하였는지 짐작케 한다.

   진향사(進香使)
       중국 황실의 국상때 향과 제문을 갖고 간 사신.
  하절사 (賀節使)
     철에 따라 중국으로 선물을 보내는 사절단의 명칭.
   사은사 (謝恩使)
      우리나라 왕, 왕비, 왕모의 생일에 중국으로부터 선물(下賜品,하사품)에 대한 답례 차 보내는 사절단.
   성절사 (聖節使)
      중국에 천자, 왕후, 왕대비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선물을 보내는 사절단.
   주청사 (奏請使)
      우리나라의 국사를 중국에 알리어 동의를 구하기 위한 사절단.
   진하사 (進賀使)
      중국에 경축일을 축하하기로 가는 외교사절단.  
   수신사 (修信使)
      대등외교 또는 약간에 우위 외교로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보내는 외교 사절단.

   이상 외교 사절단의 임무에 따른 명칭을 요약하였는데 우리선대의 외교사절의 정, 부사,서장관을  보첩에서 간추려보면 우리 문중에 흥 쇠(興 衰)에 비례하여 훌륭한 분들의 참여가 많아 짐을 알 수 있다.

  박 은  (朴 訔, 호 釣隱조은, 시호 平度평도)
     1407년에 진향사(進香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참치의정부사 겸 사헌부대사헌에 올랐다.   “사절단使節團: 진향사進香使 한국학 지식: 박은”  좌명공신(佐命功臣)이시고, 좌의정을 하시면서 청빈하였지만 동기간의 우애는 극진하였다.

박 숭질(朴 崇質, 자 仲素중소, 仲嘉중가 시호 恭順공순)
     좌의정 박 은(朴 訔)의 손자이며, 부윤 훤( 府尹 萱)의 아들이다.
     1491년 돈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일 적에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 그 후에 형조판서(刑曹判書), 우의정, 좌의정이 되시었다.

박 승임  (朴 承任,  자 重甫중보. 호 嘯皐소고)
     1569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대사헌을 하셨다.

박 동량 (朴 東亮, 자 子龍자룡, 호 梧窓오창, 寄齋기재. 鳳洲봉주, 시호 忠翼충익)
     병조좌랑(兵曹佐郞)에서 승지,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임명되고  1596년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다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도승지(都承旨)가 됨.  
     오창공은 1569년 생으로 동지사로 임명된 년도가 1595년임으로 28세(歲)에 당당히 임진국란의 와중에 외고사절이란 중책을 수행함은 탁월한 역량이 인정된 분 이였음을 추정된 예라고 봅니다.

박 동망 (朴 東望, 자 子眞자진)
    1615년 성절부사(聖節副使)로 명나라에 가는 도중 안주에서 돌라가심.  영흥부사, 길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박 세당 (朴 世堂, 자 季肯계긍, 호 西溪서계, 시호 文貞문정)
     서포공 동선(西浦公 東善)의 손자, 금주고 정(錦洲公 炡)의 아들, 1667년에 수찬(修撰)을 거쳐 이듬해 이조좌랑(吏曹佐郞)이 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동지사 서장관(冬至使書狀官, 1668년)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박 필성 (朴 弼成, 자 士弘사홍, 호 雪松齋설송재, 시호 孝靖효정)
     도정 태장(都正 泰長)의 아들, 효종의 딸, 숙녕옹주(淑寧翁主)와 결혼하여 금평위(錦平尉)에 봉하여 숙종 때 사은사(謝恩使), 주청사(奏請使)등으로 1685-1717년에 걸처 네번에 걸쳐  청나라에 정사로 다녀왔다.

박 태상  (朴 泰尙, 호 晩休堂만휴당, 시호 文孝문효)
     1689년에 조위사(弔慰使)로 청나라에 가심. 장원급제(壯元及第)하시고, 중시(重試)에도 합격, 이조판서(吏曹判書), 대제학(大提學)을 역임.

박 태손  (朴 泰遜, 자 如吉여길, 호 天休천휴)
     1689년에 하절부사(賀節副使)로 청나라 사신을 하심. 승지 대사헌, 경상도 관찰사역임.

박 필명 (朴 弼明, 자 仲良중량, 호 忍齋인재)
     1701년 동지사(冬至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대사헌을 하심.

박 태항 (朴 泰恒, 호 晦窩회와)
     1704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중국에 다녀오고 판서, 좌참찬(左參贊), 판돈영부사(判敦寧府事)를 역임.

박 사해 (朴 師海, 자 仲涵중함, 호 蒼巖창암)
     길주공 동망(吉州公 東望)후로서 승지(承旨), 교리(校理), 수찬(修撰)을 역임하고 1768년에 대사간(大司諫)이 되고, 1772년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림에도 능했다.

박 명원 (朴 明源, 錦城尉금성위, 호 晩葆堂만보당, 시호 忠僖충희)
    영조의 딸 화평옹주(和平翁主와 결혼, 금성위(錦城尉)가 되고 글씨를 잘 쓰고 학덕이 높다. 1776년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새 차래의 중국 사신으로 임명 되어 사신으로서 많은 공훈을 새웠다. 특히 1780년에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 兼 謝恩使)로 갈 적에 우리 연암 지원(嚥岩 趾源, 시호 文度公)을 수행원으로 사행(使行) 길에 동행(同行)하여 저 유명한 열하일기(熱河日記)가 탄생한 것이다.

박 종악 ( 朴 宗岳, 호 蒼岩창암, 시호 忠憲충헌)
    1792년에 우의정이 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서 1794년 정조 18년에 乾隆皇帝(건융황제)의 진하사(進賀使)와 하절사(賀節使)의 정사로 중국 사신으로 가셔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도중 병환으로 정주(定州)에서 돌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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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종갑 (朴 宗甲, 자 同甫동보, 시호 文貞문정)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임명되었으나 평양감사로 발령하였다고 되어있음.

박 종래 (朴 宗來, 자 喜甫희보, 시호 翼憲익헌)
    1809년에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있으면서 공로가 있어 숭정대부(崇政大夫)에 가자(加資)되고, 동지사(冬至使) 겸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11년 이후에 공조판서 (工曹判書), 판윤(判尹), 좌참찬(左參贊)등 역임(歷任)하였다.

박 종훈 (朴 宗薰, 자 舜可순가, 호 荳溪두계, 시호 文貞문정)
  계미년(癸未年) 1823년에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임명되었다고 되어있음.
    1834년에 우의정이 된 해에 순조가 사망, 순조의 행장(行狀)을 지었고, 이어 고부 겸 주청사(告訃 겸 奏請使)로 중국에 다녀오고, 1837년 좌의정이 됨. 학문에 정통하고, 시문(詩文), 서예(書藝)에 모두 능했다.

박 사정 (朴 師正, 자 時叔시숙)
    1728년 사은사 서장관(謝恩使 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오고 대사헌을 역임하셨는데 금성위 명원(錦城尉 明源)의 아버지로서 관로가 트이는 찰 라에 돌아가심.

박 기수 (朴 綺壽, 자 眉皓미호, 호 履坦齋이탄재, 사호 孝文효문)
   1837년에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그 후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판의금부사   (判義禁府事), 규장각 제학(奎章閣 提學),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역임함.

박 회수 (朴 晦壽, 자 子木자목, 호 壺谷호곡, 시호 肅憲숙헌)
    1833년에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 겸 進香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35년(헌종1년)에 한성판윤(漢城判尹)때에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1840년 년공정사(年貢正使) 사신으로 가고 1845년 우의정, 1849년에는 헌종의 사망으로 고부사(告訃使)로 사행을함. 1859년 좌의정, 영부사(領府事)를 제수되었다.   왕에게는 올 바른 진언, 관규는 확립하고 백성을 잘 보 살펴 신망이 높았다.  글씨에도 능하였다고 함.

박 규수 (朴 珪壽 자 桓卿환경, 瓛卿환경 호 桓齋환재 瓛齋환재, 시호  文翼문익)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걸쳐 1860년(철종 11년)에 열하 부사(熱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 오고 대제학(大提學)과 좌의정 역임.  연암(燕岩) 박 지원 (朴 趾源)의 손자임.
    대제학에 재임 중에 1872년 진하정사(進賀正使)로서 사행시에 서장관에 강문형(姜文馨), 수석역관(首席譯官)에는 오경석(吳慶錫, 한말 개혁파)을 대동하였다.

박 주양 (朴 周陽, 자 文哉문재)
   1875년에 주청사 서장관(奏請使 書狀官)으로 갈 적에 정사 이 유원(李 裕元), 부사 김시연(金 始淵)으로 사행하였는데 1884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시에는 주모자의 처벌을 강력히 주장한 수구파(守舊派)이다.  좌승지를 하심.

박 영효 ( 朴 泳孝, 자 子純자순,호 玄玄居士현현거사, 錦陵尉금능위)
   1882년(고종 19년)에 수신사(修信使)로 일본에 갈 적에 부사 김 만식, 종사관 서광범과 수행원 14명을 대동하였다.  비공식 사절로 민 영익(閔 泳翊), 김 옥균(金 玉均)도 이 수신사 일행과 같이 갔다

  이상 문헌에서 확인한대로 올인 글입니다.  누락된 부분 또는 보완하여야할 점은 여러 분에게 동참을 바라면서 한 걸음, 한 발짝씩 좁혀 나가면서 선대의 기록을 정리하여 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2005년 8월  22일       광주에서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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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  의학박사 丁緖 님께서 보내주신글 입니다.
     항상 홈페이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시고 옳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는
     반남박씨 대종중 부도유사 의학박사 丁緖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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