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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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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효자 박장손(朴長孫)


조선왕조실록속의 , 효자 박장손(朴長孫)

명종 9권, 4년(1549 기유 / 명 가정(嘉靖) 28년) 6월 29일(정묘) 3번째기사
효성이 뛰어난 평양 유학 김보에게 정문과 복호를 명하다

평양(平壤) 유학(幼學) 김보(金寶)는 그의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양(孝養)을 극진히 하고 죽은 뒤에는 복제(服制)를 마치고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아침 저녁의 전(奠)을 거르지 않았으며, 모든 신물(新物)은 반드시 천신(薦新)하고 아침 저녁으로 청소하였으며, 출입할 때는 반드시 여쭈었다. 또 두 대왕(大王)의 국상에는 염장(鹽醬)을 먹지 않은 채 3년 동안 최질(衰絰)을 입었고 아침 저녁으로 전(奠)을 올렸다.

이산(尼山)의 수군(水軍) 박장손(朴長孫)은 어릴 적부터 효성이 남달라서 평소 힘을 다하여 부모를 섬겼고 널리 나물과 과일을 구하여다 심어 두고 철따라 채취하여 입맛을 돋구어 주었으며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었다. 나이 60에 어머니가 죽었는데 3년동안 죽만 마셨고 친히 물을 길어다 제사를 받들었으며, 아버지의 문안을 행여 거를까 염려하여 매번 아침 전을 마친 뒤에는 바로 돌아와 아버지를 뵈었다. 어머니의 복제를 마치고 나서 아버지가 또 죽자 더욱 슬퍼하였고 어머니의 무덤에 합장(合葬)하고 3년동안 몸소 밥을 지어 먹었으며, 복제를 마치고서는 사당을 세워 아침 저녁으로 제전(祭奠)하였다. 또 두 대왕의 국상에도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상이 이들의 충효를 가상히 여겨 정문(旌門)과 복호(復戶)를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9권 62장 B면
【영인본】 19책 652면
【분류】 *인사(人事) / *재정-역(役) / *윤리(倫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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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개티고개 전설

개티[고개]
술골에서 소울로 넘어가는 고개로 효자 박장손(朴長孫)이 소울에서 살때에 좋은 물건이 생기면 개등에 고개라 하여 개티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구치 또는 술고개, 우치 라고도 한다. 실어서 아버지가 사는 술골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개가 넘어 다니던
구치(狗峙)[고개] : 개티 또는 술고개, 우치라고도 하는데 술골 에서 소울로 넘어다는 고개이다.   *참고 : 論山地域의 地名由來(1994년12월25일,논산문화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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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도서(輿地圖書) 이산현(尼山縣) 고적(古跡)편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조선 후기에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책으로 엮은 전국 읍지로 1757년(영조 33)부터 1765년(영조 41)까지 295개의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1개의 진지(鎭誌)에 관한 사항을 묶어 펴냈다.

구치(狗峙)
관아의 동쪽 3리에 있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효자 박장손(朴長孫)의 아버지는 구천 아래 마을에 살고 박정손은 우곡(牛谷)에 살았다고 한다. 때때로 아버지에게 드릴만한 물건을 얻으면, 개의 등에 싣고 오가게 했다. 까닭에 그 산의 이름을 개의 고개라는 뜻으로 구치(狗峙)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이산현(尼山縣) 인물(人物) 효자(孝子)편
박장손(朴長孫)
정문을 세우고 표창했다. 고적(古跡) 항목에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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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곡(牛谷)은 참봉공파 집성촌인 충남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 로 박장손의 효자비는 세월의 무성함속에 오늘도 쓸쓸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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