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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의 역사 반남의 여인

  인성왕후 - 인종 의인왕후 - 선조가순궁 - 정조가순궁동가의절부원군, 돈영부
 
 


◎ 의인왕후 (懿仁王后)
반남박씨 13세손으로 1555년(명종10)에 태어나셔서 1600년(선조33)에 돌아 가셨고 조선 14대 선조의 비(妃)가 되신다.
반성부원군 (潘城府院君) 응순 (應順 1526-1580)의 딸이시다. 1569년(선조2)에 왕비에 책봉(冊封)되시어 가례(嘉禮)를 올렸으며, 1590년(선조23)장성(章聖)이라는 존호(尊號)가 올려졌다.
돌아가신후 1604년(선조37)에 휘열(徽徽),1610년(광해군2)에는 정헌(貞憲)이라는 존호가 더 해졌다. 소생은 없으셨으며,목릉(穆陵)에 계시다.
당시 목릉에는 수직(守直)하기 위하여 별검(종8품)1명과, 참봉(종9품)1명을 두었고,목릉은 현재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옛지명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보통 동구릉 이라 부른다.

선조는(1552년∼1608년 재위는 1567년∼1608년, 초명은 균(釣), 뒤에 공으로 개명하였다.
1552년 11월 11일 한성(漢城) 인달방(仁達坊)에서 출생하였다. 중종의 손자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초(초13)의 셋째아들이고, 어머니는 증영의정(贈領議政) 정세호(鄭世虎)의 딸인 하동부대부인 (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이다.
비는 박응순(朴應順)의 딸 의인왕후(懿仁王后)이다.
명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성장하자 하성군(河城君)에 봉해졌고, 1567년 명종이 후사없이 죽자 즉위하였다. 즉위 초년에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여 매일 강연(講筵)에 나가 경사(經史)를 토론하였고, 밤늦도록 독서에 열중하여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읽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만년에는 특히 《주역》 읽기를 좋아했다.
서화에 뛰어났는데,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이 그것을 알고 선조의 어필(御筆)을 받기를 청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능은 목릉(穆陵),전(殿)은 영모전(永慕殿), 시호는 소경(昭敬)이다.

◎ 동구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자리잡고있는 동구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안장된 9개릉(왕과 왕비 17위)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대의 왕릉으로, 태조 이성계가 1408년 승하하자 영의정부사 하륜의 결정으로 이곳에 능지가 결정된 이후 1885년 추존 문조(수릉)가 안장되기까지 조선왕조 전시기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재는 동쪽의 아홉개 릉이란 의미의 동구릉(東九陵)이지만 과거에는 능의 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이라 불리었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조선왕조 능제의 변화와 5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능 전역에 우거져 있는 숲과 능역을 가로지르는 개울물 등 자연경관이 잘 보전되어 있다.

■ 동구릉(목릉) 제향안내
제향일 : 매년 3월 16일
※ 제향행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02-765-2124~5)에 문의
장소 : 동구릉內 (목릉)
제향왕, 왕비 : 제 14 대 선조 왕
정비 의인왕후 박씨 (반남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 찾아가는 길 ]
버스
- 청량리에서 7-8, 202 → 상봉역 → 구리시 → 동구릉
- 강변역에서 1,1-1, 14,9-2 → 구리시 → 동구릉
승용차
- 서울 → 동서울 → 구리시 → 동구릉
- 서울 → 의정부 → 퇴계원 → 동구릉
- 서울 → 화랑대사거리 → 구리시 → 동구릉
※ 구리시내에서 퇴계원 방향(43번국도)으로 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