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홈페이지:::
 
::: 자랑스런 반박인 :::
본 게시판은 명문대가의 음덕을 이어받아 근. 현대를 힘차고 왕성히 곧게 살아가는 자랑스
런 반남박씨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로그인 한 후 회원이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1
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박영선 국회의원
  
  박영선 (朴映宣)   
             세양(世襄)公派
             1960년 01월 22일

   학력
      1972년 예일초등학교(구:운화 초등학교) 졸업
      1975년 덕성여자중학교 졸업
      1978년 수도여자고등학교 졸업
      1982년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졸업
      1999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경력
      1982년           MBC 입사
      1983년 ~ 2003년  MBC 보도국 기자 / 앵커
      1995년 ~ 1997년  MBC LA 특파원
      1998년           MBC 보도국 국제부 차장
      2003년           MBC 보도국 경제부 부장
      2000년 ~ 2002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2004년           열린우리당 선대위 대변인
      2004년           열린우리당 공보부대표(현)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현)
      2004년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현)


          ■  이인용 MBC전문기자가 본 박영선 국회의원  ■

기자 박영선과 나의 인연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각각 20대 초, 중반의 나이에 MBC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였다.박영선은 처음부터 눈에 띠었다. 커다란 키에 당당한 태도, 거침없어 보이는 언변...
그는 입사 초기부터 승승장구했다.
미처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마감뉴스의 단독 앵커로 발탁된 것이다. 그 때 뉴스의 명칭이 ‘뉴스 데이트’였다. 박영선 앵커의 발탁에 맞춰서 정해진 이름이었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뉴스를 앵커와 대화하듯이 정리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제작진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었다.
어쨌든 앵커에 맞춰서 뉴스의 명칭을 정한 건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례가 될 것이다. MBC의 신선하고도 대담한 선택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불러왔다. 젊지만, 자신만만해 보이는 여성 앵커에게 시선이 집중됐고, 기대는 갈채로 이어졌다.
그 때 나는 주제넘게도 박영선 기자의 앞날을 걱정했다. 저렇게 너무 일찍 스타로 커 버리면, 오히려 단명하는 건 아닐까? 자칫 외화내빈이 돼 버리는 건 아닐까? 아직도 배워야 할 건 많고, 갈 길은 먼데... 그렇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박영선은 타고 난 방송인이었지만, 누구 못지 않은 노력파였다. 스스로를 채우는 일에 잠시도 소홀하지 않았다. 배울 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갔고, 누구든 붙잡았다. 박영선의 이런 자세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나 역시 입사한지 1년 만에 저녁 뉴스의 진행을 맡게 돼, 동병상련(?)의 처지가 됐고, 그래서, 더욱 더 서로를 독려하면서, 기자 생활을 해 나가게 됐다.
박영선은 앵커의 자리를 떠나 있을 때는 취재 기자로서 현장을 누볐다. 문화부 기자로 뛸 때는 영상 매체의 특성을 잘 살린 뉴스 제작으로 ‘감각 있는’ 기자라는 평을 받았고, 경제부 시절에는 열심히 발품을 파는 취재로 특종도 많이 했다.
기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던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거의 매일 새벽 청운동 집 앞을 지키는 박영선 기자의 열성에 감복해서 인터뷰에 응했을 정도였다.
박영선이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한 건 아침 뉴스의 메인 앵커로 복귀했을 때였다. 2시간으로 확대되면서 비중이 훨씬 커진 아침 뉴스에서 박영선은 메인 앵커가 되고, 남자 아나운가 보조 앵커가 되는, 역시 우리 방송 사상 전무후무한 캐스팅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이런 앵커 배치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게 오히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박영선은 이미 어떤 자리에 있어도 그 자리를 넉넉히 감당해 낼만큼 꽉 채워져 있었다.
그 뒤 박영선은 로스엔젤레스 특파원을 거쳤고, 경제 뉴스를 책임지는 경제부장까지 지냈다. 박영선은 이런 자리를 거치면서도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일일이 다 소개하기 못하는 게 아쉽지만,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박영선이 MBC를 떠난 건 MBC 쪽에서 보면 손실이다. MBC는 뛰어난 방송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쉬움을 접기로 했다.
대신 정치인 박영선도 기자 박영선 못지 않게 큰 성취를 이룰 것을 기대한다. 그가 가진 열정과 근면이 정치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리라 믿기 때문이다.

MBC전문기자 이인용

이글은 박영선 국회의원 홈페이지
http://www.pys21.net/index.html          에서 퍼온 글입니다.

박찬일  [2004/10/14]  ::
 매사에 승리토록 기원드리며 끝을 볼수 있도록!!!  
박종서  [2004/09/23]  ::
 진정한 가문의 영광입니다 더욱더 빛내주시길.....  


1
158 11 7

 no 
 subject 
 name 
 date 
 hit 
 vote 
68
   박완서 [호미 예찬]

박태서
2005/04/15 4598 0
67
   박영준 애국지사 (1915-2000)

박찬무
2004/04/19 3702 0
66
   박영우 박현우 한국을 빛낸 과학영재 형제

박태서
2004/08/04 3968 0

   박영선 국회의원 [2]

박찬무
2004/09/01 6724 0
64
   박양우(朴良雨) 문화관광부 차관,부솔공 후

박찬무
2007/11/22 5536 0
63
   박신헌 가톨릭상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박찬무
2009/07/22 4202 0
62
     박신양씨 가계도입니다.

朴勝翊
2004/10/21 6870 0
61
   박신양 장학회

박찬무
2011/09/22 4002 0
60
     박신양 프로필입니다. [3]

朴勝翊
2004/03/31 6898 0
59
   박신양 "약속" 국민배우 [13]

박찬무
2003/11/01 8116 0
58
   박승희 인천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박선우
2005/02/23 4150 0
57
   박승희 1920년대 연극운동 토월회(土月會)

박찬무
2006/03/17 4379 0
56
   박승철 독립운동가 前남선전기 사장

박찬무
2006/05/28 4773 0
55
   박승진 연극인 - 박진 (1905-1974)

박찬무
2004/04/19 3661 0
54
   박승빈 국어학자, 조선어학 간행

박찬무
2005/12/07 4374 0
[1][2][3][4][5][6] 7 [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