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남박씨 홈페이지:::
 
::: 자랑스런 반박인 :::
본 게시판은 명문대가의 음덕을 이어받아 근. 현대를 힘차고 왕성히 곧게 살아가는 자랑스
런 반남박씨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로그인 한 후 회원이면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0
Name  
   박찬무 
Homepage  
   http://www.bannampark.org
Subject  
   박승빈 국어학자, 조선어학 간행
학범(學凡) 박승빈(朴勝彬)
조선어학 간행한 법률가.국어학자.교육자

박승빈(朴勝彬1880 ~ 1943) 법률가, 교육자, 국어연구가. 호는 학범(學凡)이며, 반남박씨(潘南朴氏) 야천자손 활당공(活塘公)의 후손으로 증조는 위수(渭壽 1800~1862)이고, 조부는 제호(齊浩 1821~1872)이며, 아버지 경양(景陽 1843~1924)과 어머니 강릉김씨(江陵金氏)사이에서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울 1991年”의 저자(著者) 박찬웅(朴贊雄)님의 조부(祖父) 이다..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중앙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돌아와서 법관으로 활약하다가 191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며, 1925년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법률가로서는 한국인 변호사만으로 된 경성제2변호사회 창립에 참여한 것과 조선변호사협회 대표로 중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것이 알려져 있다.
같은 기간에 신생활운동에도 참여하여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의 조직과 잡지 《계명 啓明》의 발간에도 힘썼다. 보성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하여서는 당시 운영난에 봉착하였던 그 학교를 유지, 운영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가 국어연구에 뜻을 두게 된 직접적 동기는 법률가로서 법전(法典)편찬을 기획하면서 국어표기법의 통일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된 데에 있었다고 전한다. 주위의 대세가 자신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역경 속에서였지만, 자신의 소신을 끈질기게 주장하며 시류에 맞섰던 의지와 집념의 인간이었다. 보성전문학교 교장으로 재임하였던 기간 및 그 이후의 여러 해에 걸쳐 보성전문학교와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조선어학’을 강의하며 사회의 동조를 구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당시의 강의내용을 정리한 것이 1931년의 『조선어학강의요지 朝鮮語學講義要旨』이고, 이를 보완, 확대한 것이 1935년의『조선어학 朝鮮語學』이다.
1931년에는 동지를 규합하여『조선어학연구회(朝鮮語學硏究會)』를 조직하고 그 기관지로서 《정음 正音》을 격월간으로 발행하였는데(1934∼1941), 그가 쓴 한글 관계의 크고 작은 논설들과 함께 이 모든 노력은 『조선어학회』와 거기에서 사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어표기법에 대한 그의 사고는 《조선어학》에 서술된 것을 통하여 판단할 수 있거니와, 구체적으로는 1936년에 나온 〈조선어학회 사정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대한 비판〉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그의 생각은 역사주의와 편의주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연구이론은 복잡한 것이 될 수 있지만, 일반대중이 사용할 정서법은 간편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한 민족의 언어나 표기법은 역사적 지속체여야 한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하여, 복잡하며 혁신적인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사회의 동조를 얻지 못한 채 실의 속에서 1943년 10월 30일 타계하였다.
박승빈(朴勝彬)은 조선어학을 강의하고 당시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1931년 『조선어학강의요지』를 발표하고 1935년 이를 보안하고 확대하여 『조선어학』을 간행한다. 이 조선어학은 결론(結論), 음리(音理) 및 기사법(記寫法), 문법의 삼편으로 나뉘어져 있고 결론과 제-편의 음리(音理) 및 기사기법(記寫記法)은 전혀 바른 표기를 위한 이론을 전개 시킨 것으로 보아 아직도 전기前期)의 문법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승빈(朴勝彬)의 저서
조선어학강의요지 - 박승빈 - 보성전문학교 - 1931(초판)
조선어학 - 박승빈 - 조선어학연구회 - 1935(초판)
조선어학(영인본) - 박승빈 - 조선어학연구회 - 1935(1972년 영인됨)
간이조선어문법 - 박승빈 - 조선어학연구회 - 1937(초판)
훈민정음(원본사진판) - 조선어학연구회 - 1932(초판)
정음 창간호~15호(15책 합철) - 조선어학연구회 - 1934~1936

조선어학연구회(朝鮮語學硏究會)
조선어학연구회(朝鮮語學硏究會)는 국문 기사법(記寫法)에 대하여 박승빈(朴勝彬) 학설을 따르는 인사들에 의해 1931년 12월 10일 창립되었다. 1933년 10월 29일 조선어학회의「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확정 발표되자 한글 표기법 통일안에 대한 박승빈 학설의 차이에서 대립되어 그 반대운동을 펴려는 데서 조직된 것이다. 그리하여 1934년 2월 15일자로 기관지『정음(正音)』을 격월제로 간행하면서 학리(學理)를 보급하고 조선어학회측의 맞춤법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를 밝혀내기 시작하였다. 한편 6월 22일에는「조선문기사정리기성회(朝鮮文記寫整理期成會)」를 조직하고 7월에는「한글 맞춤법 통일안 반대성명서」를 발표하여 조선어학회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이때 박승빈이 주장한 철자법은 1912년 조선총독부에서 정한 보통학교 언문철자법과 유사한 점이 많으나 특이한 점은 사이「ㅅ」대신에 부호로서 촉음(促音)을 표시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어학회안이 표의주의(表意主義)인데 반하여 조선어학연구회안은 표음주의(表音主義)의 성격이요 전자가 진보적인데 반하여 후자는 보수적이었다.
이런 속에서 조선어학연구회는 조선어학회의「한글 맞춤법 통일안」반대 운동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기관지『정음』은 꾸준히 간행하여 1941년 4월 26일자 제37호로 강제 폐간될 때까지 약 10년간 일제에 항거하여 국어연구의 연구기반 조성에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비록 간행되지는 못했지만 일제초기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 권덕규. 이규영(李奎榮) 등이 편찬하기 시작한『조선어사전』의 원고를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를 거쳐 조선어학연구회가 인수하여 계속한 점 등은 민족문화의 수호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민족항쟁사에 큰 의의를 지닌 것이다.





0
158 11 7

 no 
 subject 
 name 
 date 
 hit 
 vote 
68
   박완서 [호미 예찬]

박태서
2005/04/15 4600 0
67
   박영준 애국지사 (1915-2000)

박찬무
2004/04/19 3703 0
66
   박영우 박현우 한국을 빛낸 과학영재 형제

박태서
2004/08/04 3969 0
65
   박영선 국회의원 [2]

박찬무
2004/09/01 6728 0
64
   박양우(朴良雨) 문화관광부 차관,부솔공 후

박찬무
2007/11/22 5539 0
63
   박신헌 가톨릭상지대학 교수 문학평론가

박찬무
2009/07/22 4208 0
62
     박신양씨 가계도입니다.

朴勝翊
2004/10/21 6872 0
61
   박신양 장학회

박찬무
2011/09/22 4004 0
60
     박신양 프로필입니다. [3]

朴勝翊
2004/03/31 6900 0
59
   박신양 "약속" 국민배우 [13]

박찬무
2003/11/01 8116 0
58
   박승희 인천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박선우
2005/02/23 4151 0
57
   박승희 1920년대 연극운동 토월회(土月會)

박찬무
2006/03/17 4382 0
56
   박승철 독립운동가 前남선전기 사장

박찬무
2006/05/28 4776 0
55
   박승진 연극인 - 박진 (1905-1974)

박찬무
2004/04/19 3664 0

   박승빈 국어학자, 조선어학 간행

박찬무
2005/12/07 4375 0
[1][2][3][4][5][6] 7 [8][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