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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혼 樓亭 .37]
경남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와룡정
영남일보 김신곤기자 2007-03-20
지리산 주변 5개 행정구역 가운데 하늘까지 닿은듯이 우뚝한 지리산 천왕봉의 기상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산청군이다.
산청은 옛 지명이 산음(山陰)이다. 산음은 중국 회계산(會稽山)의 산음(山陰)과 이름이 같고, 산수는 회계산 산음보다 훨씬 수려하다.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 하듯이 산자수명한 산청에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마을에는 조선중기 포의고사(布衣高士: 벼슬은 하지 않았지만 고명한 삶을 산 선비)로 일관했던 걸출한 인물, 용호(龍湖) 박문영(朴文 )(1570~1623)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두 손자인 상규(尙圭)와 숭규(崇圭)가 세운 와룡정(臥龍亭)이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와룡정은 불의와 타협 않은 선비정신의 상징
교남누정지(嶠南縷亭誌) 등에는 용호가 직접 와룡정을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와룡정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현종(顯宗) 10년(1669) 가을, 당시 성균관 생원이던 용호의 손자 상규와 숭규가 조부의 정신을 추모하여 조부가 거처하던 초당 옆에 정자를 지었다.
이들 손자는 용호의 호숫가에 와룡(臥龍)이라는 암반이름을 따서 정자를 와룡정이라 이름 하였다. 그 후 28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본래의 와룡정은 퇴락하여 무너지고 문중에서 힘을 모아 1960년경 다시 중건한 것이 오늘날의 정자 모습이다.
근세의 대유(大儒)였던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이 지은 와룡정 중건기문(重建記文)을 반복하여 감상하여 보면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중략)… 진실로 사람과 땅이 서로 걸맞지 않아 강산의 소중함이 되기에 충분치 못하다면 허명(虛名)일 따름이고, 비록 그 땅이 있고 그 사람이 있다하여도 진실로 폐허가 되어 수리되지 못하고 민멸(泯滅)되어 드러나지 못한다면 황폐한 유허지일 뿐이다.
그런데 훌륭한 땅에 그 사람을 얻었고, 후세의 사람들 또한 그곳을 위하여 증축하고 수선하여 드러나며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그 성망(聲望)과 여운(餘韻)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어찌 그 땅의 다행한 일이고 더욱 강산의 소중함이 아닐까(…苟人與地之不相稱, 而不足爲江山重, 則虛名焉而已. 雖有其地有其人, 而苟廢焉而不修, 泯焉而不闡, 則荒墟焉而已, 若夫地得其人, 而後之人, 又爲之增修之而闡發之, 愈久而不墜其聲韻者, 豈非其地之幸而爲江山增重者耶.)'라고 하였다.
이어 중건기문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용호는 한강(寒岡)의 제자로 의리가 분명하고 뜻을 지킴이 독실하였다. 정인홍의 부당한 처사를 꾸짖었고 동계를 구원하는 일에 선두로 나섰으며, 오사호(吳思湖)의 널을 반장(返葬)하는데 성력(誠力)을 다하였으니 그의 고풍(高風)과 청절(淸節)이 늠연하여 무너진 세파(世波)에 하나의 중류지주(中流砥柱)와 같았다.
강산의 맑은 기운이 모여 그의 정신과 기개를 일으킴이 있어서 그러하리라. 백세의 후에도 와룡정의 구역에 나아가 그 정신을 구하여 보고 오히려 그 사람됨을 상상하여 본다면, 이 와룡정이 진실로 용호공의 어렴풋한 영상(影像)이라 할 것이다. 어찌 그의 은둔처였을 뿐이겠는가…. 옛날 중국 한나라 때 엄자릉(嚴子陵)이 광무제(光武帝)가 불러도 나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 동강(桐江)에서 낚시하며 여생을 보냈던 조대(釣臺)와 동진(東晋)시대에 도연명(陶淵明)이 남조송나라에서 불러도 벼슬하러 나가지 않고 전원에서 시 쓰며, 술 취하면 누워 쉬었던 취석(醉石)은 평범한 곳에 불과했지만 훗날 주자(朱子)가 그곳에 시를 읊어 노래한 것이 천추(千秋)동안 전송함은 바로 그 사람 때문이었다. 와룡정 역시 그 조대와 취석처럼 영원하리라.'
# 호숫가에 초당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
용호 박문영은 사옹원(司饔院) 직장(直長)을 지낸 박행(朴荇)의 아들로 태어났다. 총명한 자질로 외가의 참봉 추담(秋潭) 노사계에게 글을 배워 문예가 성취되었다. 훗날 한강(寒岡) 정구, 동강(東岡) 김우옹 양 선생에게 나아가 성리(性理) 철학을 깊이 연마하였고 생원(生員)시험에 합격하여 당시 성균관 동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당시 광해조에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자 벼슬을 단념하였다. 그러나 성균관 생원들이 적극 벼슬을 권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낙향하였다.
광해조에는 특히 간흉들이 들끓는 때였지만 용호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간하는 상소를 하였다.
동계(桐溪) 정온은 영창대군의 죽음에 대하여 광해군에게 상소하였고, 정항을 참수하라고 주장하다가 10년간 대정(大靜)에서 귀양생활을 하였다. 용호는 그러한 동계를 신원(伸寃)하라는 연명 상소를 제일 먼저 주창한 인물이었다. 이같이 목숨을 건 상소로 인해 조정과 재야에서 용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초연히 낙향하여 성현의 글을 읽으며 훗날을 기약하였다.
향리에서 돌아와서는 고을 수령을 지낸 청백리 김대현(金大賢)의 초상(初喪)에 자신의 옷을 벗어 염을 하도록 하고 장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또한 정언(正言)벼슬을 한 오사호(吳思湖)가 죽어 천리 밖에서 반장(返葬)해 오는 것을 성력(誠力)을 다해 도울 정도로 교제의 우의가 남달랐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위의 중건기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후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세상이 더욱 어지러워지자 경호강의 산수를 사랑하여 용호(龍湖)라는 호숫가에 초당을 짓고 자연에 의탁하여 세상을 잊었고 용호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초당에서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산의 무겁고 변치 않는 기상을 닮고자 하였고 아래로 경호강 물을 굽어보면서 도(道)의 본체가 두루 흘러 막힘이 없는 이치를 깨달아 사물밖에 초연히 노닐고자 하였다. 참다운 인(仁)과 지(智)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의 이 같이 고결한 표상과 아취를 어찌 범상한 류에 견줄 수 있겠는가. 인조가 등극하여 어지러운 세상이 조금씩 정화되기 시작하였고 용호를 벼슬에 천거하는 추천서가 연이어 올라갔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벼슬길에 나아가 바른 정사를 한번 펼쳐 보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행히도 용호는 53세 때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당시 선비들은 그를 안타깝게 여겨 매우 슬퍼하였다. 용호의 저서는 용호문집 2책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와룡정은 현재 용호의 15세 주손되는 박인선옹(74)이 정성을 다하여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혼 樓亭 .37]
경남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와룡정
영남일보 김신곤기자 200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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