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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간호윤 
Homepage  
   http://kan771.kll.co.kr/
Subject  
   간호윤,『개를 키우지 마라』,경인문화, 2005.

간호윤이라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고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연암 선생을 꽤나 좋아하여 그분에 대한 글을 주제넘게도 썼습니다.
지나가다 이러한 곳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회원 가입을 하고 몇 자 적고 부끄럽지만 제 책의 서문을 올리고자 합니다.
책의 제목은 ‘개를 키우지 마라’이고 부제는 '연암소설 산책-고소설비평 시론'입니다.
1부는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의 󰡔과정록󰡕을 통해 연암의 인간됨을 들여다보았으며, 2부와 3부는 연암의 초기와 중기, 후기에 지어진 소설 12편을 모두 살핀 글들입니다. 4부는 연암의 문학 이론이 잘 나타나 있는 기(記), 서(序), 서(書), 인(引) 등을 중심으로 그의 사유의 지향을 좇아가 글쓰기 방법론 겸 소설론을 살폈고 마지막 5부는 연암의 평생도, 연암관계 인물들,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고소설 비평 용어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책의 서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며칠째 장맛비가 내린다.
훗훗한 방속, 눅진 책향冊香이 비릿한 비내음과 함께 느긋이 파고든다.
내가 이런 날을 좋아하듯 연암을 좋아하는 것도 순전히 이기利己이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중 한 자리는 연암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내의 전략적인 글쓰기와 재주도 좋지만 한계성을 지닌 유자儒者로서 제 스스로 몸을 낮출 줄 아는 인간이기에 더욱 좋다. 억지 밖에 없는 세상에 칼 같은 비유를 든 뼈진 말도 좋지만 스스로 삶 법을 빠듯하게 꾸리는 정갈한 삶의 긴장이 더 좋다. 연암의 붓끝에 완전한 사람이 없는[燕巖筆下無完人] 직필直筆도 좋지만 남루한 삶까지 원융무애[圓融無礙, 원만하여 막힘이 없음] 하려는 순수성純粹性이 좋고 조국 조선을 사랑한 것이 좋고 그의 삶과 작품이 각 따로가 아니라는 점이 더 좋고 소설을 몸으로 삼아 갈피갈피 낮은 백성들의 삶을 그려낸 것이 더더욱 좋다.
이것이 내가 ‘개를 키우지 마라’라는 문패를 단 이유이다. 문패의 단면에는 역관, 분뇨수거인, 걸인, 몰락 양반 등을 감싸 안은 그의 따뜻한 마음자리와 정의의 실종에 대한 올곧은 외침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개를 키우지 마라’는 ‘정情을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오늘날 견犬들은 가족 구성원에 새로운 정서적인 변화를 주며 반려동물伴侶動物, companion animal이라는 격상된 명칭으로 부르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전語典에 ‘애완견愛玩犬’이라는 명사조차 등재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계층階層이 지배하는 조선,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별스런 개와 주고받은 푼푼한 정을 기문奇聞인 양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내 관심의 그물을 묵직하니 잡고 있는 연암의 은유이다.
연암의 글 자체가 문학사요, 사상사가 된 지금, 나는 이것이 그의 삶의 동선動線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억압과 모순의 시대에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하였던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중, 몇이 저 개에게 곁을 주고 정을 주고받았나? 나는 연암이 켜켜이 재어놓은 언어들 중, 저 말로 그의 소설을 따라가는 출발점을 삼으려 한다.
‘연암소설燕岩小說 산책散策-고소설비평古小說批評 시론試論’이란, 연암소설을 기웃거리되 내 전공인 고소설비평어를 넣어 말 그대로 ‘시론적試論的’으로 살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소설비평에 대한 인식이 없기에 책의 뒤에 ‘이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고소설비평 용어들’이란 장을 따로 마련하였다. 자득지학自得之學까지는 모르지만, 결례缺禮가 아니라면 이방의 외피外皮만을 추수追隨하는 의양지학依樣之學은 아니 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또 말결에 듬성듬성 내가 공부하며 느낀 신변잡사身邊雜事를 취언醉言처럼 곁들였음도 밝혀둔다.
연암 당대 조선의 지배이념인 유학儒學, 다시 말하면 성리학性理學은 이미 400여 살이 다 되는 노회한 노인이었다. 연암은 글쓰기를 업業으로 삼고 유학에 붙은 저승꽃을 하나씩 떼어 냈다. 적당히 비겁하면 살아가는데 문제없는 화주현벌華冑顯閥임에도 정박을 마다하고 풍파에 몸을 맡겼으니 그의 글들은 결코 현학적으로 가볍게 던지는 방담放談도 일락逸樂도 아니다.
연암의 소설은 그렇게 저들의 소란스런 반향反響을 감내하고 쓴 글들이다. 더욱이 연암의 언행言行은 각 노는 적이 없으니 그의 소설에 보이는 이른바 상쾌한 우수憂愁, 시원한 역설逆說, 따뜻한 인간성人間性은 그의 삶이자 조선의 풍광이요, 진단서요, 처방전으로 읽고 싶다.
석사논문을 쓴답시고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찾았을 때였다.
선생님께서는 내 푼수를 푼푼히 여기지 않으시던 터라, “그래 자네 아는 사람이 누군가?”하고 물으셨다. 나는 생각도 없이 냉큼 “연암 박지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유인즉, 고전문학이야 내 성정으로 미루어 일찌감치 전공으로 택한 터였고 연암은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하면서 괜찮은, 조선의 소설가였기 때문이었다.
연암을 처음 만난 것이 그러니까 대학교 3학년의 꼬마둥이 국문학도 시절이었으니, 제대로 글눈조차 뜨지 못한  때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되게 그 이가 좋았던지 졸업논문으로 연암소설에 관한 글을 괴발개발 썼다. 연암이 누군지도 모르는 착시현상에서 졸업을 위한 요식 행위로 두어 권 연암에 관한 논문을 선집한 책을 놓고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딱히 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의 가소로움이 얼마나 크셨는지는 후일 알았다. 혼쭐났다.
각설하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그만 연암이라는 중세의 사내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나는 연암을 알려고 코를 들이대고는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그의 글을 품 속에 안고는 몇 날 며칠 잠도 청해 보았으나 모두 도로였다. 나는 좀처럼 그의 글 문간조차 들어서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 속의 글들은 저러 이러한 일과 생각들이 모아진 것인데, 꼭 서두에 적바림해두고 싶은 것은 세월에 따라 연암소설이 다르게 보였다는 사실이다.
200여 년 저 너머, 적당한 실어증失語症에 걸린 사람들이 꽤 많던 시대였다. 그 시공간으로 들어가 잔뜩 낀 조선후기의 해무海霧를 헤치며 성성하게 걸어간 연암의 뒤를 발맘발맘 좇아가 보려 하였다.
연암이 마음을 도슬러 잡고 먹을 갈아 묵향墨香 속에 넣어 둔 뜻을 세세히 그려내지 못했기에, 이 작은 책자를 강호에 내놓으며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애초부터 연암소설의 전개도를 다 그리려 작정한 것도 내 안투지배眼透紙背나 감식鑑識의 남다름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연암이라는 사내가 좋아 쓴 글이니, 심안心眼이 비좁아 천한 대로 내 놓고 내 깜냥만큼만 깁고 다듬는다는 약속을 제현께 드린다.
고마움을 표시할 분들이 여간 많지 않기에 일일이 적지 못한다. 찾아뵙고 이 책으로 저간의 문안을 여쭈어 섭섭함을 덜고자 한다. 끝으로 비다듬어 고운 책으로 만들어 준 한정희 사장님과 신학태 실장님, 그리고 경인 식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특히 백공천창百孔千瘡인 교정지를 웃음으로 대해 준 박선주님께 거듭 고마움을 전하고 위로 드린다.

2005. 8. 휴휴헌休休軒에서.
간호윤

아래는 『개를 키우지 마라』의 2 장인 "나는 기억력이 아주 나쁘다."입니다.
제 학부 졸업 논문이 ‘연암 박지원 연구’였으니 20여 년이 넘도록 그를 본 셈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의 옷섶 한 자락도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참 보암보암 여간 아닌 분입니다.


"나는 기억력이 아주 나쁘다."
여담 같은 이야기련만, 연암의 말이기에 나 같은 행내기로서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연암 선생께는 송구하지만 저 말 한 마디가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연암 선생의 기재奇才를 알기에 저 말을 곧이 믿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내가 연암을 계속 공부해 가도록 붙잡아 주는 든든한 손임에는 분명하다.
언젠가 나는 󰡔과정록󰡕에 보이는 이 부분을 보고는 내심으로 반색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독자들이 궁금할 테니 막 바로 인용문을 보자.

아버지께서는 책을 보시는 것이 몹시 더뎌 하루 종일 한 권도 못 보셨다. 늘 말씀하시기를 “나는 기억력이 천성적으로 아주 나빠 늘 책을 보다 덮는 즉시 잊어버리니 머릿속이 멍한 게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단 말이야. …”
先君看書甚遲 日不過一卷書 常曰 吾記性甚短 每看書掩卷卽忘 胸中茫然 若無一字 …1)

“에이, 그게 겸사謙辭란 것 아니요!”라고 말하는 독자를 위하여 바특하지만 증거를 하나 더 대겠다.
아래 글은 연암의 처남 지계공芝溪公 이재성李在誠, 1751~18091)이 한 말이다.

지계공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연암은 책을 보는 것이 매우 더디셨지. 내가 서너 장을 읽을 때에 겨우 한 장을 읽을 뿐이고, 또 기억하여 외우는 재주도 나보다 좀 떨어지셨어.
芝溪公嘗言 燕岩看書甚遲 我下三四板之頃 僅下一板 且其記誦之才 若差遜於我1)

매형인 연암이 미워서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험담이야 했겠는가. 어쨌든 처남과 자신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온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기억력이 나쁘고 책 읽는 속도가 더딘’ 연암 선생의 글이 이런 경지에 다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지는 짐작이 간다.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이 지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이 있다. ‘재언才彦’이란 재주꾼이라는 소리이니 조선시대의 재주 있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으로 이해하면 됨직하다. 이 책에 연암은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박지원은 자가 미중이요, 호는 연암으로 참판 박사유1)의 아들이다. 그의 글은 재기가 넘치고 수사와 착상이 뛰어나 한번 붓을 들었다하면 잠깐 사이에 천 여 행이 도도히 흘러 나왔다. 그의 <허생전>과 󰡔열하일기󰡕는 때때로 사람의 턱이 빠질 정도로 웃게 만든다. … 󰡔열하일기󰡕 5권을 짓고 5권을 증보하였는데 글을 아주 거침없이 휘갈겨서 자못 연의소설演義小說(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허구적인 내용을 덧붙여 흥미 본위로 쓴, 중국의 통속 소설. <삼국지연의>, <초한연의>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의 말투를 지녀 서을 도성에서 칭찬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朴趾源 字美仲 號燕巖 參判師愈之子 文溢才氣 藻思多才 一筆俄頃 天行滔滔 其許生傳 熱河日記 往往解人頤 … 著熱河日記五卷 後增五卷 多舞文 頗有演義口氣 膾炙都城1)

이런 연암을 통해 타고난 재주꾼도 있지만 저처럼 노력을 더하여 재주꾼이 되는 경우도 있음을 확연히 보게 된다.
재주란 자고로 자랑할 것은 못 되는 성싶다.
공부를 하다 보니 재승박덕(才勝薄德, 재주는 있으나 덕이 없음)인 분들을 의외로 두두룩히 보았다. 그 분들이 말씀하는 것을 들을라치면, 연방 쓴 입맛만 다시다가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거만한 어품語品에 더 듣다가는 정말 ‘천탈관이득일점天脫冠而得一點 내실매이횡일대乃失枚而橫一帶!’라고 속으로 욕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궁중 수라간을 배경으로 하여 얼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대장금>의 대사 한 토막에도 이러한 재주에 대한 대화가 있으니 들어보자.

한상궁, 백성들이 곰탕을 먹는 이유는 좋은 고기와 뼈를 먹을 수 없기에 잡뼈로 우리고 또 우리어 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빼내 맛에서나 몸에나 좋은 것을 먹기 위함이다. 헌데 너는 오로지 이기겠다는 마음에 음식을 하는 기본자세도 다 팽개치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좋은 머리로 편법이나 생각해낸 것이 아니더냐! 내 일찍이 네가 숯을 생각해내고 광천수를 생각해내 냉국수를 만들고 어선御膳(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이르던 말)경연에서 숭채菘菜(배추만두)를 만들어내는 재기를 높이 사 너에게 맛을 그리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 재기才氣가 너에게 오히려 독毒이 돼버렸구나!

한상궁이 재주를 믿는 장금에게 ‘재기才氣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세상의 순리를 따끔히 이르는 말이다.
한상궁의 말로 연암의 기억력 운운을 되짚어 본다면, 연암은 자신의 재주를 경계해서였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고 좀스런 소기小技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결의다짐이라고 해도 무난하다. 사실 당시에 연암의 한문소설이나 글들에서 비범한 그의 재주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의 글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진하게 우려낸 뽀얀 사골 국물에 화려한 고명으로 치장하여 보기도 먹기도 좋은 음식일 것 같은 것도 알고 보면 재주를 경계하는 마음에서 노력을 더하여 얻어낸 결과이리라 생각한다.
연암의 이러한 겸손은 󰡔열하일기󰡕 「일신수필馹迅隨筆」에서 “나는 삼류 선비다余下士也”라고 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자기 문장을 과신하여 동료들의 글 솜씨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의 ‘문인상경文人相輕’이란 말이 널리 퍼졌던 때이다. 연암이 󰡔열하일기󰡕를 쓴 것은 44세였고 이미 조선에 그의 문명이 적잖이 알려져 있었지만 열하를 여행하면서 조선 선비 연암은 자신의 왜소함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삼류[下士]’라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스스로를 삼류라 여긴다는 것은 ‘노력’을 더해야겠다는 다짐이리라.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이란 분이 있는데 기억력에 관한한 빼놓을 수 없는 분이라 짚고 넘어간다. 이 양반의 독서 편력은 정말 대단하였는데, 1만 번 이상 읽지 않은 책은 독서 목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특히 사마천의 󰡔사기󰡕 중 <백이전佰夷傳>은 1억 1만 3000독讀, 현재 수치로는 11만 3000번을 거듭하여 서실書室의 이름조차도 ‘억만재億萬齋’라고 지었다 하니 그 독서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하루는 이 분이 길을 가다 책 읽는 소리를 듣고는 “그 글이 익숙하기는 한데 어떤 글인지 생각이 나지 않네”라고 하자, 말  고삐를 끌고 가던 하인이 <백이전> 구절임을 알려주었다 한다. 학문의 힘이 어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길러지겠는가만은 평생 10만 번이 넘게 읽어 놓고도 그 구절이 어느 책에서 나왔는지를 정녕 몰랐다면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데도 이 김득신이란 분은 부족한 기억력에 굴하지 않고 공부하여 뒤늦게 과거에 급제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것을 보면 제아무리 한 번 듣거나 보거나 한 것을 잊지 않고 오래 지니는 총기인 ‘지닐총’이 없다하여도 공부는 가능한 것인가 보다.
연암의 「낭환집서蜋丸集序」라는 글에는 또 이런 부분도 있다.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을 사랑하여 여룡驪龍(몸빛이 검은 용)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역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쇠똥구리의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
蜣蜋自愛滾丸 不羨驪龍之珠 驪龍亦不以其珠 笑彼蜋丸1)

‘낭환’이란 쇠똥구리이다.
쇠똥구리가 여룡의 구슬을 얻은들 어디에 쓰며 여룡 역시 쇠똥을 나무라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 재주 없음을 탓할 것도 없지마는 저 이의 재주를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하고 재주가 있다고 재주 없음을 비웃지도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심조룡文心雕龍󰡕 제48장 「지음편知音篇」에 보이는 말로 이 장을 마친다.

무릇 천 곡의 악곡을 연주해 본 뒤라야 소리를 깨달을 수 있고 천 개의 검을 본 뒤라야 보검을 알 수 있게 된다.
凡操千曲而後曉聲 觀千劍而後識器.

작가의 작품이 갖는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꾸준한 연마를 요구하는 비평에 관한 글이지만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라는 연암의 말과 선을 잇댄다.
경계할지어다. 재주를!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만 넓혀보자.
과過똑똑이들이 많은 세상이지만은 지둔遲鈍의 덕, 둔하지만 끈기 있고 느리지만 성실誠實한 자들로서 세상에 이름 석 자를 우뚝 남긴 분들도 꽤 있다. 저런 이들이 우리에게 뚱겨주는 인생 훈수는  ‘둔재鈍才라고 여기는 이들도 노력을 하면 된다’이다. 또 운명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우연이란 다리를 놓아준다하니 지긋이 의자에 엉덩이를 오래도록 붙여 볼 일이다.

이 책은 교보문고(주소는http://www.kyobobook.co.kr/main.jsp )에서 책의 제목('개를 키우지 마라'나 저자란에 '간호윤' 을 치면 책이 뜨고 미리보기로 30쪽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호윤의 서재 주소는  http://kan771.kll.co.kr/   이고 메일 주소는 kan771@hanmail.net입니다. 원하신다면 제 책을 한 권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제 메일 주소로 연락을 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반남박씨가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2005년 11월 9일.
簡 鎬 允 謹拜.


박찬무  [2005/11/09]  ::
 간호윤 교수님 홈페이지에 좋으신글 올려주시고 홈피가입까지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메일로 연락처를 보냈습니다. 개를 키우지 마라'가 올가을에 제일많이 읽히는 책이되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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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 반남문중에 저도 딸래임니다.~~~~~

PARK SOON BOON
2004/04/02 1785 0
470
   숙천공파

PARK SOON BOON
2004/04/02 1597 0

   간호윤,『개를 키우지 마라』,경인문화, 2005. [1]

간호윤
2005/11/09 2426 0
468
   연전에 이 곳을 찾았던 간호윤입니다.

간호윤
2006/07/21 1538 0
467
   간호윤입니다.

간호윤
2006/12/20 1959 0
466
   게시판에 사진올리는 방법(참고하세요 ^^)

도우미
2004/05/26 3042 0
465
   8월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님 일러스트

명재복
2009/09/09 1873 0
464
   연암선생을 바라보는 눈

문암
2010/05/17 1571 0
463
   연암선생 생가터 발굴을 제안한다

문암
2010/05/19 1712 0
462
   [북한칼럼] 반기문 총장의 중재역할을 기대한다

문암
2010/05/25 1617 0
461
   드디어 족보를 찾았습니다!!!!

박 기진
2004/01/29 2173 0
460
   몇대손인지..

박경문
2008/07/22 1918 0
459
   현재 가장 낮은 항렬은 어디까지 내려 갔나요?(냉무)

박경우
2005/02/14 1877 0
458
   파를 알고 싶고요. 족보책이 구입가능합니까? [3]

박공우
2008/04/30 2615 0
457
   뿌리를 알고 싶습니다. [1]

박공우
2013/01/30 14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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