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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문암 
Subject  
   연암선생을 바라보는 눈
올해가 열하일기로서 문명을 떨치셨던 연암 박지원 선생이 당시 팔촌형인 금성위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중국을 여행하신지 정확히 230주년이 된다.



사실 연암하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문장가,사상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예전의 연암 관련기록을 보면서 선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의 슬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대목이 늘 궁금하게 생각되었지만,더 이상의 내력은 연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여 연암은 반남박씨 문중의 남계,서계와 더불어 자랑스런 선조중의 한분임에는 틀림없지만,필자의 8대조와 당시 촌수가 16촌간이라는 것을 볼 때 필자에게 직계조상은 아니고 방계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사 직계후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문중에 이런 훌륭한 조상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문중에서 영의정이 되신 조상이 한분도 없지만,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남계,서계,연암같은 당대에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를 배출한 점에 있어서는 참으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분들과 필자의 가문과의 연관성을 소개한다면 남계 박세채 선생은 종증조부가 종손으로 양자가신 내력이 있으며,서계 박세당 선생은 12대조와 당시 재종형제가 되신다.



그리고 연암선생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나 필자가 며칠전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연암선생 탄생 200주년에 증조부가 서거하시고,연암선생 서거 60주년에 증조부가 탄생하시니 어찌보면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겠으나,어쩌면 연암선생의 탄생과 서거연도에 증조부가 이리도 관련되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게 생각된다.



사실 그동안 연암이 매우 유명한 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깊이 연구한 적은 없었는데,그야말로 때가 왔는지는 모르겠으나,증조부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문득 연암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증조부의 행적과 관련하여 궁금한 것이 종두인허원 취득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증조부가 어떤 연유에 의하여 우두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그 연원이 연암으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연암은 당시의 북학파의 영수로서 친명파가 대세를 이루었던 조정에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 드려야 한다는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던 실학자였기에 연암이 서거하신지 정확히 60년후에 출생한 증조부가 우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이러한 연암의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그야말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나름대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일은 이러한 연암에 대하여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던 연암이라는 존재가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연암은 실학자로서 명성을 날렸지만,그 유명한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허생전,호질,양반전외 다수 작품을 저술한 문장가로서도 유명한 분인데,사실 필자의 현재의 문장력이 그야말로 연암의 먼발치라도 따라가지 못할 수준이나,그래도 이제는 신문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칼럼니스트라는 점에 있어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연암과 관련하여 늘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연암의 선친에 대한 부분인데,이번에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는 연암관련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지만,흔히 연암의 선친은 연암이 어려서 돌아가셔서 조부의 슬하에서 양육된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데,놀랍게도 실제는 선친은 연암이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65세의 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으니,당시로 말하면 어느 정도 수를 누리고 가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기록이 나오게 된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의문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드디어 연암연구의 권위자로부터 그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1900년 연암집을 편찬하면서 덧붙인 " 박연암선생전 " 에 소개된 것이 그 이후 계속 답습된 것이라는 점이다.



1900년이라면 올해가 2010년이니 100년동안 그런 잘못 기술된 내용이 계속 전해져 왔다는 것인데,그렇다면 그러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없이 수용하였다는 점으로 이해된다.



연암은 그야말로 우리문중의 자랑이면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문호이기에 이번 기회에 그동안 선친에 대하여 잘못 전해진 내용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연암의 선친은 평생 벼슬을 안하고 백면서생으로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필자로서는 과연 연암의 선친은 어떤 분이셨으며 어떤 생애를 사신 분이었는지 궁금한데,일단 인터넷만 검색해 보아도 그 선친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연암의 선친에 대하여 조사할 생각이며,이와 더불어 연암은 정확히 1737년 2월 5일 한성 반송방 야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그 구체적인 위치를 모르고 있다.



필자가 오래전에 남계의 생가터를 추적하다가 결국은 찾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이번에 연암의 생가터가 현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이 부분도 추적할 생각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독립운동하신 종조부를 시작으로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들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는데,이번에 증조부 행적의 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다시 연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특히 역사속에서 잊혀진 연암의 선친에 대하여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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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남문중에 저도 딸래임니다.~~~~~

PARK SOON BOON
2004/04/02 1985 0
480
   숙천공파

PARK SOON BOON
2004/04/02 178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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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윤,『개를 키우지 마라』,경인문화, 2005. [1]

간호윤
2005/11/09 2533 0
478
   연전에 이 곳을 찾았던 간호윤입니다.

간호윤
2006/07/21 1637 0
477
   간호윤입니다.

간호윤
2006/12/20 2077 0
476
   게시판에 사진올리는 방법(참고하세요 ^^)

도우미
2004/05/26 40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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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님 일러스트

명재복
2009/09/09 2036 0

   연암선생을 바라보는 눈

문암
2010/05/17 177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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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선생 생가터 발굴을 제안한다

문암
2010/05/19 19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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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칼럼] 반기문 총장의 중재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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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족보를 찾았습니다!!!!

박 기진
2004/01/29 22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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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대손인지..

박경문
2008/07/22 20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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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가장 낮은 항렬은 어디까지 내려 갔나요?(냉무)

박경우
2005/02/14 20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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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를 알고 싶고요. 족보책이 구입가능합니까? [3]

박공우
2008/04/30 27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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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를 알고 싶습니다. [1]

박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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