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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박태서 
Subject  
   반남 박씨의 독립운동가
朴吉陽      1894-1928(고종31)
독립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
1921년에 동지 4인과 함께 삼남지방을 순회하여 자금 모금활동을 펴다가  그해 10월30일 경찰에 잡혀  1년6개월의 옥고를 차렀다.  그뒤에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는데 이른바 “조선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던중 1928년 1월19일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었다.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돠었다.

박응양 (朴應陽) 애국지사.(1871~1926)   춘당공파
반남(潘南) 박씨(朴氏) 23대 손(孫)으로서, 경남 산청 금서면에서 출생,이명은 명언(明彦). 애국지사 박응양(朴應陽)은 일본인에게 나라를 빼앗긴 한을 항상 품고 있던중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산청군내에서 3월 22일 산청 장날을 기해 일제 봉기토록 하기 위하여 동년 3월 18일 산청면 새동 수계정에서 민영길, 신영희, 오원탁, 신창훈,애국지사등과 같이 결의하고, 태극기를 등을 준비 하였으나 당시 군수였던 홍승균의 밀고로 일본 헌병에 검거 되었으나 단순 가담자로 분류되어 가혹한 고문과 삭발만 당하고 귀가하여 은둔하다가 예정대로 3월 22일 주민 400여명을 민치방과 같이 진두 지휘하다가 일본군의 군도에 맞아 바른쪽 귀와,팔을 완전 절단 당한채 귀가하여 불구의 몸으로 7년간 투병하다가 1926년 7월 30일(55세) 여생을 마침. 이로인해,대한민국 정부에서 그 공을 기리기위해
故 박 응 양(朴應陽)애국지사에게 1997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NO:19-002766)을 추서함. 이듬해, 대전 국립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NO:750)에 부인 배 성 옥(裵 性 玉)여사와 함께 새로이 안장 되었읍니다.

박진양(朴震陽)
1909~1940. 독립운동가. 일명 진양(鎭陽). 경상북도 영주출신.
항일구국투쟁을 위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중국군관학교뤄양분교(中國軍官學校洛陽分校)에 특설된 한국인훈련반에 들어가 1년간 군사교육을 받았다.
그뒤 북경(北京)에서 군자금의 모집, 일본인 암살, 군사기밀의 탐지 등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신의주로 압송되어 1936년 10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이, 1980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朴性묵/1848~1916)        
호 양암(陽巖). 별명 영묵(永묵). 경기 고양(高陽) 출생. 1895년 명성황후(明成皇后)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경희백(慶希伯)과 함께 강원도에서 활약하였고, 이듬해 강원 횡성(橫城) 수성장(守城將)이 되어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 후 남만주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병사하였다.

朴重緖/1883~?)
독립운동가. 평북 박천(博川) 출생. 1920년 대한독립단에서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암살을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한 민양기(閔良基) 일행의 권유로 대한독립단에 입단, 단원들과 함께 박천을 출발하여 진남포(鎭南浦)로 가던 도중 평남 대동군 용산면(龍山面) 용악교(龍岳橋) 부근에서 불심검문을 하려는 일본경찰 모리모토[森本]를 일행들과 함께 사살하고 진남포로 피신하였다가 황해도로 잠입, 은율(殷栗)에 사는 동지 황윤상(黃潤相) 집에서 모의하여 민양기는 주재소를, 이지표(李芝杓)는 은율군수 최병혁(崔炳赫)을, 고두환(高斗煥)은 군참사(郡參事) 고학륜(高學倫)을 사살하기로 하였으나 군수만을 사살하고 그 밖에는 도망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9월 20일 신천(信川)의 노성우(盧聖祐) 집에 체류 중 황해도 경찰부 경찰대와 교전하다가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朴贊雄
1919   기미독립운동때  금산지역에서 활동 하다가 감옥에서 사망 했다

박찬익1884.1.2~1949.3.9)
독립운동가. 자 정일(精一). 호 남파(南坡). 경기 파주(坡州) 출생.
1906년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1910년 국권피탈 후 북간도(北間島)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의 정교(正敎)로 있으면서 허룽현[和龍縣] 삼도구(三道溝)에 한인학교를 세우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요직을 거쳐 상하이[上海]로 가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고, 이듬해
1921년 임시정부 대표로 광둥[廣東]정부에 파견, 1940년 임시정부 법무부장이 되고,
1948년 광복된 조국에 돌아왔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이듬해
1949년 서울에서 병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사진설명  남파 박찬익 선생

]박준영(1915--2000)
임시정부 의 외곽단체인 한국광복전선  청년공작대를 시작으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  훈련총대장 등을  지내며 항일운동을 벌였다.   한국전력주식회사 사장  광복회고문 등을 역임했다.
백범기념사업회장을 지낸  애국지사 박영준翁 이  2000년3월27일 오전 8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5세
1977 ;건국훈장 독립장 수상
2000년 3월27일 타계한 애국지사 박영준(85 예비역 소장)옹 은 1930년대부터  중국에서독립군으로 활약했고, 건군이후에는 초대 장훈감을 지낸 군의 원로다.
특히 박장군의 부친은 상하이 임시정부 법무부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남파 박찬익(48년 작고)선생이어서  이들은 부자 독립운동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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