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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의 역사 반남박씨의 고찰

  반남박씨의 발자취 호장공을 선조로 모시는 이유 반남의 인물사 문중 항열에 대한 고찰
족보 발행에 대한 고찰 가구 및 인구 집성촌 반남지방의 역사적 고찰묘정.서원.사당.정문
시호가 내려진 어른 윗대 어른의 호칭 야천과 5응 17동 지정 문화재
 
 


[반남박씨의 발자취]
박씨는 가장 순수한 혈족을 이어온 씨족으로 약 2,000여년 전부터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살았던 배달민족의 후예로서 오랜 역사를 지녔는데,모든 박씨는 혁거세를 시조로 하여 여러 본으로 갈라지었다. 반남박씨는 호장공(戶長公)『박응주 朴應珠』를 1세(世)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국운이 쇠퇴해질 무렵 정국혼란으로 박씨들은 각지방으로 흩어져 반남,고령,죽산,밀양등지로 분산(分散)거주(居住)하는 동안 약 280 여년간을 형제지간(兄第之間)에도 연락 하지 못했다. 호장공은 반남에 거주 하였으므로 본관을 반남으로 하였고,신라 경애왕(景哀王 ?-927)으로부터 호장공 까지는 약 280 여년간이 상거(相距)했다.
이 기간의 사적(史蹟)은 상고(祥考)할 길이 없어 계통(系統)을 밝힐수 없으나, 4세 밀직공(密直公)의 계축호적(癸丑戶籍)을 기초로하여 상계(上系)로 호장공 까지의 계통(系統)을 밝힐수 있으나 호장공 상계(上系)은 선인(先人)들도『기선(其先)은 부지(不知)』라하였고,현존하는 반남박씨의 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호장공 한분의 자손인 까닭에 호장을 시조로 모시는 연유(緣由)인 것이다.
호장공의 생존년월은 정확하게 전해 내려오는 것은 없으나 4세손 밀직공(수秀)의 호적에 의하여 추정할수 있으니 호장공께서는 고려 희종(1205-1211)초 서기 1200년대에 반남에서 생장(生長)하시어 고려 고종(1214-1259)때에 반남 호장(戶長)으로 계시면서 반남박씨의 가문을 열으셨다.
호장공의 묘역은 반남박씨의 성지이다. 호장공의 묘역은 조선 세종때 박은( 평도공)께서 묘역 보호를 위하여 현 상로재 북편 언덕에 석천암(石泉庵)을 건립하였는데 1739년(영조15) 10월 화재로 소실되었고 중건할때 현재의 석천리로 옮겨 중건하였다. 한편 인성왕후(인종).의인왕후(선조)께서 교지(敎旨)를 내리시어 정성을 다 하셨다.
광해군때 13세 박동열(朴東說 1564-1622 형조참의 ,應福의子)이 나주목사로 오셔서 표석(表石)을 개수 하시고, 1709년(숙종35) 박필명(朴弼明 1658-1716 사헌부대사헌,應男의 6世孫)께서 안찰사로 오셔셔 표석을 다시 세우셨고,1762년 (영조38) 19세 박도원(朴道源 1714-1776 사헌부대사헌, 東亮의 7世孫)이 안찰사로 오셔셔 상석(床石)을 개수 하셨다. 호장(戶長)이란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의하면,고려 성종때에는 향직(鄕職)이 2품이었고 현종때에는 1품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호장 이라고하면 군(郡),현(縣)의 으뜸가는 행정관(行政官)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반남박씨의 시조(始組) 호장공은 나주 반남지방 호족(豪族) 출신 행정관인 것이다.그때의 관인이 석천암에 보관 되어있었으나 조선 영조 16 년(1740년)승려(僧侶) 의 실화(失火)로 소실(燒失)되었다.

호장공의 후예는
왕후.빈(王后 嬪) 3名 『인성왕후』『의인왕후』『현목수빈』
문묘배향(文廟配享) 1名 『박세채』
돈영부(敦寧府) 3名 『박 용』『박응순』『박준원』
의빈(儀賓) 5名  『박   미』『박태정』『박필성』『박명원』『박영효』
시록(諡錄) 45名 『박상충』『박   은』『박   강』『박숭질』『박   소』『박응순』『박응남』
  『박동선』『박동양』『박   미』『박   정』『박세채』『박세당』『박태상』
『박태정』『박태보』『박필주』『박필성』『박필건』『박필균』『박사수』
『박사익』『박명원』『박지원』『박준원』『박윤원』『박재원』『박종악』
『박종훈』『박종갑』『박종경』『박종덕』『박종보』『박종래』『박규수』
『박초수』『박주수』『박홍수』『박회수』『박기수』『박윤수』『박제인』
『박정양』『박원양』『박영교』
정승(政丞) 7名  『박 은』『박숭질』『박세채』『박종훈 』『박종악』『박회수』『박규수』
이상(貳相) 4名  『박동선』『박태항』『박필주』『박동양』
판서(判書) 25名 『박상진』『박태상』『박사수』『박사익』『박준원』
  『박우원』『박종보』『박종경』『박종갑』『박종래』『박종덕』『박주수』
『박기수』『박윤수』『박기수』『박홍수』『박선수』『박제헌』『박제인』
『박제소』『박제순』『박제관』『박기양』『박정양』『박원양』

대제학(大提學) 2名 『박태상』『박규수』
호당(湖堂) 6名 『박승임』『박응남』『박 기』『박태상』『박태보』『박종갑』
청백리(淸白吏) 2名 『박 강』『박 병』
동국명현(東國名賢) 4名 『박소』『박응남』『박동현』『박동량』
공신(功臣) 5名 『박 은』『박 강』『박동량』『박 정』『박필건』
등단(登壇) 3名 『박준원』『박종경』『박주수』
피징관(被徵官) 4名 『박세채』『박필주』『박필부』『박성양』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 215名
등 많은 인물을 배출(輩出)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호장공(戶長公)의 음덕(陰德)이라 하겠다.

※ 참고로 원래 조상을 말할때는 "휘"라 하고 앞에 "성"을 붙이지 않는것이 올바른 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 싸이트는 반남박씨만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다른 문중에서도 이용하는 점을 감안
부득이 본 싸이트에서는 "휘○○" 라 표기하지 않고 "박○○" 라 표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