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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수(朴 秀) 밀직공 1296 - 1373 급제공 의(宜)의 손(孫),
밀직부사 5世 문정공 『朴尙衷(박상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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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의 기틀을 잡아 발전 시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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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충(朴尙衷) 文正公 1332 - 1375 밀직공 秀(수)의 子, 금성부원군 박상충(朴尙衷) 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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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李穀)의 사위로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도 벼슬이었지만
경사(經史), 역학(易學) 문장(文章)에 능했으며 특히 예의와 법도에 밝아 사전.祀典〕이라는 저서를 남기고 있다.
반남박씨를 명문가문으로 발돋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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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 6世 평도공『 박 은 』 문정공의 아들로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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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도공(平度公) 1370 - 1422 좌의정 좌명공신佐命功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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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지방에서 태어난『문정공(文正公)』의 아들『평도공 은(?)』이야말로
반남박씨를 빛나게 한 중흥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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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祖)이며, 아래 인물들이 그 모두 그의후예 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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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도공의 3 아들인 7世 참판공『박규』.세양공『박강』.부윤공『박훤』에서
가세가 크게 발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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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朴葵) 參判公 1400 - 1437 예조참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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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朴薑) 世襄公 ? - 1460 중추원〔청백리〕좌익공신佐翼功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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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훤(朴萱) 府尹公 ? - 1487 경주부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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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는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다른 박씨 뿐만 아니라 어느 명문대가의
가문에 비겨도 조금도 손색이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울 만큼 가장 화려한 역사를 누렸으니 한가문으로써 그 벼슬은
화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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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박은』『박숭질』『박세채』『박종악』『박종훈』『박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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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등이 정승을 지냈고,『박규수』는 대제학에까지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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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0 - 1422 문정공 尙衷(상충)의 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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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숭질(朴崇質) 1456 - 1507 부윤공 훤 (萱)의 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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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채(朴世采) 1631 - 1695 오창공 東亮(동량)의 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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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악(朴宗岳) 1735 - 1795 오창공 東亮(동량)의 8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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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훈(朴宗薰) 1773 - 1841 서포공 東善(동선)의 8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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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회수(朴晦壽) 1786 - 1861 서포공 東善(동선)의 9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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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제학은 『박태상』과『박규수』두분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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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상(朴泰尙) 1636 - 1696 서포공 東善(동선)의 曾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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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수(朴珪壽) 1807 - 1876 오창공 東亮(동양)의 9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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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공『박세채』는 동국18현으로 문묘봉향(文廟奉享)및 종묘배향(宗廟配享)을,
『박규수』는 종묘배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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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廟配享)을 지내고 있어 후세까지 높이 추앙 받고있다. 한편 우의정을
지낸『박규수 (朴珪壽)』는 문도공『박지원』의 손자로,고종때 평안감사로 있으면서 외국 상선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자 군사를 동원하여 그 상선을 불살라 버렸으면서도 자신은 일찍부터 개혁사상에 눈을 뜨고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며 나라의 문호를 개방할 것을 주장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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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인성왕후』『의인왕후』『현목수빈』등 왕비와 빈을 배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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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성왕후 仁聖王后,1514-1577.12대 인종비, 父 용(용),세양공의 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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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인왕후 懿仁王后,1555-1600.14대 선조비, 父 반성부원군 응순(應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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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순궁 嘉順宮,1770-1822.22대 정조빈,순조의 生母,父 준원(準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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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공 동민(東民)의 8世孫 한편 임금의 장인 즉 돈영부(敦敦府)는『박용』『朴應順』『박준원』등
3분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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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용(朴 墉) 1467 - 1524 세양공 薑(강)의 孫, 錦城府院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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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원(朴準源) 1739 - 1807 참봉공 東民(동민)의 8世孫, 判敦寧府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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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사류와 함께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해 노력했던 문강공『박소(朴沼)』야천
선생를 모르는 이는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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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朴紹) 문강공 1493 - 1534 사간,영의정(증) 〔동국명현東國名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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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천(冶川 문강공)은 다섯아들과 열일곱 손자를 두어 모두 크게 번성 하니
이를 5응 17동 이라부르며, 이분들이 반남박씨를 더욱 번성케 하였다.〔 5응 〕다섯 아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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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천(朴應川) 1516 - 1581 감정공.왕자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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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순(朴應順) 1526 - 1580 부원군.반성부원군,선조:의인왕후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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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남(朴應男) 1527 - 1572 남일공.호조참판,도승지〔동국명현東國名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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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복(朴應福) 1530 - 1598 졸헌공.호조참판,병조참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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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응인(朴應寅) 1532 - 1606 도정공.돈령부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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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참찬(參贊 정2품)은『박동선』『박동양』『박태항』『박필주』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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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선(朴東善) 1562 - 1640 감정공 應川(응천)의 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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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양(朴東亮) 1569 - 1635 졸헌공 應福(응복)의 子〔호성공신扈聖功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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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항(朴泰恒) 1647 - 1737 남곽공 東說(동열)의 4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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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필주(朴弼周) 1665 - 1748 오창공 東亮(동양)의 5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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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사위(儀賓)로는『박미』『박태정』『박필성』『박명원』『박영효』등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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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미(朴 ?) 1592 - 1645 錦陽尉,선조 5女 정안옹주, 오창공 東亮의 長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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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정(朴泰定) 1640 - 1688 錦昌副尉,소현세자2女 경영군주, 남일공 應男5世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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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필성(朴弼成) 1652 - 1747 錦平尉,효종 6女 숙영옹주, 남곽공 東說5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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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원(朴明源) 1725 - 1790 錦城尉,영조 3女 화평옹주, 오창공 東亮7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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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효(朴泳孝) 1861 - 1939 錦陵尉,철종 女 영혜옹주, 오창공 東亮12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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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결백하고 관리의 모범이 될 인품,경력,치적을 갖춘 청백리는 『박강』『박병』두
분이신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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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강(朴 薑) ? - 1460 중추원 평도공(은)의 子 〔좌익공신佐翼功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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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병(朴 炳) 1587 - 1663 공주목사 참봉공 東民의 子(出:東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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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나『박세당』『박지원』같은 쟁쟁한 학자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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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당(朴世堂) 1629 - 1703 서포공 東善(동선)의 孫子, 공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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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 오창공 東亮(동량)의 7世孫, 안의현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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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절공『박세당』은 인조반정 공신으로 판서를 지냈으며 그는 저술을 통해
당시 세상을 휩쓸던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하고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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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벼슬을 자랑하는 반남박씨에서『박지원(朴趾源)』이 있음은 군계일학
(群鷄一鶴)이 아닐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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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길이 전부라고 여기는 아직 덜 열린 세상에 그의 존재는 단연코 빛난다.
물론 그의 벼슬도 그렇게 낮은 벼슬은 아니었다. 북학파의 명수로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그가
우리나라 실학(實學) 에 남긴 공적은 뛰어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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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功臣)은 평도공『박은』,세양공『박강』,오창공『朴東亮』,박정』,박필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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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은( 朴 ?) 1370 - 1422 문정공 尙衷(상충)의 子,
좌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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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정( 朴 炡) 1596 - 1632 서포공 東善(동선)의 子,
이조참판, 부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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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필건(朴弼健) 1671 - 1738 서포공 東善(동선) 5世孫,동지의금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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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품이 결백하기로 유명하여 암행어사를 지내기도 하였던 문열공『박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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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보(朴泰輔) 1654 - 1689 서포공 東善(동선)의 4世孫,이조좌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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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이 어지러운 한말(韓末)에 개화의 깃발을 높이 든 玄玄居士『박영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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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효(朴泳孝) 1861 - 1939 오창공 東亮(동양)의 12世孫, 한성부판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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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는 태극기를 처음 사용 하였다. 온건한 중립에 서면서도 개화사상을
가지고 있어 이상재(李商在)등 개화파 인사들을 돌보았던 총리대신 문익공『박정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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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양(朴定陽) 1841 - 1904 참봉공 東民(동민)의 11世孫, 초대주미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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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이땅에 근대연극이 자리 잡을수 있는 기반을 다진 연극 운동가 『박승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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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희(朴勝喜) 1901 - 1964 , 연극운동가 朴定陽의子 (東民의 12世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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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의 규합과 임시정부 의정원및 법무부장을 지낸 독립 운동으로 한평생을
살다간 남파『박찬익』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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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익(朴贊翊) 1884 - 1949 東亮(동양)의 14世孫, 임시정부 법무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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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반남박씨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명문명가 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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