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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사회의 문벌세족 본관 성씨별 인구 나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호장을 시조로 하는 성씨
문과 급제자종묘배향문묘봉향반남인의 저서 및 작품벌명당 전설야천 묘의 전설
참봉공(東民)의 생애 북한의 반남박씨 족보란 무엇인가 관직 상식 호칭및 관계
 
 


[벌 명당 전설]
나주(羅州)지방은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을 끼고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구릉들이 물결치듯 일어섰다 가라앉아 예로부터 명당(明堂)들이 많았던 곳이다. 조선의 8대 명당 가운데 하나인 『벌 명당』도 이곳에 있다. 『벌 명당』은 호장공의 묘이다 호장공 박응주의 『벌 명당』전설이 구전되어 내려 오고있다.
『벌 명당』으로 유명한 전설이 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벌 명당』은 반남 고을의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의 묘로 평소 인품이 너그럽고 덕망이 있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호장 박응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박의(朴宜)는 지관을 찾아가 부친 묘 자리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지관 역시 평소 박응주로부터 은덕을 입어온 터라 좋은 자리를 잡아주기 위해 영산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자미산(紫微山)으로 올라가 일대의 산세를 살피고 나서는 너무 좋은 명당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자미산 맞은편 지금의 묘가 있는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로 발 걸음을 옮겼으나 천기(天機 천지조화의 기밀)를 누설(漏泄 비밀이 새어 나감)한데서 오는 화를 입을까 봐 안절부절 하며 땅의 정기가 모여 묏자리로서 좋은 자리를 이르는 혈(穴)에서 10여 m 정도 위쪽에다 자리를 잡아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박의(朴宜)는 지관의 태도가 하도 이상하여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어 하인(下人)을 시켜 지관의 뒤를 밟도록 했다.
집으로 돌아가 저녁상을 물린 지관은 아내에게 “오늘 박호장 묏자리를 보다가 기막힌 명당을 발견 했는데 천기를 누설 한데서 오는 화를 입을까 봐 명당 위쪽으로 묘를 쓰라고 했소” 그러자 아내는 “평소 그 어른의 은덕을 생각해서라도 명당을 가르쳐 줘야 하지 않습니까”
하는 지관의 말을 였듣고 온 하인(下人)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박의(朴宜)는 지관이 말 못한 사정을 알아내고 다음날 박의는 전날 지관이 잡아준 자리보다 10여 m 아래에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내려 갔다 장례 일을 도와 주려고 뒤늦게 나타난 지관은 어제 본 그 명당을 파고 있어 깜짝 놀라 까닭을 물으니 그 자리는 아껴두고 더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고 이곳을 파고 있다 고 말하자 지관은 하는 수 없이 간절한 부탁을 하나하고 자리를 떴다.
“이곳에 묘를 쓰되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땅을 파시오” 그러나 일은 지관의 부탁대로 되지 못하였다 파 내려가던 땅 속을 몇 차례 더 파는 순간 새 만한 큰 벌들이 튀어나와 집에 도착하지 못한 지관에게 달려들어 쏘아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사연으로 그 명당은 『벌 명당』이라 불리고 반남박씨로 일컬어지는 그의 후손들은 발복(發福 운이 틔어 복이 닥침)하기 시작 3대인 고려말(高麗末)의 학자 박상충(朴尙衷)을 비롯 조선조 5백 년 동안 정승 7명과 2백17명의 문과 급제자 를 배출하고 조선조에 정승을 지낸 박씨가 8명 뿐인데 이 가운데 반남 박씨가 7명이나 차지 했다.
반남박씨 자손들은 지관이 자기 집으로 가기 위해 넘었던 고갯마루에 『봉현(蜂峴)』이라는 표지석을 세워 오늘 날에도 지관의 넋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