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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문과 족보]

보학문 이란?     족보란 무엇인가?     족보의 종류     족보 보는 방법     보학 용어 해설

[보학문 이란]

보학은 간단히 말하면 족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옛날에는 벼슬아치나 선비들의 교양 학문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보학은, 사학은 물론 사회학, 정치학, 행정학, 민법학, 민속학 등의 보조 학문으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정치 권력의 이동이라든가 사회 계층의 변동을 연구하는 데는 물론 인사제도, 가족제도와 가족법, 자연부락의 조직 및 생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족보를 기초 자료로 삼고 있는 것이다.
보학은 모든 성씨의 관별(貫別) 또는 같은 뿌리를 가진 시조(始祖)의 혈통을 이어받아 오는 동족의 씨족사적인 족보를 비롯하여 전기, 행장(行狀), 문집(文集) 등의 기록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는 중국에서 발달하였으며 <통지략(通志略)> 등의 사서를 보면 보첩류(譜牒類)라 하여 황족의 총보(總譜)를 비롯하여 운보(韻譜), 군보(郡譜), 가보(家譜) 등으로 나누고 사가들은 보학을 정사의 일부로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종부사(宗簿寺)를 중앙 부서에 두고 왕실의 보첩류를 맡아보게 하여 왕대연표(王代年表)와 왕자들에 대한 전기 등을 수록하여 왔으며, 그후 조선조에 이어오면서 관제상 변함없이 종부사를 두어 왕실이나 왕족들의 계보(系譜)인 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찬하여 <조선국보(朝鮮國譜)>를 만들었으며, 또한<국조보첩(國祖譜牒)>이라 하여 태조 이래의 세계(世系)를 편찬한 것으로 왕과 왕비의 존호(尊號), 탄생,승하(昇遐),능침(陵寢), 자녀 등에 관해 기재하였다. 물론 종친(宗親)간의 배위(配位),혼인관계,생,몰 연월일 등도 상세히 알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적인 기술로서 부계(父系) 중심의 계성(繼姓)을 위주로하여 개인적으로 국가나 사회에 끼친 행적은 물론 그 배위에 관하여 성씨와 더불어 부(父), 조(朝), 증조(曾祖), 외조(外祖)까지를 밝히고 있으며 출가한 딸 또한 사위의 성, 본관, 이름, 그의 아들인 외손까지 등재하여 가히 삼족(三族)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도록 상세히 수록함으로써 그 당시의 친 인척 관계를 배경으로 사회적 활동상 까지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이와 같이 보학이 주(周)나라 때부터 발달하여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보학은 한(漢)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이 역시 <사기(史記)>가 나오게 됨으로써 왕후제족(王侯諸族)이나 귀족권문(貴族權門), 또는 지방장관 등은 물론 일반 서민에게도 차츰 가계의 보첩 등을 소중히 여겨 동족 일문이 가첩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학문으로 보학을 연구하기에 이르렀으며 더욱이 관리에 대한 추천법인 현?U과(賢良科)가 생기면서 더욱 발달하여 역사학의 보조학문으로 커다란 구실을 하여왔다.
<당지(唐誌)>에 의하면 육경헌(陸景獻)이 지은 <육종계력(陸宗系歷)>은 종계보(宗系譜)로서 자기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것으로 명문거족인 가문에서는 덕을 쌓는 것을 자손들이 계승하여 아버지, 할아버지대의 명성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러한 개인 또는 사가(私家)의 내력을 기록한 것 등이 역사학자들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한(漢)의 유향(劉向)이 <세본(世本)>을 만들어 씨성(氏姓)의 출처를 밝힌 이후로 보학은 날로 발달하여 위(魏)나라 때에는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이 생겨 품수(品數)에 따라 각자 성씨의 내력과 그들의 인물을 평하여 조정에서 등용하는 제도까지 두었다.
중국의 보학 사상, 보학을 체계 있게 연구한 사람은 남북조시대 제(齊)나라의 가희경이라 알려져 있음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송(宋)나라의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등도 보학에 능하여 계보 등을 편찬하였다고 하나 가희경의 조부 가필지가 각 성씨의 족보를 모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기초를 닦아 놓았으며 그의 아들 가비지는 이를 계속 연구하여 주서(注書)를 덧붙여 놓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 의종(毅宗) 때에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족보문화의 효시라 할 수 있으며 조선 성종 7(1476)년에 간행된 안동 권씨의 <성화보(成化譜)>가 출간됨으로써 보학이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권문세가는 물론 명문거족에서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족보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후 족보 발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조선시대에 특히 족보 발간이 활발해진 것은 애친경장(愛親敬長)의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을 인륜의 비른 길이라 하여 교화하는 유교가 조선의 국교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