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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의 역사 혁거세왕과 박씨

  시조 박혁거세왕 신라 박씨 10왕 박씨의 관향 박씨 본관및 중시조 새로 발굴된 나정 유적
중국으로 간 박씨들명문대가 반남 반남박씨 세계도 100 여년 지속된 반박과 밀박관계 해결
경주 오능 옛부터 불리워진 8 朴 순천박씨 8대군 사실 아니다 관향별 선조 행적
 
 



[ 100 여년 지속된 반남박씨와 밀양박씨 관계 해결 ]
반남박씨의 시조 박응주(호장공)는 신라 혁거세왕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박응주(호장공)의 상계가 실전되어 박응주(호장공)의 윗대를 알 수 없습니다. 최근 발행되는 일부 서적이나 자료등에 박응주(호장공)의 윗대를 나열한 기록이 종종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고증할수 없는 잘못된 내용 입니다.
모든 박씨는 혁거세왕을 시조로 하여 여러 본으로 갈라졌습니다. 신라 국운이 쇠퇴해질 무렵 정국혼란으로 박씨들은 수도였던 경주를 떠나 여러지방으로 흩어져 분산 거주하게 되었는데, 반남박씨 시조 박응주는 나주 반남지방에 거주 하였으므로 본관을 반남으로 하였으며, 신라 경애왕으로부터 박응주(호장공)까지는 약 280 여년간 입니다.
신라가 멸망하고 경애왕 이후부터 박응주(호장공)까지의 역사적인 기록을 찾을길이 없어 계통(系統)을 밝힐수 없었으나, 박수(밀직공.4세)의 계축호적(癸丑戶籍)을 기초로하여 상계를 박응주(호장공) 까지의 계통(系統)을 밝힐수 있었고,박응주(호장공) 이상(以上)은 선인(先人)들도『기선(其先)은 부지(不知)』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도 찾고져 했으나 찾지 못했던 사적(史蹟)을, 조선시대말 1899년 박성민(朴性玟)이란 사람이 발행한 신라박씨선원본(新羅朴氏璿源譜)과 범박이천년사(汎朴二千年史)에 박응주(호장공)의 윗대를 나열(蘿列)하였으나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고증(考證)할수 없는 일로, 반남박씨에서 1924년 발행한 반남가사 서문에서 이를 통박한바 있습니다. 한편 1983년 간행한 신라이천년사 박씨편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한바 있습니다.
한편 반남박씨에서 이를 시정하기위해 2003년 박씨족보시정위원회를 발족하고 활동에 들어가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한 자료를 통하여 밀양박씨측 대표와 반남박씨측 대표들이 여러차례 회동. 회의를 거듭한 결론 끝에 밀양박씨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는 『밀성(밀양)박씨 대종회 이사회』 ( 2004년 10월 5일 ) 결의에 따라 『 앞으로 족보 발행시에는 지길(之吉) 하단(下段)에 응주(應珠 호장(戶長)公)을 등재(登載)하지 아니할것을 약속한다 』 는 공문을 대종회장 박상섭(朴相燮)으로부터 2005년 5월 16일 반남박씨 대종중에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 2005년 밀양박씨(사문진사공파 四門進士公派)에서 세보를 발간』하였는데 『 밀양박씨 42세 지길(之吉) 하단(下段)을 공란(空欄)으로』하여 새로히 발간한 세보를 2005년 3월 24일 반남박씨 대종중에 보내온바 있습니다.
이는 밀성(밀양)박씨 대종회 이사회의 현명한 결단과,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사(事必歸正)의 결과 였습니다.
흔이들 족보(보학)을 잘 모르는 일부 사람들이 반남박씨는 밀양박씨에서 갈러져 분적되어 나왔다
밀양박씨는 큰집이고 반남박씨는 작은집이다. 등의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데 이는 모르는 사람이 근거없이 하는 말로써 이말를 절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위에서 밝혔듯이
밀양박씨 42세 지길(之吉) 하단(下段)을 공란(空欄)으로 한다 』 는 밀양박씨 대종회 이사회의 공식 표명은
반남박씨가사기에 의한 박응주(호장공)의 상계가 실전되어 박응주의 윗대를 알 수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반남박씨가 밀양박씨에서 분적 되지 않았음을 밀양박씨 대종회 이사회에서 공식으로 인정』한것이고,
반남박씨가 밀양박씨에서 분적되지 않았으므로
밀양박씨는 큰집이고 반남박씨는 작은집이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을 공식으로 인정한것이다.
그러나 모든 박씨는 밀양박씨 이건 반남박씨 이간 모두 박혁거세 한분의 자손입니다

아래글은 유교문제 연구소장 박찬덕(경남 진주)님께서 신라오능보존회와 밀양박씨 규정공파 대종회에 보낸 반남박씨는 “밀성대군파에서 분적한 것이 아니다”는 밝힌 글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반남박씨에서 박씨족보를 시정추진하는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글입니다.
본인은 범박(汎朴)의 성조(姓祖)이신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이자 반남박씨 本寬始祖(1세) 박응주의 25세손이 되는 사람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1889년 밀양박씨측 학자 박성민께서 『신라박씨환원보(新羅朴氏環源譜)』를 간행한 이래, 이 신라박씨선원보에 준해서 밀양박씨 족보는 아무런 과학적 연구검토 없이 반남박씨의 본관시조 박응주(朴應珠)가 밀양박씨 42世 特定人 박지길(朴之吉)의친생자( 親生子) 인양 조작된 사실(史實)을 기록하여 오고 있습니다.
同封한 본인의 拙著「반남박씨 家史 이야기」 제67쪽 제5장 (3)의 〈반남박씨와 밀양박씨와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심층연구]의 논문은, 「신라박씨선원보] 이후 밀양박씨족보가 일방적으로 반남박씨시조 박응주를 밀양박씨 42世 박지길(朴之吉)의 아들로 기록해 오고있는 것은 사실과 다른 조작된 것임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논증(論證)한 연구논문 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어른들이 서로 장난삼아 농담삼아 하는말로 〈내가 네 애비다>고 하면, 다른 한쪽은 <에끼 이놈>하며 낄걸 웃고 장난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농담이 농담이 아니고 친구끼리 正色을 하면서 끝까지 <내가 네 애비다>라고 우기면 어떻게 될까요? DNA조사는 제처두고라도, 우선 당장 나이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이 현상 세계의 理致上 애비와 자식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것이 상식이므로 애비라고 주장한 측이 당연히 그 주장을 취소해야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논리(論理)가, 반남박씨의 본관시조 박응주를 밀양박씨 42世 박지길(朴之吉)(년대미상,실존인물여부도 의문) 특정인의 아들로 만들어 놓은 밀양박씨족보의 잘못된 주장에도 적용된다고 본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밀양박씨측에서 이 제5장 (3)의 주장에 대하여 혹 이견(異見)이 계시면 지적하여 주시옵기 바라오며, 아울러질의에 대한 의견(意見)을 듣고저 합니다.
1. 책 제71쪽 자료 7의 세계도(世系圖)는 본인이 직접 밀양박씨족보를 보고 작성한 세계도입니다. 세계도를 간소화하기 위하여 이부 어른을 누락하였지마는 그 上下의 연속과 횡적인 항렬의 표시는 밀양박씨 족보와 추호의 다름이 없습니다. 이 세계도의 그림이 밀양박씨 족보와 일치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하시겠지요?
2. 밀양박씨측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제71쪽 자료7의 세계도에 의하여, 37世 태사공 박언부로 부터 44世 문빈, 43世 춘, 43世 응주 세분 만의 직계 세계를 각각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37세   언부   언부   언부
   38세   효신   효신   의신
   39세   공필   공필    림
   40세   육경   육화   인수
   41세   대화   윤공   후권
   42세    간     상례    지길
   43세   세균   춘④   응주 ※ 반남박씨 시조
   44세   문빈⑤            의    ※ 반남박씨 2세
   45세                          윤무 ※ 반남박씨 3세
   46세                           수    ※ 반남박씨 4세
   47세                          상충 ※ 반남박씨 5세
   48세                           은    ※ 반남박씨 6세
(밀양박씨 족보에는 위 표의 반남박씨 3세 윤무까지만 등재되어 있으나, 본인이 연속해서 4세 5세 6세를 편의상 표기했음)
즉 44세 문빈은 태사공 박언부의 7세손이고,43세 춘은 박언부의 6세손이고, 43세 응주(반남박씨 시조 박응주가 밀양 박씨 43세라고 만들어 놓은 이것이 자체가 잘못이다)는 박언부의 6세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 위④ 박춘의 밀양박씨 족보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恭愍王朝與李太祖出將入相 出功勳(고려공민왕때 이성계(1335~1408)와 出將入相했고 공을 세웠다.……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은거 하여 벼슬을 하지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박춘에서 이성계와 같은 년배이자 같은 시대의 어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족보의 사실을 인정하시지요?
나. 위 ⑤ 박문빈의 밀양박씨족보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與圃隱牧隱爲倡明正學致任還鄕國朝徵大司成不就>(포은 정몽주(1337년생). 목은 이색(1328년생)등과 道義交를 나누었고, 유교의 正學을 일으켜 밝혔으며, 벼슬을 사직하고 밀양의 고향으로 낙향한 후, 조선조에 와서 大司成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박문빈께서 정몽주. 이색등과 같은 년배이자 같은 시대에 살았던 어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족보 기록 사실을 인정하시지요?
다. 위 표의 반남박씨 5세 박상층(박응주의 玄孫子)이 어느 시대 어른이냐 하면, 성균관이나 전국 鄕校誌등에 기록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몽주와 같은 년배, 같은 시대에 살았던 분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文忠公鄭先生 (정몽주를 말함)
…이때는 공민왕이 시해되어 우왕이 왕위에 올랐으며,…당시 최고 권력자인 李仁任은 우왕을 추대하는데 功이 큰 사람이었으나, 明使의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추궁을 두려워하여 더욱 더 親元政策을 내세웠다. 이때 마침 元에서 使節을 보내어 李仁任이 이들을 맞아들이려 하므로, 이에 선생(정몽주를 말함)은 박상충(朴尙衷) 金容九등 十餘人과 함께 王에게 글을 올려…>(咸陽鄕校誌 17쪽 참조) 참고적으로 고려말의 이색 박상충 이성계 정몽주의 출생년도를 년장자(年長者) 순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   색 : 1328년 출생
          박상층 : 1332년 출생 박상충은 목은 이색선생과는 친 처남남매간이다
          이성계 : 1335년 출생
          정몽주 : 1337년 출생
여기서 우리는, 남박씨 시조 박응주의 현손자인 박상충(朴尙衷)은 밀양박씨 43世 박춘(朴春)이 함께 出將入相한 이성계 보다는 3년 年上이며, 44世 박문반(朴文彬)⑤이 道義交를 나눈 정몽주 보다는 5년 년상이고 이색 보다는 4년 年下임을 알 수 있으며, 그러므로 반남박씨 5世 이자 박응주의 현손자인 박상충은 밀양박씨 43세 박춘(朴春). 44세 박문반(朴文彬)과 고려말과 조선조 초에 걸쳐 같은 시대에 살았던 같은 년배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라. 밀양박씨 43세 박춘(朴春) . 44세 박문반(朴文彬)과 동년배이고 동시대에 살았던 반남박씨의 박상충은, 위 표와 같이 박응주의 4세손(현손자)이고, 이분의 父 박수(朴秀) (1296년 丙申생)는 아들 박상충 보다 36살 년상인 것이 문헌적으로 입증되지만, 祖父이상의 上古 어른은 다른 문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출생년도를 족보에서 알 수 없으므로, 통상 1대를 30년으로 계산 할 떄 4代×30년≒120년 정도 박상충보다 웃대에 살았다는 계산이 나오며, 실제로 문헌상 박응주가 고려 희종(재위1204~1211) 년간에 반남에서 생장(生長)했다고 되어 있고, 고종(재위1213~1259) 년간에 호장(戶長)을 지냈다고 되어있으므로, 박응주가 위 희종의 재위기간 마지막 해인 1211년에 출생했다고 보면, 박상충의 출생년 1332년에서 박응주의 출생년 1211을 빼면 121년이 산출되어 위 4代×30년≒120년 계산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짐을 알 수있습니다. 여기에 이견(異見)이 없으시지요?
위 입증과 같이, 반남 1세 박응주는 반남 5세 박상충보다 약 120년 전의 어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도 인정하시지요?
마. 그렇다면 살피건대, 위 세계표(世界表)상 밀양박씨 42세 박지길의 아들로 43 위치에 반남박씨1세인 박응주가 접목(接木)되어 있지 않고 반남박씨 5세 박상충이 접목(接木)되어 있다면, 비록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접목(接木)이긴 하지만 그래도 논리적으로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으나, 반남박씨 1세 박응주가 그의 현손자 박상충보다 약 120년전의 어른이므로 이 박상충과 고려말에서 조선조초의 동시대 인물인 말양박씨 43세 박 춘보다도 당연히 120여년전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그 누구도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고하고, 밀양박씨 족보가 박춘 ④보다 120년이나 나이가 많은 우리 반남박씨 시조 박응주를 밀양박씨 43세 박춘(朴春)④과 같은 동시대에 살았던 12촌 족형제(族兄弟)로 만들어 놓은 것은, 밀양박씨 족보에 중대한 과오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지요?
그리고 밀양박씨 족보에서 박춘과 박응주가 12촌의 족형제(族兄弟)로 되어있다는 본인의 주장이 잘못된 계산이 아니고 사실음을 인정하시지요?
바. 우리 반남박씨 시조 박응주는 꼭 치자면 위 밀양박씨 세게표상의 39世 나 아무리 늦어도 40世 어른들이 살았던 어른이라는 사실은 위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7세    언부    언부    언부
          38세     효신    효신    의신
          39세    공필    공필      림         ▶응주 ※ 반남박씨 1세
          40세    육경    육화     인수            의   ※ 반남박씨 2세
          41세    대화     윤공    후권           윤무 ※ 반남박씨 3세
          42세     간       상례    지길             수   ※ 반남박씨 4세
          43세    세균      춘      응주▶        상충 ※ 반남박씨 5세
          44세    문빈                                      은   ※ 반남박씨 6세
          45세
즉, 반남박씨 특정인과 말양박씨 특정인 간에는 항렬을 따질 수 없지만, 밀양박씨 43세 어른 박충과 반남박씨 5세 어른 박상충은 고려말과 조선조초 동시대 인물이므로 반남박씨 박상충을 밀양박씨 43세 항렬 접목(接木)시키면 반남박씨시조(1세) 박응주는 당연히 밀양박씨 39세 항렬과 동시대(同時代) 살았던 어른으로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한 이론(異論)이 있을 수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밀양박씨 42세 박지길(朴之吉)이라는 어른이 실존한 분이라고 하드라도 반남박씨의 박응주 보다는 80~90살 정도는 나이가 적은 어른이 되는 것이고 이세상에는 아버지가 자식보다 나이가 적은 아버지가 있을 수 없듯이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자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밀양박씨 족보가 1899년 박성민의 「신라박씨선원보」이래 반남박씨시조 박응주를 밀양박씨 42세 박지길의 친생자( 親生子)인양 일방적으로 기록해 온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칙에 따라 밀양박씨측에서 이 잘못 접목(接木)시킨 부분을 인정하시고 다음 족보 발간시에는 말소하여 주심이 옳다고 보는데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3년 박찬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