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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궐리사’ 숨은 진실은

노론-소론 갈등이 만든 ‘사찰기관’  
서원 ‘궐리사’ 숨은 진실은  

대전일보사.권성하기자 편집 2011-06-01


▲논산 노성면 교촌리 소재 궐리사.


조선 선비들에게 교육과 선현에 대한 제향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향교를 ‘문묘(文廟)’라 한 것 만 봐도 그렇다.

향교에는 공자(孔子)를 비롯해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4성(四聖)과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저명한 유현(儒賢)들의 위패를 봉안했다. 제향된 인물은 조선 말에 133인에 달했다.

하지만 서원(書院)은 달랐다. 제향하고자 하는 인물과 그 지역의 인연을 들어 건립했다. 어떤 인물을 모셨느냐에 따라 정치적인 성격도 판이했고, 어느 학파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서원의 위상은 달라졌다. 노론이 집권했을 때에 노론계 인물을 배향한 서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액서원으로 승격됐지만 반대 편인 남인계 서원은 남설(濫設)이나 첩설(疊設)의 폐해를 지적당하며 불이익을 받았다.

‘노론계 서원’이니 ‘남인계 서원’이란 분류가 생긴 것도 이런 연유다.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철폐하고자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충청기호유교는 율곡 이이(李珥·1536-1584)에서 시작돼 정치적으로는 서인(西人)계의 성격을 띄었다. 서인은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됐고, 1700년대 이후 조선의 중앙 정권은 서인 노론계가 장악했다. 서인 노론계의 대표 주자는 우암 송시열이다. 주자 성리학을 앞세운 우암 송시열은 전국 각지에 서원을 건립하고, 율곡을 계승한 유현을 제향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암과 그의 제자들이 공자와 주자를 앞세워 기호유교권이 아닌 타 지역까지 기호계열의 서원을 세웠다는 점이다. 서원의 정치성을 감안할 때 서인 노론계의 영향력이 약한 곳에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공자와 주자를 내세워 정치적 외연을 넓힌 셈이다.

그중 충남 논산의 궐리사(闕里祠)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진 곳이다. 보통 공자를 제향하는 서원은 공자가 나고 자란 마을의 이름을 따서 궐리사라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궐리사는 논산과 진주, 오산 세 곳 뿐이다. 논산 궐리사는 노성면 교촌리에 있다. 이곳에 궐리사가 세워진 배경은 비슷한 이름 때문이다. 노성면 지역은 조선시대 니산현(尼山縣) 혹은 노성현(魯城縣)으로 불렸고, 니구산이라는 산이 있다. 노(魯)나라 사람인 공자의 이름은 ‘구(丘)’다. 노성현 니구산과 같은 글자를 쓴다. 게다가 니구산 아래에 궐리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공자가 성장했던 고장과도 비슷하다.

좀 더 속을 들여다 보면 논산 궐리사 건립에는 무서운 음모가 있다. 궐리사는 노소 분당과 갈등이 만든 정치적 사찰 기관이었다는게 학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궐리사는 송시열이 윤증과 회니시비를 벌이면서 사이가 극에 달했고, 결국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면서 대립이 치열했던 숙종 13년(1687년) 건립이 추진된다.

우암 송시열은 궐리사 건립을 발의하면서 중국에서 가져온 공자의 유상(遺像)을 봉안하려 했지만 기사환국으로 사사되면서 무산됐다. 궐리사는 이후 숙종42년(1716년)에 우암의 제자들의 손으로 세워진다. 그것도 소론의 우두머리 서원인 노강서원과 명재 윤증 고택의 코 앞에 지어진다. 현재의 위치는 1805년에 이전한 것으로 명재 고택과 더욱 가깝다. 정치적 걸림돌인 소론을 감시하고, 소론의 영향력을 무력화하려는 노론의 의도가 묻어난다.

궐리사는 최근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공자와 유교를 아이템 삼아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좋은 소재다. 공자를 모시는 궐리사를 충남 관광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궐리사를 단순히 건축이나 제향 인물에만 초점을 두면 작은 기와집에 불과하다. 공자를 배향한 과정에 숨어있는 진실을 스토리텔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주변의 명재고택, 노강서원, 노성향교 등을 함께 연결해 역사 문화적 관광코스로 엮는다면 세계에 기호유교문화권을 알리는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대전일보사.
권성하기자
편집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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