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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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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차 병술보 (1766년) 서문
제3차 병술보 (1766년) 서문

세보명      병술보(丙戌譜)
발행연도  1766(병술)  영조42 년
권수     10권 (각판)
발행지   서울
서문(序文)   박사임(朴師任)

반남세보(潘南世譜)가 간행된지 이미 70여년이 되니 의당 속서(續書)가 있어 후출(後出)을 상고해야 했다. 족인들이 모여 이 일을 상고한지 오래였으나 결과를 보지 못하였더니 족제 사존(師存)이 단독으로 할 수 있다하여 몸소 이 일을 담당하였다. 경향의 여러 집에 통지하여 받아 기록하기를 상세히 하고, 손수 직접 교사 (校寫)하여 전보에 미처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것을 얻어 3세가 되니 합하여 모두 8권이었으며, 범례는 한결같이 전보를 따라 어김이 없었다.

대개 전보는 현석선생과 둔계공에게서 나왔으되 오랜 뒤에야 능히 책을 완성하였는데 이 보첩은 완성되기까지 4년을 벗어나지 않았다. 일을 처음 시작하는 것과 계승하는 것이 각자 어렵고 쉬움이 있는 것이나 유심(留心)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일을 빨리 성취하여 전보다 생광이 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아! 존조(尊祖) 수족(收族)의 의리는 앞서 여러 서문이 있어서 논급한 바가 지극하고 극진하다. 그리고 형제로부터 군종의 구별이 있고, 족인의 호칭이 있어 점차 멀어질수록 정의(情誼)도 따라 성기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형세이다. 만약 『일족을 들어 정의(情誼)가 친형제와 같다』고 말한다면 이는 거짓에 가깝다.
그러나 정의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의리는 실로 변함이 없는것이니 멀어지고 더욱 멀어지며,성기어지고 더욱 성기어져서 행로자(行路者)와 다른 이가 몇이 안되는 정도에 이르되, 더불어 근본(根本)을 한가지로 한 것을 생각한다면 자연히 서로 감응하는 이치가 있을 것이고, 이치가 감응하는 바에 는 마음이 또 타인과 더불어 자별(自別)함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 선행을 아름다워하고 불초(不肖)한 것을 불쌍이 여기며, 그 현부(賢否)로써 나의 영욕 (榮辱)을 삼아 더불어 이 세상에 함께 살기를 생각하니 이것이 어찌 종족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제 보첩을 살피건데 혹 혁엽관면(奕葉冠冕)으로 귀하게 경재(卿宰)가 된이도 있고, 혹 향곡(鄕曲)에 침륜하여 편민(編珉)을 면하지 못한 이도 있어서 모조 (某祖) 모파(某派)의 소자출(所自出)을 분명히 알면서도 서로 제렬(弟列)하기를 부끄러워 하면서 억지로 『성이 같을 뿐이다』하니 이와 같다면 당초에 보 첩은 만들어서 어디에 쓰겠는가? 옛날 소씨의 보첩은 위는 고조에 그치고 방계는 시마에 그쳤다. 그럼에도 스스로 이르기를 『이를 보면 효제의 마음이 유 연히 생긴다』하였으니, 서계(박세당)선생은 그 친친에 박절함을 꾸짖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명윤이 민촉으로부터 출생하여 단지 원파가 양도사이에 산처하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고 동조의 친족과 오복 안의 근친으로도 능히 효제의 실제를 다히기가 또한 스스로 쉽지 않다. 대개 친친의 의리를 잘 추광(推廣)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친족에게 능히 친한가를 보아야 함을 논하고자 한것이다.

우리 일족은 돈목한다고 가장 칭도된다. 지금 또 이 보첩을 편수하여 원근을 가리지 않고 공력을 남김없이 하니 내 말이 구차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리라. 이 제 감히 문자로 사치스럽게 꾸미지 못하고, 다만 세속이 모두 아는 바 「동성백대지친(同姓百代之親)」이란 한 귀절의 말을 가지고 더불어 여러 종인들에 게 함께 권면하기를 원할 뿐이다.

영조 31년 1755년 박사임(朴師任)

* 박찬무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0-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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